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87년 (문단 편집) ==== 6월 ==== * [[6월 1일]] * 중앙기상대가 전국 12개 도시에서 '강우확률예보제'를 처음으로 실시했다. * 서울 내 13개 대학 학생회장 등 간부 20여명은 호헌철폐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 정부는 국제노동기구 총회에 이헌기 노동부장관 등 대표단 15명을 파견했다. * 한국 유도대표팀이 제10회 이탈리아 오픈 유도대회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 이란 지도자 호메이니가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요청으로 재집권 후 이슬람공화당(IRP)을 해체시켰다. * [[6월 2일]] * 전두환 씨는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추천했다. * [[고건]] 내무부 장관은 지방 장관회의에서 인권 보호와 경찰의 신뢰회복 등을 강조했다. * 서울지검은 통일민주당의 정강정책과 관련하여 창당 발기인인 이현 등 4명을 구인했다. * 범민족올림픽추진위원회는 북한의 올림픽 방해 위협에 대해 숭고한 올림픽 정신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 [[6월 3일]] * 전두환 씨는 제4차 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남북최고책임자회담을 다시 촉구했다. * 민정당 중앙집행위원회는 노태우 대표를 대통령 후보로 제청했다. * 김동영 부총재 등 통민당 의원 5명이 [[이한기]] 총리서리에 김대중의 연금 해제를 건의했다. * 서울형사지법은 1986년 보도지침 폭로사건 주도자 김태홍, 김주언, 신홍범에게 각각 징역 10개월과 집유 2년, 징역 8개월 및 집유 2년,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 [[6월 4일]] * 제134회 임시국회가 개최되었다. * 국본은 민정당에 6.10 전당대회를 즉각 중지하고 합의 개헌에 응하라고 성명을 냈다. * 부산지검이 [[필로폰]] 밀매조직 3개파 30여 명을 구속했다. * [[6월 5일]] * [[김재광]] 의원 등 5명이 [[신한민주당|신민당]]을 탈당했다. * 가수와 예술인 88명이 시국성명서를 냈다. * 대한변협 소속 변호사 74명이 민주화와 개헌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국본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다. * 국사교육심의회는 고조선의 최초국가 명기를 골자로 한 중/고교 국사 교과서 개편방향을 확정하였다. * 한국공해문제연구소는 <87 반공해선언>을 발표하여 핵발전소 건설 중단 등을 촉구했다. * [[한국은행]]은 1988년 1월부터 모든 은행에서 현금인출이 가능한 'CD 공동카드이용망'을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 [[6월 6일]]: 서울 내 29개 대학교 학생 수천여 명은 [[고려대학교]]에서 연합 대동문화제를 열며 시위를 벌였다. * [[6월 7일]]: 프로권투선수 유명우가 WBA 주니어 플라이급 제5차 방어전에서 파나마의 베네딕토 무리요를 상대로 KO승을 선사했다. * [[6월 8일]] * 고건 내무부 장관과 정해창 법무부 장관은 합동으로 6.10 규탄대회를 강행하면 엄단하겠다고 담화했다. * 김영삼 통민당 총재는 민정당에 전당대회를 취소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여/야 공동으로 민주화 선언을 제의했다. * 경찰은 민추협과 전국 110개 대학을 수색했다. * 우산유 버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 제16회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가 개최되었다. * [[6월 9일]] * 치안본부는 6.10 규탄대회에 대비해 재야인사들의 연금 및 대회 원천봉쇄를 전국 경찰에 지시했다. * '''[[연세대]] 신촌캠 교문 앞에서 열린 '6·10 대회 출정을 위한 범연세인 총궐기 대회' 도중 경영학과 2학년생 [[이한열]]이 경찰이 직사로 쏜 [[최루탄]]에 맞아 실신했다.''' * [[서울교대]] 1~3학년생은 구타를 이유로 정태수 학장의 퇴진을 요구한 동료 학생에 동조해 수업을 거부했다. * 서방 G7 국가들이 [[1988 서울올림픽]] 공동 지원에 합의했다. * 북한은 '비동맹각료특별회의'를 평양에서 개최했다. * [[6월 10일]] * 민정당은 서울 잠실체육관 전당대회에서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 노태우 후보는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1988년 대선과 올림픽 뒤 내각제 개헌을 관철시키겠다고 천명했다. * '''국본은 전국 20개 도시에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는 [[6월 민주항쟁]]의 시발점이었다.''' * '''학생과 시민 등 일부 시위대가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시작하였다.''' * [[김영삼]] 통민당 총재는 민정당의 정치 일정 강행을 비난하고 구속자 석방 및 사면/복권을 촉구했다. * [[창원]]공단 노동자들은 퇴근길에 “노동3권 보장하라”와 “[[쪽바리]]는 물러가라”등의 구호를 외치며 공단파출소를 부수고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 미 국무부는 한국의 시위 사태에 대해 논평하며 대화와 타협을 촉구했다. * 헤비메탈 그룹 [[시나위(밴드)|시나위]]가 2집 을 발표했다. * [[6월 11일]] * 농림수산부는 1986년도 농가부채 증가율이 농가 소득보다 2배 가량 올랐다고 발표했다. * FIFA는 지역예선에 불참한 북한의 올림픽 축구 출전권을 최종 박탈했다. * [[6월 12일]] *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1988년 대선과 올림픽 뒤 의원 내각제로 합의 개헌되면 대통령 임기에 구애받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 이웅희 문공부 장관은 일부 야당 세력이 계속 폭력시위에 참가할 시 대응조치가 불가피하다고 정부의 입장을 발표했다. * 6.10 시위대 중 4백여 명이 [[명동성당]]에서 3일째 철야농성을 벌였다. * 경찰은 6.10 집회와 관련하여 [[양순직]] 통민당 부총재 13명과 시위 현장에서 연행된 3,854명 중 123명을 구속했다. *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등 3개 여성단체는 '최루탄 추방운동'을 전개했다. * [[연세대]]생 3천여 명은 '살인적 최루탄 난사에 대한 범 연세인 규탄대회'를 열어 교문 밖에서 시위를 했다. * MBC는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민정당은 정을 주는 당"이란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코미디언 [[김병조]]에 대해 일시 출연정지 조치를 내렸다. * [[경북]] [[경주시]]에서 [[신라]]시대 [[토용]] 11점이 발굴되었다. * [[6월 13일]] * 여/야 정당은 공전 둥인 134회 임시국회를 정상화하고 6.10 사태 등 논의에 합의했다. * [[대전고등학교 야구부|대전고 야구부]]가 42년만에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 서울지검은 6.10 규탄대회 주도혐의로 양순직 통민당 부총재 등 국민운동본부 간부 13명을 구속했다. * 통민당은 양순직 부총재 등을 즉각 석방하지 않으면 현 정권(전두환 정권)에 전면 투쟁하겠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 [[6월 14일]]: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는 서울올림픽 방송중계 중남미 지역 방영권을 292만 달러에 팔았다. * [[6월 15일]] * 경찰은 전국 59개 대학에서 과격시위자 916명을 연행했다고 발표하였다. *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전국 사제단 [[미사]]에서 민주화를 위해 여야에 조건 없는 대화를 촉구했다. * [[천주교]] [[사제(성직자)|사제]]들과 신자 8천여 명이 서울 명동에서 촛불 행진을 벌였다. * [[명동성당]] 농성 중이던 학생과 시민들은 특별 미사와 촛불 가두행진을 연 뒤 자진 해산하였다. * [[6월 16일]] * [[문교부]]는 [[서울교대]]에 휴교령을 내렸다. * 전국 8개 도시에서 17,400여명이 가두시위를 벌였다. * 경남 거제군 [[해금강]] 해상에서 유람선 '극동호'에 큰불이 나 탑승자 29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되었다.([[극동호 유람선 화재 사건]]) * [[미국]]-[[폴란드]] 양국이 1981년 이후 처음으로 대사 교환에 합의하였다. * [[6월 17일]]: 민추협 소속 1백여 명은 김대중 공동의장 연금에 항의하며 철야 농성을 벌였다. * [[6월 18일]] * '''국민운동본부는 '최루탄추방대회'를 개최하여 전국 16개 도시 247개소에서 150여만명이 참가했다.''' * 부산 시위 도중 회사원인 이태춘 씨가 최루탄을 맞아 좌천동 고가다리 밑으로 추락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후 이씨는 6일 뒤에 병상에서 숨을 거두었다. * 미국 하원 외교아태소위는 여야의 대화 재개를 촉구하는 내용의 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 [[6월 19일]] * 이한기 국무총리서리는 시위사태가 계속되면 비상한 각오를 하겠다고 담화했다. * 전국 79개 대학교에서 시위가 계속되었다. * 제임스 릴리 주한미국대사는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전두환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 [[미국]] 국무부는 미국 국민들에게 시위 지역에 가지 말도록 '[[한국]] 여행 지침'을 발표했다. 이 조치는 당월 30일에 해제되었다. * [[대전시]]에서 시위대가 탈취한 버스가 휴식중인 전경 대열을 덮쳐 박동진 일경이 숨지고 나머지 2명이 중상을 당했다. * [[김영삼]] 통민당 총재는 [[전두환]] 씨와의 회담을 공식으로 제의했다. * [[6월 20일]] *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시국 수습을 위해 신민당과 한국국민당 총재와 연쇄 대표회담을 개최했다. * 국본은 26일에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국민평화대행진(이하 국민평화대행진)'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 서울시내 51개 중/고등학교 교사 105명은 정치 민주화와 교육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국성명서를 발표했다. * [[6월 21일]] * 민정당 의원총회는 개헌 논의를 다시 열어 9월까지 합의가 안 되면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 한국 축구대표팀이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결승에서 호주를 승부차기로 꺾어 우승했다. * 게스틴 시거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한국의 시위사태에 군을 투입하는 것은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천명했다. * 소련의 지방 대의원/판사 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복수후보 투표를 실시했다. * [[6월 22일]] * 종교인 1천 5백여 명이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구국 기도회를 열어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 [[전두환]] 씨는 [[윤보선]]과 [[최규하]] 두 전직 대통령을 청와대로 불러 시국수습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 경찰병력 40여명이 부산가톨릭센터에서 농성 후 귀가하던 버스에 최루탄을 난사하고 집단 폭행했다. *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전두환 씨의 개헌논의 재개와 구속자 석방, 김대중 연금해제 등을 수락했다고 발표했다. * 미국 국무부는 군의 개입이 한국의 국익에 심각한 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6월 23일]] * 게스틴 시거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한국을 방문하여 시위진압에 계엄령 및 군부 개입을 반대함을 표했다. * [[영광 원자력 발전소]] 7, 8기가 준공되었다. * [[6월 25일]] * [[한국 정부]]가 생물무기금지조약(BWC)에 가입했다. * 경찰은 김대중 민추협 공동의장의 연금을 해제했다. * 전국 42개 대학에서 9천여 명의 학생들이 교내 집회와 가두 시위를 진행했다. * [[6월 26일]] * 전두환 씨는 월산, 의현, 녹원 등 불교계 인사들과 요담했다. * '''국본은 전국 34개 도시에서 '직선제 개헌 요구를 위한 국민평화대행진'을 개최하였다.''' * 경찰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창립대회'를 봉쇄했다. *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이하 인민노련)'이 결성되었다. * [[6월 27일]] * 민정당은 6.26 시위에 나타난 민의를 수렴하겠다고 성명을 냈다. * 치안본부는 6.10 ~ 6.26까지 17일 동안 전국에서 시위 횟수가 연 2,145회나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 미국 상원 본회의는 '한국 민주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 [[6월 28일]]: 프로권투선수 [[장정구]]가 WBC 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 10차 방어전에서 타이틀 방어 성공했다. * [[6월 29일]] *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 김대중 사면복권, 등 8개항의 시국수습을 위한 특별선언을 발표했다.'''('''[[6.29 선언]]''') * 증권거래소는 6.29 선언에 따라 종합 주가지수가 7.04%나 올라 394.46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 [[6월 30일]] *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는 민주화 공동 선언을 통한 '국민화해의 날' 제정을 정부와 여당에 제의했다. * 국어연구소는 한글 [[맞춤법]] 및 표준어 개정안을 확정해 문교부에 제출했다. * 문교부는 시위관련 징계 학생들과 해직 교사들의 복학 및 구제 등 학원안정 회복을 위한 종합 대책마련에 착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