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80년 (문단 편집) ==== 5월 ==== * [[5월 1일]] * 정부는 대학 군사교육을 종전의 주 4시간에서 2시간으로, 대상학년도 2학년까지로 각각 축소시킨다고 밝혔다. * 성대생들이 병영집체훈련을 거부하며 농성을 벌였다. * 부산남부경찰서는 동국제강 부산공장 농성사태 관련자 6명을 포고령 1호 위반으로 구속했다. * [[5월 2일]] * 정종택 노동청장은 한국노총 측의 국가보위법상 노동기본권 제한조항 시행유보 요구 수용이 어렵다고 밝혔다. * 서울대생들이 '민주화 대행진'을 개최하였다. * 고려대생 1천여 명이 계엄철폐 및 유신잔당 척결, 정치일정 단축 등을 요구하며 연좌농성 후 철야농성을 벌였다. * 전북대-경북대생들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전남대-조선대생들이 학내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서울형사지법은 이재문, 신향식, 안재구, 최석진 등 남민전 사건 관련자 4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다. * [[5월 3일]] * [[김영삼|YS]]-[[신현확|신 총리]] 양측이 '선 안정-선 민주화' 문제로 갈등을 보였다. * '전국민주노동자연맹(이하 전민노련)'이 창립되었다. * 서울대생 1만여 명이 계엄해제 및 이원집정부제 구상 철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대우중공업 노동자들이 어용노조 규탄 및 단협 준수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세진전자 등 한국노총 금속노련 남서울지부 산하 9개 분회가 어용노조 퇴진을 외치며 지부 사무실을 점거농성하였다. * [[5월 4일]] * 정부는 연탄값을 35.2%, 석탄값을 41.9%로 각각 인상했다. * 국민연합은 학원민주화 및 비상계엄 해제를 주장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티토 유고연방 초대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 [[5월 5일]]: 김종필 공화당 총재는 새 대통령은 안보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행정경험자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5월 6일]] * 신민당 비당권파 24명은 동교동 모임에서 독자기구를 구성키로 결정하였다. * 남북총리회담 실무대표 7차 회의가 개최되었다. * 이대생들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이대 총학은 5월을 '이화 민주투쟁의 달'로 결정하였다. * 한신대생들은 계엄해제 등을 담은 시국선언문 발표 후 농성에 돌입하였다. * 한국외대생들이 '민주화촉진대회'를 개최되었다. * 숭전대생들은 계엄철폐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연대 총학은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비상학생총회를 개최하였다. * 전북대생 3천여 명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 동국대생들이 '민주화를 위한 학원대회'를 개최하였다. * 각 대학생들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연합시위를 벌였다. * [[5월 7일]] * 신민당은 계엄해제를 정부 당국에 촉구하였다. * 한국은행은 [[GNP]]가 16년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고 밝혔다.(1/4 분기 내 전년대비 1.7% 감소) * 외대-연대 교수들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한신대 대학원생들이 <민주화운동에 즈음한 우리의 결의>를 발표하였다. * 홍대생 1천여 명이 '범민주화 촉진대회'를 개최하였다. * 외대생 8백여 명이 야간 가두시위를 전개하였다. * 중대 등 각 대학생들이 계엄철폐 및 민주화 촉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북한 지도자 김일성이 티토 장례식 참석차 유고로 출국했다. * [[5월 8일]] * 전국 각지 대학생들이 '시국성토대회'를 개최되었다. * 서울지역 대학신문들이 <시국에 대한 대학신문 결의>를 채택하였다. * 중대 총학이 <5.8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외대 교수들은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세계보건기구|WHO]]가 [[천연두]] 박멸을 공식 선언했다. * [[5월 9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계엄해제, 임시국회 즉각 소집, 정부주도 개헌작업 중지 등을 요구하였다. * 중대-숙대 교수들이 계엄철폐 요구 등을 담은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건대-인하대생들이 '시국성토대회'를 개최하였다. * 숙대-한양대생들이 횃불시위를 벌였다. * 이대생들이 연좌시위를 벌였다. * 서울대 학부생 및 대학원생들이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한국노총 금속노조 산하 25개 지부 조합원들은 어용노조 집행부 규탄 및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금속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미 국방부는 한국 DMZ에서 미군 경찰대가 괴한들과 총격전을 벌였으나 사상자는 없었다고 밝혔다. * [[5월 10일]] * 김도창 법제처장은 개헌공청회 개최를 보류한다고 밝혔다. * 전국 23개대 총학생회장은 계엄해제 요구 등을 담은 성명을 발표하였다. * 동국대 교수 198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최규하 대통령이 사우디 및 쿠웨이트 방문을 위해 중동으로 떠났다. * 단대생들이 '시국대토론회'를 개최하였다. * 롯데제과 노조는 민주후보 신태웅 노동자를 새 지부장으로 선출하였다. * [[5월 11일]] * 신현확 총리는 사회가 안정되었다고 판단될 시 즉각 계엄을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 동명목재 부산공장 노동자 3천여 명이 공장 정상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5월 12일]]: 부산 해운대 조선비치호텔 종업원 310명이 어용노조 퇴진, 임금인상, 외국인 경영자 교체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5월 13일]] * 정부는 국회측과 개헌안 이견 사전조정방침을 수립하였다. * 서울지역 6개대생들이 세종로 일대에서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가두시위에 나섰다. * 한국노총은 전국 11개 시/도에서 '노동기본권 확보 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 고려대 교수 236명이 '교수협의회'를 발족하였다. * [[5월 14일]] * 최규하 대통령은 자베르 3세 쿠웨이트 국왕과 원유공급 문제 및 경협문제 등을 논의하였다. * 신민당은 소속의원 66명 명의로 '비상계엄 해제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 김옥길 문교장관은 학생들의 자제/자숙을 당부하며 야간시위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 전국 27개대 총학생회장단이 <시국에 관한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 서울지역 21개대 및 지방 11개대생 총 15만여 명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자정까지 가두시위를 벌였다. * 롯데제과 노조원 2,700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을 벌였다. * [[5월 15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민주화작업 연내 완결을 위한 일정 공개 및 정부주도 개헌심의위 해체를 주장하였다. * 신현확 총리는 학생들의 자숙/자제를 호소하며 법질서 파괴행위가 지속될 시 방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김옥길 문교장관은 학생들의 가두시위에 대해 최 대통령 귀국 시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 지식인 130여 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전국 30개대생 수십만 명이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 서울지역 35개대생 10만여 명이 서울역에서 연좌농성을 벌였다. * 심재철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격론 끝에 시위대를 회군시켰다.([[서울역 회군]]) * 서통 노동자 1천여 명이 회사에서 농성을 벌였다. * [[5월 16일]] * 최규하 대통령이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귀국했다. *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대통령중심제 및 4년임기, 1차 중임 등을 담은 헌법 개정안 작성을 완료하였다. * 전국 55개대 총학생회장 95명이 이대에서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장단 회의'를 개최했다. * 서울지역 25개대 및 지방 2개대 총학생회장들은 시위 중단 후 정상수업에 돌입토록 결의하였다. * 기협은 계엄당국의 보도검열 반대 결의문 및 행동지침을 채택하였다. * 주한 유엔사 공보과장은 북한군이 DMZ에 침투해 미군과 교전을 벌였다고 밝혔다. * [[5월 17일]] * 민관식 국회의장대행은 의원 186명의 소집요구에 따라 20일 제104회 임시국회 소집을 공고하였다. * 신민당은 소속의원 66명 명의로 '민주화를 위한 정치개혁일정 완결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 국무회의는 18일 0시부터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에 비상계엄지역을 확대키로 의결했다.([[5.17 내란]]) * '전국섬유노동조합 서통지부(이하 서통노조)'가 결성되었다. * 경찰은 이대 전국총학회장단 회의를 급습해 전국 55개대 학생대표 95명을 연행했다. * [[5월 18일]] * 계엄사는 전/현직 국가원수 비방 금지, 정치활동 중지, 대학 휴교 등을 담은 '포고령 10호'를 발표했다. * 계엄사는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자 및 시위 배후조종 혐의자 26명을 연행/조사중이라고 밝혔다. * 광주 전남대생 6백여 명이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정문 앞에서 투석전을 벌였다. 이는 [[5.18 민주화운동|광주항쟁]]의 시발점이었다. * 미 국무부는 한국의 계엄령 확대에 우려를 표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미국]] [[워싱턴 주]] 스카미니아에서 [[세인트 헬렌스 화산]]이 폭발해 57명이 숨졌다. * [[5월 19일]] * 광주항쟁이 공수부대의 폭력진압을 계기로 시내 전역에 확산되었다. * 경향신문 등 언론사 기자들이 5.18에 대한 왜곡보도에 반발해 제작거부 투쟁을 벌였다. * [[5월 20일]] * 계엄사는 당월 18일부터 광주 일원에 소요사태가 발생해 아직 수습을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 특전3공수 병력이 광주역에서 '''시위대에 난사해''' 4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당했다. * 전남일보-전남매일이 발행을 중단했다. * 광주MBC 궁동사옥과 광주세무서가 시위대에 의해 방화되었다. * 신현확 총리 등 국무위원 전원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 진의종 보사장관은 노사분규에 전 행정력을 동원하라고 노동청에 지시했다. * 대법원은 [[10.26 사건]] 관련자 [[김재규]] 등 5명에 사형, [[김계원]]에 무기징역, 유석술에 징역 3년을 각각 확정했다. * [[캐나다]] [[퀘벡]] 분리독립 찬반 투표에서 주민들 중 약 60%가 반대함으로서 독립이 무위로 돌아갔다. * [[5월 21일]] * 특전11공수 33대대 병력이 광주 전남도청 앞 시위대에 '''무차별 난사해''' 54명이 숨지고 5백여 명이 부상당했다. * 광주 시위대가 광주교도소, 전남도청/도경 등을 뺀 전 관공서를 완전 장악하였다. * KBS광주 사옥과 광주시내 8개 파출소들이 시위대에 의해 방화되었다. * 광주 시위대가 무기고 탈취 후 소총 등으로 무장해 밤 사이 계엄군을 시 외곽으로 몰아냈다. * 광주 학생수습위원회 및 시민수습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광주 시민들에게 이성을 회복하고 질서유지를 당부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 최규하 대통령은 [[박충훈]]을 총리서리에, 김원기를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개각을 단행하였다. * <[[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이 미국에 개봉되었다. * [[5월 22일]] * 광주항쟁이 목포, 나주 등 인접 시/군으로 확대되었다. *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 실무자대표 8차 접촉이 이루어졌다. * 계엄사는 김대중이 학생시위를 배후 조종했다고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 미 국무부는 광주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희망하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 미 국방부는 항공모함 코럴시호를 한국 근해에 파견한다고 밝혔다. * [[남코]]가 비디오 아케이드 게임 <[[팩맨]]>을 일본에 출시하였다. * [[5월 23일]] * 박충훈 총리서리는 광주가 치안부재 상태이며, DJ-JP는 포고령 위반으로 연행 후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 11공수 장병들이 광주 주남마을에서 운행 중이던 미니버스에 난사해 탑승자 17명을 살해했다.([[주남마을 버스 총격 사건]]) * 위컴 한미연합사령관이 한국 정부측의 군 소요진압 동원 요청에 동의했다. * [[5월 24일]] * [[10.26 사건]]의 주범 [[김재규]] 등 5명이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당했다. * 11공수 62대대 장병들이 광주 송암동에서 무반동포로 군용트럭에 오인사격하는 바람에 광주보병학교 교도대 9명이 숨졌다. * 동 부대 장병들이 오인사격에 대한 분풀이로 송암동 일대 주민들과 가축들을 무차별 학살했다.(광주 송암동 학살사건) * [[5월 25일]]: 최규하 대통령은 광주사태 해결을 위한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 * [[5월 26일]] * 내무부는 광주시위로 전남 행정기능이 마비되어 본부가 시/군 예산지원 및 행정지도를 직접 담당키로 결정하였다. * 이광표 문공장관은 '광주 소요사태에 대한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 * 내무부는 안병하 전남도경국장을 대기 발령시키고 송동섭 치본 작전과장을 새 국장직에 앉혔다. * 광주수습위는 '전남도청 독침사건' 관련 내용을 발표하였다. * [[5월 27일]] * 계엄군이 새벽 3시 반에 광주 시내로 진입해 전 시가지를 완전 장악했다. * 계엄사는 안병하 전남도경국장을 지휘권 포기혐의로 연행했다. * 계엄사 측은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 17명 사망, 군인 2명 순직, 295명 체포라고 발표했다. * 장형태 전남지사가 사임했다. * [[5월 28일]] * 국무회의는 '광주사태 긴급구호 및 복구처리방안'을 승인했다. * 정부는 광주사태에 따른 금융 및 세제지원 대책을 마련했다. * 사북사태 관련자 25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 군인 출신 김종호가 새 전남도지사로 취임했다. * 미국 정부는 본국의 대한방위공약 준수결의를 재확인했다. * [[5월 29일]] * 한국은행은 광주사태 관련 전남지역 피해 사업체에 시설복구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 광주지검 및 전남북계엄분소 합동검시반은 광주항쟁 희생자 검시를 종료했다. * 전라남도는 광주시 피해복구를 위해 취로사업비 2억 7천만 원을 방출키로 요청했다. * [[5월 30일]] * 김종호 전남지사는 기자회견에서 민심수습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 뒤 후유증 없도록 사태를 수습하겠다고 밝혔다. * 서강대생 김의기가 유인물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배포한 후 기독교회관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 * 대한체육회는 모스크바올림픽 불참 결정에 따라 태릉선수촌 대표선수 강화훈련을 중단했다. * [[한국공항공사]]의 전신인 [[국제공항관리공단]]이 설립되었다. * [[5월 31일]] * 정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 계엄사는 광주사태 당시 사망자 170명, 부상자 380명, 체포 1,740명이라고 했으며 이 중 730명을 조사중이라고 발표했다. * 광주시내 각 국교가 휴교 13일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