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0년대 (문단 편집) === 게임 === 콘솔 게임계에서는 1990년대 초중반엔 [[게임보이]], [[슈퍼패미컴]], [[메가드라이브]], [[PC엔진]] 등의 16비트 콘솔 게임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콘솔 전쟁이 1980년대보다 상당히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16비트 콘솔 싸움은 결과적으로 [[슈퍼패미컴]]이 승리하였지만 1980년대에 [[패미컴]]이 온갖 게임 시장을 장악하던 때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치열한 싸움이었다. 1990년대 초중반때만 해도 후반 때와는 달리 1980년대 전반의 게임들과 같은 선상에 있거나 약간 상위호환에 있는 편이였다. 실제로 1991년 출시된 희대의 명작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등장이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계기를 제외하면 게임의 역사에서는 본격적으로 게임이 발달하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 때부터 1990년대 초중반까지를 같은 세대로 취급된다. 그러나 이것이 딱히 문제점인 것도 아니며 이때부터 게임이 점차 더 대중적으로 변모했기 때문에 1980년대 전반 게임들의 장점들과 스타일을 지니면서 더 대중적이고 더 세련된 모습을 보이게 되어 1990년대만의 특징을 부여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16비트에서 32비트로 넘어가기 시작한 [[플레이스테이션|5]][[세가 새턴|세]][[닌텐도 64|대]] 콘솔 시대로, 이 시기에 비디오 게임의 비약적인 그래픽 상승 경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PC에서는 [[둠 시리즈]]가 그래픽 혁명, [[미스트(게임)|미스트]] 시리즈가 [[CD]]ROM의 대용량 매체를 적극 활용한 인터랙티브 혁명을 이끌어 냈고, 콘솔 쪽에서는 32비트 게임기들이 보다 제대로 된 폴리곤 그래픽 지원과 [[CD]]ROM 매체를 이용한 [[FMV|풀모션 비디오]][* 게임외적인 부분의 CG/실사동영상을 재생하는 용도가 메인이었지만 몇몇 게임은 이러한 풀모션 비디오를 배경에 일부 박아넣는 식의 연출 용도로 활용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파이널 판타지 7]]에서 이런 기법이 많이 사용되었다.] 활용으로 3D 게임의 중흥기를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 중후반은 [[세가 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 [[PC-FX]] 등의 게임기들이 경합하며 만들어낸 2D 게임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특히 [[세가]]와 [[소니]]의 너 죽고 나 죽자식의 치열한 무한경쟁이 수없이 많은 2D 수작 게임들이 탄생한 배경이 되었다. 1990년대 말 [[플레이스테이션 2]]와 [[드림캐스트]]가 등장하며 보다 완연한 3D게임 시대가 열렸으나 그전까지만 해도 폴리곤 기술은 텍스쳐의 해상도도 낮고 해서 아직 조악한 수준이었으며 [[1999년]]까지는 2D의 우세가 지속된다. 그나마 새턴과 플스의 초반 싸움에서 새턴이 플스하고 호각을 뜬 이유도 새턴이 2D 쪽에서는 확실히 우위를 점했기 때문. [[파이널 판타지 7|그 게임]] 이후로 새턴이 밀릴때에도 2D 격투게임/슈팅게임의 이식률이 좋은 새턴은 이쪽 장르 매니아들에게 여전히 수요가 높았었다. 2000년대 초반, 6세대 콘솔의 등장을 거치면서 3D 구현기술이 발전해 [[2002년]]쯤에는 완전한 3D의 우세가 굳혀졌다. 휴대용 게임의 경우엔 '''[[게임보이]]'''가 1990년대 초 중반을 주름잡았고 전 세계를 평정했다.[* 물론 이후론 [[PSP]], [[닌텐도 DS]] 등의 등장으로 인해 인기가 많이 사장되었지만 당시로선 저렴하고 휴대성이 좋은 게임기론 게임보이가 유일했기에 저연령층에서 인기가 좋았다.] [[게임보이 컬러]]가 출시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게임보이는 여전히 흑백 8비트 그래픽으로 작동되었다. 하지만, '''당시로선 성능이 매우 좋았던 혁명적인 휴대용 게임기'''였다. PC 게임계는 한동안 DOS 2D 디스켓 게임 일색에 그래픽카드도 ATi 등의 2D 그래픽카드 위주였으나, 1991년 세계 최초로 <호버탱크 3D>란 3D 게임이 등장했다. 1994년 들어 CD 지원 게임이 점차 나오고 1995년 들어 윈도우 지원 게임들도 등장했다. 같은 해에 3dfx 사가 '부두 그래픽카드'를 개발하면서 풀 3D 게임 제작편수가 늘었고, 게이머들도 게임 소프트웨어를 고를 때 CPU, 운영체제 외에 그래픽카드도 필수 요건에 넣기 시작했다. '부두 시리즈'의 성공으로 엔비디아 등 후발주자들도 그래픽카드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3년 미국 웨스트우드 스튜디오가 세계 최초로 RTS 게임 <듄 2>를 제작했고, 뒤이어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도 1994년 <워크래프트>를 제작했다. 1997년 케이브독은 세계 최초로 3D 그래픽 RTS <토탈 어나힐레이션>을 개발했다. 1998년 이전까지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가 우세였다가 이후 <스타크래프트>가 압살했다. 한편 90년대 말 한국 게임업계는 IMF폭탄을 맞은 직후[* 때마침 야간/할인시간정액제가 실시되어 요금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스타크래프트]]의 등장으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 많던 당구장이 우수수 폐업하고, 그 자리에 PC방이 들어섰다. 오락실 게임이 죽어가던 와중에 청소년들은 또다른 게임 문화에 순식간에 적응했고 IMF 극복기에 절정에 달해 상가 건물은 조금만 규모가 커도 한 건물에 PC방이 두 개씩 들어가 있는 광경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IT 투자 붐(거품이었다)이 게임 업계에도 흘러들어 [[아트록스(게임)|아트록스]], [[아마게돈(게임)|아마게돈]] 따위의 스타 아류작이 수도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기 일쑤였을 정도로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컸고 스타크래프트를 능가하는 국산 RTS를 만들려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하였다. 90년대 초부터 중소규모 업체 위주로 소소하게 이어져 오던 게임 개발업계는 거품이 꺼짐과 동시에 확실하게 가지치기를 당해 현재는 소위 3N이라는 업체들만이 살아남아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 패키지 게임 시장도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편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e스포츠]]가 태동하는 기반이 되었고 이 무렵 최초의 프로게이머라 할 수 있는 [[신주영(프로게이머)|신주영]], [[이기석]] 등의 인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동안 게임 수입업계는 SKC, LG소프트, 쌍용, 동서게임채널 등이 각축을 벌이다가 1998년 미국 일렉트로닉 아츠가 현지법인 '일렉트로닉 아츠 코리아'를 세우면서 게임 직배가 시작됐다. 1994년 KBS2 <생방송 게임천국>을 시초로 유료 ARS 게임도 어린이들 사이에 성행했고, PC통신에선 머드게임이 유행했다가 1996년 넥슨이 <바람의 나라>를 출시함으로서 국내 최초로 인터넷 기반 온라인 게임이 생겨났다. 이후 1999년 ADSL 보급과 더불어 온라인 게임이 집집마다 보급될 토양을 마련해 주었다. 90년대 말 한국 오락실 게임은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그 시기에 나온 댄스 리듬게임인 [[DanceDanceRevolution|DDR]]과 [[펌프잇업]]은 반짝인기를 얻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