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61년 (문단 편집) ==== 8월 ==== * [[8월 2일]] - 부정축재처리위원회는 89개 업체에 총 82억 1천만 환의 처분액을 통고하였다. * [[8월 3일]] - 노동조합 재조직을 허용하고, 기존 단체협약의 효력을 인정한 '근로자의 단체 활동에 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되었다. * [[8월 4일]] * 정희섭 보건사회부 장관은 전국 단일 산별노조 건설방침을 천명하고, 어용화로 권익을 해쳤던 자 등은 관여말라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 군사정권에 의해 노조 재건 책임자로 임명된 9명을 중심으로 한 '한국노동단체재건위원회(일명 9인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8월 5일]] * 농어촌 고리채 신고 접수가 실시되었다. 이 접수는 9월 25일까지 진행되었다. * 김말룡 등 구 한국노련 간부들은 9인위원회의 노조 재건에 반발하며 '전국노동단체재조직연락위원회(이하 연락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8월 6일]] - 정희섭 보건사회부 장관은 <노조 재건의 순수를 요구하며>라는 담화를 발표해 9인위원회를 사실상 지지하였다. * [[8월 8일]] - 9인위원회는 연락위 측이 차지한 노총회관을 접수하려 하였다. * [[8월 9일]] - 연락위 측은 보사부가 노동운동을 관제화하려 한다고 비난하였다. * [[8월 10일]] - 대한민국의 표준 시간이 종전보다 30분 앞당겨 변경되었다. * [[8월 12일]] - 박정희 의장은 "'정권 이양 시기에 관한 특별성명"을 골자로 한 [[8.12 성명]]을 발표하였다. * [[8월 13일]] - [[소련]]과 동독이 서[[베를린]]으로의 망명을 막기 위해 [[베를린 장벽]]을 쌓기 시작했다. * [[8월 15일]] - 종전의 (구)농업협동조합과 농업은행이 통합하여 '(신)농업협동조합'으로 출범하였다. * [[8월 16일]] - 전국섬유노동조합, 전국광산노동조합, 전국체신노동조합이 산별노조 형태로 재건되었다. * [[8월 17일]] -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산별노조 형태로 재건되었다. * [[8월 18일]] - 전국운수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8월 19일]] - 김말룡 연락위 위원장이 노동운동에서 은퇴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는 이 성명에서 보사부 당국이 일방적으로 9인위원회를 지지함으로써 민주 노동운동의 완전 말살을 기도했다고 비난하였다. * [[8월 22일]] - 전국화학노동조합, 한국전력노동조합이 산별노조 형태로 재건되었다. 그러나 한국전력노조는 위원장 김규선이 정부 지명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결성이 무효화되었다. * [[8월 25일]] - 혁명재판소는 고대생 피습 사건 관련자인 임화수에게 사형, 신도환에게 무기, 유지광에게는 징역 12년을 각각 선고하였다. * [[8월 28일]] - 혁명재판소는 민족일보 사건으로 구속된 조용수 등 관련자 4명에 대해 사형 선고를 내렸다. * [[8월 29일]] - 산별노조 연합체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새로 결성되었다. 같은 날 [[김말룡]]이 군사정권에 구속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