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87년 (문단 편집) ==== 5월 ==== * [[5월 1일]] * 신민당을 탈당한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의원들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 소련 정부가 '사기업법'을 발효시켰다. * [[5월 2일]]: [[서울대]] 교수 122명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5월 3일]]: 프로권투선수 박종팔이 IBF 슈퍼미들급 7차 방어전에서 미국의 린델 홈스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두었다. * [[5월 4일]] * 정부와 민정당은 1988년 1월부터 지방자치제를 24개 지역에 시범실시하고 5월부터 전면 실시방안을 확정한다고 밝혔다. * 세관원과 공항 직원이 낀 33억대 금괴 사건이 터져 관련자 7명이 구속되었다. * [[5월 5일]] * 대원동화가 제작한 국산 TV 애니메이션 1, 2호인 <[[떠돌이 까치]]>, <[[달려라 호돌이]]>가 각각 [[어린이날]] 특집으로 [[KBS1]]과 [[MBC]]에서 첫 전파를 탔다. * [[남아공]] 전역에서 흑인 노동자와 학생 백만여 명이 백인 단독총선에 항의하며 파업 및 등교거부를 벌였다. * [[5월 6일]]: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서대협)'가 결성되었다. * [[5월 7일]]: 포철 광양제철소 제1기가 준공되었다. * [[5월 8일]] * 화가 등 예술인 202명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민주당은 국회에 4.13 호헌조치 철회 건의안 및 범양상선 사건 국정조사 결의안을 제출했다. * 금융노련 산하 13개 노조는 한국노총의 4.13 호헌조치 지지에 반박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5월 9일]] * LOT 폴란드 항공 5055편이 수도인 [[바르샤바]]에 추락해 탑승인원 183명 전원이 사망했다. * 북한측은 동/식물 50여종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 [[5월 10일]]: [[서머타임]] 제도가 26년만에 전국적으로 다시 실시되었다. * [[5월 12일]] * 영화인 97명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는 한국의 4.13 호헌조치 재고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 [[5월 14일]] * 정부는 7개 공기업의 민영화 방안을 확정했다. * 공개방청 코미디프로 <[[쇼 비디오 쟈키]]>가 KBS2에서 첫 전파를 탔다. * [[5월 15일]]: 'KBS-TV 시청료 거부 범시민운동 여성연합'이 발족되었다. * [[5월 17일]] * KNCC 소속 6개 교단과 신자 1천 2백여 명은 4.13 호헌조치 철회를 요구하며 철야기도회를 열었다. * 광주항쟁 7주기 추모제가 망월동 묘역, 민통련, 전국 62개 대학 등지에서 각각 거행되었다. * 부산지역 노동자 황보영국이 "독재타도", "호헌분쇄", "민주헌법 쟁취" 등을 외치며 분신했다. 이후 그는 8일 뒤에 숨을 거두었다. * [[5월 18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5.18]] 추모미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이 조작되었다고 폭로하였다. *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가 의회를 해산시켰다. * [[5월 19일]]: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미국이 한국-일본-필리핀에서 핵무기를 철수하면 유럽과 아시아의 중거리 미사일을 폐기하겠다고 결의했다. * [[5월 20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범은 따로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정토구현전국승가회와 민불련 등 [[승려]] 90여 명이 5.18 추모법회 중 경찰의 광주 원각사 난입에 항거하며 서울 개운사에서 농성을 벌였다. * 북한의 [[김일성]]이 중공을 공식 방문해 [[덩샤오핑]] 주석, 자오쯔양 총서기서리와 정상회담을 열었다. * [[5월 21일]]: 출판인 359명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5월 23일]] *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 규탄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대한변협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 진상은폐에 검찰 개입 의혹이 있다며 성명을 발표하였다. * [[5월 24일]]: 국어연구소는 한글맞춤법 및 표준어 개정시안을 발표하였다. * [[5월 25일]] * 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진상조작과 관련해 현 정권 퇴진을 요구하였다. * <민주화와 언론자유를 위한 동아일보 기자 시국선언>이 발표되었다. * [[5월 27일]] * 민주당, 재야 민주단체, 신-구교단체 등 발기인 2,191명이 직선제 관철을 위해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를 결성하였다. * [[서울대]] 총학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조작 진상규명과 4.13 담화 철회를 요구하며 동맹휴업을 결의하였다. * 예장총회는 6월 7일을 '나라를 위한 기도주일'로 정하고 4.13 호헌조치 철회를 위한 기도회를 열기로 결정하였다. * [[5월 28일]] *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이 설립되었다. * [[서독]]의 19세 청년 [[마티아스 루스트 사건|마티아스 루스트]]가 "냉전을 중단시키는 평화의 가교가 되겠다"며 애인과 함께 단돈 1만 6천 달러짜리 경비행기(4인승 [[세스나]]기)를 임대해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착륙했다. [[핀란드]] [[헬싱키]]를 이륙해 소련 영공 750km 날아 모스크바에 착륙하기까지 [[소련군]]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교신장비를 끈 관계로 핀란드의 경비행기 담당자도 그가 [[스웨덴]] [[스톡홀름]]에 도착하지 못하고 추락한 것으로 이해했다.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때문에 오히려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고. 정신감정 결과 과대망상증이 있었다고 한다. 1991년 간호실습생을 흉기로 찔러 다시 철창 신세를 지기도 했다.] 무사히 착륙한 청년은 [[싸인]]은 물론 [[삐라]]까지 뿌리다가 [[국가보안위원회|KGB]]에 붙잡혀 14개월간 수감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레이더]] 1만 개, 요격전투기 4,000여 대, 지대공 미사일 1만 4,000여 발을 자랑하던 소련의 방공망은 무용지물임이 만천하에 드러나 국제적 개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 [[5월 29일]] * '호헌 철폐와 민주개헌 쟁취를 위한 서울지역학생협의회'가 구성되었다. * 제30회 전국역사학대회에 참석한 교수 등 350여 명이 <한국민중사 사건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한국민중사>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 [[5월 30일]] * 상공부는 7월부터 대형 승용차, 비디오테이프, 왜건, 지프차, 면도기, 중소형 컴퓨터 등 미국이 요청한 품목 46개를 포함한 170개 품목의 수입을 개방하기로 하여 수입자유화율이 93.6%로 올랐다.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사건 이틀 만에 소콜로프 국방장관과 콜두노프 방공군총사령관을 전격 해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