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0년대 (문단 편집) === 중화권 === [[중국]]은 [[장쩌민]] 주석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을 이어받아 경제는 계속 성장했고, 특히 상하이, 베이징, 광둥성 등 경제특구와 대도시들이 성장했으며 1997년과 1999년에 영국령 홍콩과 포르투갈령 마카오를 각각 반환받아 자존심을 굳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공업우선 정책 때문에 농촌이 급속도로 몰락했고, 농민들은 입에 풀칠하고자 저임금까지 마다하며 공업지대로 몰려들었으나 일자리는 이를 충족치 못했다. 거기에 폭력조직 '삼합회'의 손까지 뻗쳐져 중국 전 대륙에 임금착취가 판을 쳤다. 이런 풍토 속에서 기업가들은 폭군화되며 관료들도 봉건영주화돼 있으며, 부정부패도 판을 치는 데다 물가가 20%나 오르는가 하면 실업자가 1억이나 증가하는 등 사회불안이 이어지자 중국 농민들은 점차 반발했다. 이에 중국 정부는 반체제 인사들을 거듭 탄압하여 인권 문제가 전세계 여론의 도마에 올랐고, 2000 및 2008 베이징 올림픽 유치운동 당시 이러한 문제가 더욱 부각됐다. 반면 홍콩은 1997년 반환을 전후해 새 역사의 전환기에 섰다. 반환을 앞둘 당시 중국 본토에선 기대감이 커졌으나 정작 홍콩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는데, 특히 언론 분야에서 두려움이 더 컸다. 영국 점령시기 동안 언론의 자유를 맘껏 누리던 홍콩 언론들은 반환을 앞두고 중국 정부로부터 해코지를 당할까봐 불안에 떨었고,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예처럼 중국 신화사통신에 검열을 의뢰하거나 1995년에 중국 사형수의 장기적출 문제를 풍자한 시사만화 <릴리 웡> 작가 래리 페인을 해고하는 등 자체검열 움직임도 있었다. 그래도 1997년에 반환한 중국 정부는 '1국가 2체제'를 내세워 홍콩에겐 중국 영토임을 인정하는 대가로 영국 식민지 때와 같은 독자성을 보장해 주기는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