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89년 (문단 편집) ==== 2월 ==== * [[2월]] 중 * '부천지역 임금인상 및 노동법 개정 투쟁본부'가 결성되었다. * '서울노동자문화예술활동위원회(이하 서노문위)'가 결성되었다. * [[2월 1일]] * [[통일교]] 계열 일간지인 [[세계일보]]가 창간되었다. * 국제신문이 언론통폐합 이후 폐간 9년만에 복간되었다. * 일본 사회당이 한국을 공식 인정하였다. * 전대협은 [[연세대학교]] 기자회견에서 정부 주도의 남북대학생교류회에 불참할 것을 선언하였다. * 한국-헝가리 양국이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이는 첫 공산권 국가와의 수교였다. * 법무부는 소련 등 14개 미수교국가에 대해 입국절차를 개선하였다. * [[2월 2일]] * 문교부는 대학생의 [[과외]] 교습을 허용한다고 발표하여 과외 규제가 처음으로 완화되었다. * 전교협은 교원노조 결성을 선언하였다. * 완구업체인 (주)삼모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이에 사측은 [[구사대]]를 풀어 폭력으로 노조 활동을 방해하였다. *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귀국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측과 합의한 금강산 공동개발, 시베리아 개발 공동참가, 합자투자회사 설립 추진 등 3개 합의사항을 발표하였다. * 북한 외교부는 헝가리와의 관계를 대리 대사급으로 격하시켰다. * [[2월 3일]] * 국내 최초로 5.18 민주화운동을 명확히 다룬 다큐멘터리 <어머니의 노래>가 MBC에서 방송되었다. * 일월서각은 일본 구월서방과 남북한 간행물 상호 공급조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하였다. * 서울지검은 1987년 KAL기 폭파범 김현희를 살인죄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하였다. * 삼모 노조위원장 김혜련이 사측에 의해 강제 감금/해고당했다. 이후 그녀는 4월 19일에 구속되었다. * [[2월 6일]] - [[일본 제국|일제]]에 의해서 강제로 폐지되었던 음력 [[설날]]이 이 해부터 다시 국가공휴일 및 연휴로 지정되어 부활하였다. 그 동안 양력설([[새해 첫날|신정]])에 주로 귀성 및 귀경길 행렬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 당시까지는 고향길 행렬이 한산하였다. * [[2월 8일]] * 판문점에서 '남북고위당국자회담 예비회담'이 건국 최초로 열렸다. * '전문대학총학생회연합'이 결성되었다. * 한국광고주협회가 설립되었다. * [[2월 9일]] * 국무회의는 '[[화염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의결하였다. * 전국 35개대 총학대표는 [[서울대]]에서 등록금 동결을 요구하는 공동 투쟁성명을 발표하였다. * 석남미술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 [[2월 10일]] * 정부는 임시국무회의에서 '남북교류협력법안'을 의결하였다. * '전국해직언론인 원상회복쟁취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2월 11일]] - 서울지검은 '인천·부천지역민주노동자회(이하 인부노회) 사건’을 발표하여 6일 뒤에 관련자 5명을 구속하였다. * [[2월 13일]] * 전국 90개군 농민 2만여 명이 '수세 폐지 및 고추 전량수매 쟁취를 위한 전국농민대회'를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하였다. * 북한-모로코 양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2월 14일]] - 토지공개념위원회는 '고소득자 5%가 임야 84.1% 소유' 등지의 각종 토지소유 실태를 발표하였다. * [[2월 15일]] * 서총련 소속 대학생 15명이 [[주한미국대사관]]을 방문하여 한-미 팀 스피릿 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전달하였다. * [[소련군]]의 마지막 부대가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아프간]]에서 철군을 완료한 후 9년동안 지속되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소련의 패배로 끝이 났다. * [[2월 16일]] * 대통령 직속 교육정책자문회의가 발족되었다. * 정부는 사회정화위를 폐지하고 반공연맹을 '자유총연맹'으로 개편하였다. * 전남대생 등 150여 명이 광주 미문화원을 기습하고 유인물을 뿌리며 시위를 벌였다. * 우경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 [[2월 18일]] * 전민련이 주최한 '서울시민 결의대회'가 경찰의 원천 봉쇄로 무산되었다. * 일제의 강제 징용으로 소련 사할린에서 타향살이하던 우리 동포 9가족 17명이 40여년 만에 일시 귀국했다. * [[2월 19일]] * 전교협은 대의원회의에서 교원노조 결성을 결의하였다. * WBA 밴텀급 챔피언 문성길이 일본의 고바야시 치아키를 KO로 꺾어 2차로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아비치 아레나|스톡홀름 글로브 아레나]]가 세계에서 가장 큰 구형 공연장으로 개장했다.[* 현재는 2023년에 개장한 [[MSG 스피어]]에 의해 1위를 내주었다.] * [[2월 20일]] * 대한변협은 정부의 남북교류특례법과 관련해 국보법 폐지 병행을 주장하였다. * '범민족평화문화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밤 10시 43분부터 3시간 44분 동안 전국 각지에 개기월식이 발생했다. * [[2월 21일]] * '서울지역 민중교육운동 탄압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에서 발생한 노조와 [[구사대]] 간 충돌 과정에서 노조원 2명이 식칼에 찔려 부상을 입었다(현대중공업 노동자 식칼테러 사건). * [[2월 22일]] * [[호남대]]생 30여 명은 호화판 지방청와대로 악명이 높았던 전남도지사 공관에 기습해 방화하였다. 이로 인해 공관 1~2층이 전소되었다. * 서울시내 9개 재야 청년단체가 [[쇼와 덴노]] 조문사절 파견을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 여연은 서울 종로 파고다공원에서 '[[히로히토]] 조문사절 파견 규탄대회'를 개최하였다. * (주)삼모 측은 노조 탄압을 위해 신림/가리봉동 일대 조폭 '짧은머리파'를 라인에 배치하였다. * [[2월 23일]] * 강영훈 국무총리는 [[쇼와 덴노]]의 장례식에 참석키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 전대협은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공식 참가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 현대중공업 서울결사대가 이날부로 상경하였다. * 당일자 [[주간조선]]에 <좌파에도 우파에도 손짓 / 수행의원들 추태 만발: [[김대중]] 총재 유럽순방 뒷얘기>라는 제목으로 [[평민당]]의 유럽순방 중 추태를 보도했다. 이는 '[[조평사태]]'의 발단이 되었다. * [[2월 24일]] * 현대중공업 서울결사대는 평민당과 통민당 당사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 쇼와 덴노의 국장이 일본 도쿄에서 거행되었다. *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 811편 B747-122기가 [[태평양]] 상공에서 동체 일부 파손이 발생해 급히 호놀룰루에 착륙했으나, 승객 337명 중 9명이 숨졌다.([[유나이티드 항공 811편 사고]]) * [[2월 25일]] * 전민련은 당일 '노태우 정권 규탄 범국민대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고 104명이 연행되었다. * 서울지검 공안부는 북한 원전 <근대조선역사> 등 3종에 대해 출판사와 서점을 압수수색하였다. * [[일본]] TV아사히에서 <[[고속전대 터보레인저]]>가 첫 전파를 탔다. * [[2월 26일]] - 부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였다. * [[2월 27일]] * 부시 [[미국 대통령]]은 방한 후 한미정상회담에서 노태우와 안보협력, 통상마찰, 북방정책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 전민련 회원 등 30여 명은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부시 방한 반대'를 외치며 [[주한미국대사관]]까지 행진하여 가두 시위를 벌였다. * 정부와 민정당은 삼청교육대, 광주항쟁, 해직공무원 등에 대한 보상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 민교협 등 4개 단체는 전국 76대 교수 3,643명의 연명으로 교육관계법의 민주적 개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2월 28일]] - 체신부는 정권홍보 도구로 이용된 대통령 기념우표를 더 이상 발행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