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1988년 (문단 편집) ==== 6월 ==== * [[6월 1일]] * 서울지하철노조가 쟁의발생 신고를 냈다. * 서울올림픽 선수촌 및 기자촌이 준공되었다. * 광주일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3일]] * 검찰은 <중간계층의 구성과 민주변혁에서의 지위>라는 논문을 쓴 서관모 교수를 소환하였다. * 서노협·마창노련·사무금융노련 등이 중심이 되어 '노동법개정 전국노동조합특별위원회'를 결성했다. * 서총련은 '제1회 서울지역대학생 통일노래한마당'을 경희대 서울캠에서 개최하였다. * [[6월 4일]] -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을 위한 범국민 진상조사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6월 6일]] - 필리핀 상원은 핵무기 반입 및 핵 적재 함정의 기항 금지를 골자로 한 반핵 법안을 통과시켰다. * [[6월 7일]] -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이하 전국노운협)'가 결성되었다. * [[6월 8일]] * 야 3당 총재들은 '6.10 회담 투쟁'과 관련하여 정부는 학생과 대화하고 학생은 회담 연기를 촉구하도록 하는 등의 공동 발표문 6개항에 합의하였다. * 중공 베이징 대학생들이 민주화 요구 시위를 위해 천안문 앞에 집결하고자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좌절되었다. * [[6월 9일]] * 오후 10시에 연세대 신촌캠에서 ‘6·10 남북청년학생회담 성사를 위한 백만학도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 교통개발연구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10일]] * 연세대 신촌캠에서 전대협의 주도로 전국 2만여 명의 대학생들이 모여 ‘6·10 민주화투쟁 1주기 기념대회' 및 '판문점 출정식’을 열어 판문점까지 나아가려 했지만 경찰의 저지로 150여명이 부상당하고 1천여명이 연행되었다. 이로 인해 남북학생회담은 무산되었다. * 포철이 국민주 1호로 증권거래소에 상장하였다. * '부산지역노동조합연합회(이하 부노협)'가 결성되었다. * 최광수 외무부 장관은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대회 및 불가침 협정 후 구체적 군축협상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하였다. * 삼성신용카드가 카드 브랜드명을 '위너스카드'로 확정하였다. * 한국사회연구소가 기관지 <동향과전망>을 창간하였다. * [[6월 11일]] - 문공부는 초조본 대반야바라밀경 249권을 국보 제241호로 지정하였다. * [[6월 14일]] - 고려대 등 3개 대학생 1천 2백여 명이 파주 임진각에서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염원제'를 거행하였다. * [[6월 15일]] * 전국 2백여 명의 법관들이 대법원 전면 개편을 주장하는 서명운동을 개시하였다.(법관 서명파동) * 서울민사지법 소장법관 102명이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민통련은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준비 소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사월혁명연구소가 발족되었다. * 청문회제도 신설을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이 제정되었다. * <제일경제신문>이 창간되었다. * [[6월 16일]] - 10개 학술단체는 검찰의 서관모 교수 소환에 대해 학문, 사상, 비판의 자유 침해라고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6월 17일]] - 국회는 광주특위 등 7개 특위구성결의안을 통과시켰다. * [[6월 18일]] *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인노협)'가 결성되었다. * 한국교육개발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20일]] - 한국기업평가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21일]] - 서울올림픽조직위는 올림픽 공식가요 <손에 손잡고>를 발표하였다. * [[6월 24일]] - 서울대생 1백여 명이 농촌활동 보조금을 요구하며 총장실에 난입하였다. * [[6월 25일]] - '성남지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성남노협)'가 결성되었다. * [[6월 27일]] - 여야가 합의해서 5공비리 특별위원회와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 [[6월 28일]] - 북한의 김일성이 몽골을 공식 방문하였다. * [[6월 30일]] * 대림산업이 건설 중이던 [[이란]] 칸간가스정제소 건설현장에서 이라크군 전투기의 공습으로 현지에서 작업 중이던 한국인 건설노동자 13명이 사망하고 37명이 부상당했다. *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 등 양심수 46명이 가석방되었다. * 연세대학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