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1960년 (문단 편집) === [[민주화]] [[혁명]]의 해 === 이 해에 [[대한민국]]에서는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으로 격동이 몰아쳤던 해였고, 이에 따라 [[이승만]]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이 하야하면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이 무너지고 [[의원내각제|의원내각제(의회제)]]와 [[양원제]][* 사실 헌법상으로는 이미 1952년의 [[발췌 개헌]] 당시부터 양원제는 포함이 되었던 조항이다. 다만 당시 [[이승만 정부]]에서 상원인 참의원을 구성할 선거를 미루면서 유명무실한 상황이었다.] [[대한민국 국회|국회]]를 채택하는 내용으로 개헌을 하면서 [[대한민국 제2공화국|제2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이후 [[5대 총선]]으로 양원이 구성되고 [[윤보선]] 대통령[* 현재와 같은 대통령 중심제가 아니였기에 실권은 없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나 일본의 천황, 또는 독일의 대통령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장면]] [[국무총리]]의 [[장면 내각]]이 출범하였다. 그러나 장면 내각은 그리 튼튼하지 못하였다는 평가를 받았고, 결국 이듬해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박정희 소장]]을 비롯한 군부의 [[5.16 군사정변|쿠데타]]로 인해 실각하여 [[대한민국 제3공화국]]으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4.19 혁명으로 이룩한 [[민주화]]도 결국 1년 간의 한때에 그치고 만다. 1960년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태어난 해로 기록되어있다. '''1,080,535명'''으로 100만명대 출생아수의 정점을 찍었다. 이들이 [[환갑]]이 지난 62세인 2022년 기준으로 83~84%인 약 90만 명 정도가 생존중이다.[* 출생 기대수명은 55~60세 정도였으나 의학의 발달로 환갑이 넘어도 6명 중 5명이 생존해있으며, 이들 중 약 8%는 5세 이하에 사망했다. 여담으로 76~82세 정도가 절반이 생존해있다.] 위에도 적었듯이 역사상 유일하게 [[대통령 선거]]가 두 번 치루어진 해이다. [[3.15 부정선거]]와 [[제4대 대통령 선거]]가 반년도 안 되는 텀을 두고 치루어졌었는데, 3.15 부정선거는 무효화 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식적으로는 무효화 된 적이 없으며''' 당선자가 [[이승만|사퇴]] 혹은 [[이기붕|사망]]하여 사실상 없던 일이 된 것이다. [* 참고로 두 번째로 대통령 선거가 많았던 적은 1971-1972년으로 [[제7대 대통령 선거|1971년]]과 [[제8대 대통령 선거|1972년]] 사이에 [[10월 유신]]이 공포되어 71년 대선을 치루고 1년만에 다시 치룬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1979-1981년도 [[제10대 대통령 선거|1979년]], [[제11대 대통령 선거|1980년]], [[제11대 대통령 선거|1981년]] 이렇게 1년에 한 번씩 대선을 치루었다. 모두 [[체육관 선거]]였으며, 79년 대선은 [[10.26 사건|전무후무한 현직 대통령 암살 사건]]으로, 80년 대선은 [[5.17 내란]] 이후 [[최규하|현임 대통령 사퇴]]로, 81년 대선은 [[8차 개헌]]으로 인한 선거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