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87년 (문단 편집) ==== 7월 ==== * [[7월 1일]] * '''전두환 씨는 6.29 선언 내용을 전부 수용한다는 특별 담화문을 발표했다.''' * 미국 하원은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6.29 시국 수습방안을 지지하는 내용의 대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 체신부와 KTA는 전국의 전화를 완전 자동화시켰다. *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한국소비자보호원,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설립되었다. * 제주 서귀포 시립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 [[7월 2일]]: 노동부는 노동조합의 설립제한 규정을 폐지하는 등 노동관계법의 개정을 결정했다. * [[7월 3일]] * [[연세대학교/신촌캠퍼스]]에서 서울시내 대학생 1만 5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시국 대토론회'가 열렸다. * 인천 한국차량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5일]] *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병상에 눕던 [[이한열]]이 결국 숨을 거두었다.''' * 현대엔진[* 1989년에 [[현대중공업]]으로 합병.] 울산공장 노동자들이 민주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이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첫 신호였다. * [[7월 6일]] * '민주헌법쟁취노동자공동위원회(이하 민헌노위)'가 발족되었다. * [[새마을호]] [[DHC]]동차가 상업운행을 시작했다.[* 2013년 1월 5일 종운.] * [[7월 8일]]: '민주쟁취국민운동 전국농민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7월 9일]] * [[연세대]] 총학은 [[이한열]] 학우 장례식을 신촌캠에서 '민주국민장'으로 거행하였다. 이들은 [[서울시청]]까지 운구 행렬을 벌였다. * 이한열 열사 노제 이후 [[전두환]] 퇴진을 주장하는 일부 군중들이 광화문 네거리 쪽으로 향하려다 경찰의 최루탄 난사로 흩어졌다. * 법무부는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자 18명 및 [[광주민주화운동|광주사태]] 관련자 17명 등 시국사범 2,335명의 사면/복권을 단행한다고 발표하였다. *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1988년 올림픽을 반드시 서울에서 열 것이라고 천명했다. * [[7월 10일]]: 전두환 씨는 민정당 총재직을 사퇴할 것을 선언하였다. * [[7월 11일]]: [[유엔]]은 유고연방령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태어난 마테즈 가스파르를 '50억번째 인류'로 지정하였다. 이로써 세계 인구는 50억을 넘었다. * [[7월 12일]] * 한국노총 5개 산별연맹 산하 33개 단위노조 간부 112명이 '노동민주화실천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광주 해고노동자 복직운동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전 자실 사무국장 채광석 시인이 민주시민대동제 참여 후 귀가길에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 [[7월 13일]]: [[전두환]] 씨는 김정렬을 새 국무총리서리에 임명하는 등 8개 부처를 개각하였다. * [[7월 14일]] * 이웅희 문공장관은 언론기본법의 폐지 방침을 발표했다. * 제4차 남북체육회담이 [[스위스]] 로잔에서 개막되었다. * [[7월 15일]] * 현대미포조선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자유중국 정부는 계엄령 해제 및 해외투자 자유화/외환규제 완화 조치를 내렸다. * 제5호 태풍 셀마가 [[제주도]]를 통과했다.[* 이미 태풍이 한반도 남쪽에 접근한 상황에서 중앙기상대가 '''"태풍이 지나갔다"'''고(…) 전설적인 오보를 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세한 오보 내용은 [[대한민국 기상청]] 항목 참조.] 이 태풍으로 인해 사망자와 실종자 158명이 발생했다. * MBC 소속 기자와 프로듀서들이 '방송민주화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7월 16일]] * 현대미포조선 노조원들이 울산시청에 노조설립 신고서류를 내려다 사측에 압수당하는 바람에 1,500여명의 노동자들이 농성을 전개했다. * KBS와 MBC 양대 방송사 소속 기자와 PD, 기술진들이 '방송민주화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7월 17일]] * [[김대중]]은 불출마 선언을 무효로 한 뒤 출마여부를 검토한다고 선언하였다. * 서울시철거민협의회(이하 서철협)가 결성되었다. * [[7월 19일]] * '서울지역해고노동자투쟁위원회(이하 서해투)'가 결성되었다. * '인천지역해고노동자협의회(이하 인해협)'가 결성되었다. * [[7월 20일]] * 신문협은 정례회의에서 9월부터 일간지를 주 8면으로 증면한다고 결정하였다. * 태백 한보탄광 노동자와 가족 6백여 명이 퇴직금 지급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7월 21일]] * 권오성 등 현대중공업 소속 노동자 50여명이 어용노조 기습신고를 냈다.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가 발족되었다. * 인천 남일금속 노동자들이 어용노조 설립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 * [[7월 23일]] * 인천 우아미가구 노동자 7백여 명이 제수당 지급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태광산업 부산공장 노동자 1천여 명이 어용노조 해산과 보너스 누진제, 하기휴가 연장, 휴가비 지급 등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북한은 남북한 및 미국, 중립국감독위원회가 참가하는 다국 군축협상을 제의했으나, 미국 국무부가 이를 거부했다. * [[7월 24일]] * 현대자동차에 어용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한국중공업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25일]] * 현대차 노동자 8천여 명이 어용노조 결성 보고대회에서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개시했다. * '[[현대자동차]] 민주노조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자정에 현대차 측은 어용노조 임원진 사퇴와 [[이상범(정치인)|이상범]] 임시집행부 인정에 합의하였다. * 김필수 등 현대중공업 노동자 11명이 모여 민주노조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조선공사 부산조선소 노동자와 가족 3,500여 명이 어용노조 퇴진을 외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한국도로공사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26일]]: [[현대중전기]]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27일]] * 한국제지 안양공장 노동자 150여 명이 노조 결성 및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태광산업, 동양나이론, 동양포리에스텔, 풍산금속 울산공장 등지의 노동자 7천여 명이 파업농성을 벌였다. * [[북한]] [[평양]]에 광복 1/2호 다리가 완공되었다. * [[7월 28일]] * 국제상사 부산공장 노동자 1천 5백여 명이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현중 노동자 1만 7천여 명이 어용노조 퇴진, 노동자의 기본생활개선 등 17개 요구사항을 내걸고 총파업을 벌였다. * '현대중공업 노조개편 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7월 29일]] * 대주상호신용금고 주주 김신일이 횡령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 여파로 [[임철순]] 민정당 의원이 8월 8일에 사퇴하였다. * 풍산금속 노동자 700여 명이 밤샘 파업농성투쟁을 벌여 다음날에 어용노조를 퇴진시켰다. * 고려투자금융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 [[7월 30일]] * 현대미포조선 노동자 1천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현대종합목재(현 현대리바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7월 31일]] *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이란 순례객들과 사우디 군경 사이에 대규모 유혈충돌이 발생했다. * 효성중공업 창원공장 노동자 1천여 명이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농성을 벌였다. * (주)화성 부산공장 노동자 6백여 명이 농성을 벌여 근로조건 개선을 쟁취하였다. * 현중 노조개편대책위와 사측은 연말상여금 차등제 철폐, 두발 자유화, 새 노조 집행부 구성 등에 합의했다. * 울산여객 등 6개 시내버스 운전사 400여명이 어용노조 퇴진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농성과 거리 시위를 벌였다. * 금호석유, [[서울대병원]]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