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80년 (문단 편집) == 개요 == * [[https://m.youtube.com/channel/UCc-N24Y5OA0gqbjBwe1ttfA|1980년 일어난 국내외 사건들 연대기 영상]]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122700209204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12-27&officeId=00020&pageNo=4&printNo=18226&publishType=00020|동아일보 선정 1980년 국내외 10대 뉴스]] [[화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자 [[1980년대]]의 첫 해이다. 당시 한국에선 1979년 [[박정희]] 대통령 피살 후 [[계엄]] 상태로 '안개정국'이 조성되어 [[개헌]] 방향을 놓고 정치권이 혼란에 빠졌고, 민주화세력들도 갈팡질팡했다. 그런 형국에 [[서울의 봄]]과 [[5.18 민주화운동]]으로 대표되는 [[민주화]]의 좌절, '사회정화'를 앞세운 [[국보위]]의 대숙청, 인권유린 수용소 '[[삼청교육대]]', [[언론통폐합]] 등 암울한 사건만 터져나왔다. 경제적으로도 [[1950년]] 이후 최초의 마이너스 경제성장률과 1인당 [[국민소득]]이 감소한 해이다. [[소련]]에서 [[1980 모스크바 올림픽|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이, [[미국]]에서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레이크플래시드 동계 올림픽]]이 열렸는데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에서는 [[한국]], [[일본]], [[서독]], [[캐나다]], [[미국]] 등 서방 국가 및 [[민주주의]] 국가들이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여 대거 불참하면서 반쪽짜리 대회로 전락하였다. 이 [[올림픽]]에서 [[한국]]은 처음으로 하계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으면서 불참하였다.[* 그 당시 소련이 적대국이라는 정치적 이념이 있었지만, 올림픽에까지 불참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 침공 크리가 터져 동맹국인 [[미국]]이 불참을 결정하면서 한국도 그 뒤를 따르게 되었고 때마침 [[12.12 군사반란|쿠데타]]로 등장한 신군부가 [[5.17 내란|정권을 장악]]함에 따라 결국 불참이 확정되었다.] 한국에서는 이때부터 [[흑백]] TV에서 [[컬러]] TV로 전환되는 시기를 맞이했다. 이미 컬러 방송을 시작할 여건은 마련되어 있었으나, 여러 가지 규제 논란으로 판매가 지연되다가, 1980년 8월에 컬러 TV 수상기의 판매를 공식 허용하고 12월부터 컬러로도 TV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였다.[* [[KBS 1TV]]는 12월 1일, [[KBS 2TV]]와 [[MBC]] TV는 12월 22일부터.] 그러나 컬러방송을 같이 해야 할 [[동양방송]]은 언론통폐합으로 KBS에 합쳐졌고, [[동아방송]]도 TV 방송조차 아예 못한 채 KBS에 흡수합병됐다. 심지어 [[기독교방송]]은 뉴스와 광고를 잃었다.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여름]]에 유난히 서늘하고[* 이 당시 서울의 7, 8월 평균기온이 22.7도, 22.8도에 불과했을 정도로 굉장히 서늘했다. 5월 말에 31도를 넘더니 정작 7~8월에는 30도를 간신히 넘은 날이 이틀에 불과할 정도였다. 똑같이 서늘한 여름으로 유명한 1993년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강릉시]]에서는 5~6월은 [[이상 고온]]으로 인해 더웠으나 7, 8월은 역시나 시원했다.][* 여름은 물론 11월을 제외한 월 전체가 평년보다 낮았다. 물론 시기를 감안하면 3월은 약간 높고 6월은 평년과 비슷했다.]흐린 날이 많아 [[냉해]] 피해가 심각했던 해였다.[* 요즘은 대체로 이상 고온으로 말이 많지만, 1980년에는 오히려 이상 저온과 심지어는 지구한랭화로 말이 많았다.] 이로 인하여 1977년에 쌀 풍년으로 쌀을 수출했던 한국에서는 [[쌀]] 생산량이 30%나 감소하며 심각한 농업 피해를 입었으며,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물론 경제성장률 하락의 가장 큰 이유는 [[제2차 오일 쇼크]]로 인한 극심한 고물가에 따른 [[]]성장 지체였다.] 민심 이반을 두려워한 [[전두환 정부|전두환 정권]]은 농림부를 동원해 미국에서 사들인 밀과 쌀을 정부미로 풀어 겨우 사태를 무마했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 중부 지역에서는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이 몰아닥쳐 농업 피해가 컸으며, 이로 인하여 세계적인 [[옥수수]], [[밀]] 생산 지역인 이 지역의 생산량이 줄어들어 국제 농산물 가격도 올라갔다. 이 해에는 한국에 올림픽 열기가 없었던 유일한 시기이기도 했는데, 한국 선수단은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선 노메달을 기록했고, 뒤이어 개최된 소련 [[모스크바 올림픽]]도 정치적 이유로 불참함에 따라 [[1948 런던 올림픽]]에 첫 출전하게 된지 32년만에 현재까지 유일하게 올림픽 열기가 없었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여기에 미국은 [[지미 카터]] 행정부가 [[소련]]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아프간 침공]]에 항의하는 표시로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였고 [[일본]] 역시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였다. 다만 소련의 맹방이었던 [[북한]]은 모스크바 올림픽에 참가함에 따라 올림픽 열기는 한반도 기준으로 북한에서만 전파하게 되었다. 1979년에 시작된 [[강변가요제]]도 이해에는 열리지 않았다. ~~[[하나회|열릴 맛이 나겠는가]]~~ 학계에선 미국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가 저서 <[[제3의 물결]]>을 발표하여 농경 시대-산업화 시대에 이어 '정보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일찍이 예언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차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적 불황과 [[신군부]]의 군사반란으로 인한 민주화 실패가 겹쳐서 [[한국전쟁]] 후 대한민국 최대의 암흑기 중 하나인 해였다. 영미권 대중음악계에서는 [[디스코]] 열풍이 끝나고 과도기를 맞게 된다. 한편 록 음악계에서는 거물급 아티스트들이 이 해에 연이어 불미스러운 사고로 사망하며[* 2월 19일 [[AC/DC]]의 보컬 [[본 스콧]], 5월 18일 [[조이 디비전]]의 보컬 [[이안 커티스]], 7월 23일 [[그레이트풀 데드]]의 키보드 키스 고드쇼, 9월 25일 [[레드 제플린]]의 드러머 [[존 본햄]], 12월 8일 전 [[비틀즈]] 보컬 및 기타리스트 [[존 레논]]이 사망하였다.] 가장 슬픈 해 중 하나로 기억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조용필]]이 정규 [[조용필 1집|1집]]을 발매해 본격적으로 부동의 원탑 가수로 올라서기 시작한다. [[천연두]]가 이 해에 종말을 고했다. 마지막 감염은 [[1977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