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0년대 (문단 편집) === 만화, 애니메이션 === [[한국 만화]]와 [[한국 애니메이션|애니메이션]]은 양적 전성기를 맞은지 불과 몇년 만에 급격한 변화와 쇠퇴를 겪었다. 80년대 후반에 정립된 [[만화잡지]]와 TV 애니메이션이 90년대 초 황금기를 맞았고,[* 지금도 깨지지 않는 [[날아라 슈퍼보드]]의 최고 시청률(42.8%)이 이 무렵에 세워진 기록이다.] 잡지 플랫폼도 인기투표 순위나 신인작가 공모 등 일본 소년만화 잡지의 방식들을 받아들였다. 만화가 인맥구도도 종래의 문하생 출신 중심에서 동인 출신으로 점차 바뀌었고, 연령도 10대 후반 ~ 20대로 하향화되어 작품 성향도 동년배 독자들의 관심을 공유하는 쪽으로 전환되었다. 시사만화계에선 [[박재동]] 화백의 성공을 계기로 박시백, 박순찬, 김용민, 백무현, 장봉군 등 젊은 진보 시사만화가들이 탄생했으며 중도/보수신문 쪽에선 김상택, 신경무, 양만금, 조대현, 김송번, [[배계규]] 등이 나름 활약했고, 학습만화계에선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가 스테디셀러 지위에 올랐다. 1990년 [[공주대학교]]에 처음으로 [[만화학과]]가 생겨 만화가 학문으로 점차 인정받기 시작했다. 1995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을 시초로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만화행사를 치르기 시작했으며 1998년 경기도 부천시가 지자체로서 최초로 '[[부천만화정보센터]]'를 열어 만화/애니메이션 진흥사업도 꽃피기 시작했다. 위와 같이 양적으론 관심이 증폭했는데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기성세대의 부정적 인식과 정부/기업 차원에서 지원한 소위 대작 애니메이션의 잇따른 실패, 일본 출판만화 무차별 정발, 그리고 IMF 사태로 인한 시장 규모 축소로 고난의 시기를 맞았다. 특히 [[1997년 청소년보호법 파동]]으로 성인만화 시장은 사실상 쑥대밭으로 전락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80년대 말~90년대 초의 침체기를 거쳐 제3차 아니메 붐으로 기억되는 [[전성기]]를 맞았다. 1992년부터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시리즈/애니메이션|세일러 문]], [[크레용 신짱/애니메이션|크레용 신짱]], [[슬램덩크(TVA)|슬램덩크]],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시리즈|포켓몬스터]] 같은 세계적인 인기작이 쏟아져 나왔지만 어떤 평론가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높아서가 아니라, '[[캐릭터]] 붐'이었다는 평을 내리기도 했다. 2000년 이후에 몰아닥친 캐릭터 [[모에]] 붐에 빠진 아니메 오타쿠들이 자라나는 시기였다. 각 방송사들이 황금시간대(저녁 7시대)의 애니메이션 편성을 줄이는 대신 심야 애니메이션이 활성화되는 등 저출산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분명 이 시기의 일본 애니메이션은 작품성에서 타 시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95년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1997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는 골수 팬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메시지로 오히려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공각기동대]]와 [[카우보이 비밥]]도 뛰어난 완성도로 찬사를 받았다. 반면 1991년 CATAS의 개발 중단으로 사실상 답보 상태였던 애니메이션 제작 디지털화는 1992년 <북두의 권> 게임 데이터 작성을 계기로 진전을 보았고, 마침내 1997년 토에이 동화가 업계 최초로 <게게게의 키타로> 64화를 '레타스프로' 소프트웨어로 제작해 디지털화를 완수해냈다. 이로써 셀과 물감, 필름이 주류이던 애니메이션 공정은 점차 컴퓨터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일본 만화]]에서도 다양한 인기작들이 나왔는데 위에서 언급된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시리즈/애니메이션|세일러 문]], [[크레용 신짱/애니메이션|크레용 신짱]], [[슬램덩크(TVA)|슬램덩크]] 등은 원작이 만화인 작품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만화 잡지인 [[소년 점프]]는 90년대 초반 [[드래곤볼]], [[슬램덩크(만화)|슬램덩크]], [[유유백서]][* 이 중 드래곤볼은 [[1980년대]]에 연재가 시작되었다.] 등으로 황금기를 누리다가 이 세 작품이 모두 연재를 종료한 1995~1997년 시점에는 [[점프 암흑기|암흑기를 겪게 되고,]] 경쟁지 <주간 소년 선데이>가 [[명탐정 코난]]과 [[소년탐정 김전일]]로 상승세를 거듭했다. 이후 1998년에 [[원피스(만화)|원피스]]와 1999년에 [[나루토]]가 흥행에 성공하며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는 큰 굴곡을 겪었다. [[나카요시]], [[리본(잡지)|리본]] 등 소녀 만화 잡지들도 전성기를 맞았으며, 그 중 세일러문을 배출한 나카요시는 1993년 월 발행 200만부를 돌파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 게임제작사 에닉스가 <소년 간간>을, 미디어웍스가 <월간 코믹 전격대왕>을 각각 창간해 틈새시장을 형성했다. 미국 출판만화계는 침체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미 DC 코믹스는 1989년 영화화 이후부터 시작된 배트맨 붐과 1991년 만화책 <슈퍼맨의 죽음> 700만부 달성 등으로 잠깐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반면 1980년대까지 수많은 영웅들을 배출하며 번성했던 마블 코믹스는 코믹북 시장 사양화와 사주 로버트 페렐만의 문어발식 M&A로 1996년에 파산 선고를 받아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1997년 칼 아이칸을 거쳐 토이 비즈에 인수된 마블은 타개책으로 주력업종인 만화책 출판에서 영상 중심의 '종합 콘텐츠 플랫폼'으로 바꾸고자 했다. 영미권 극장 애니계는 단연 '디즈니 천하'라고 할 수 있는데, 1989년 <[[인어공주(애니메이션)|인어공주]]>로 침체기를 벗어난 월트 디즈니 엔터테인먼트가 1991년 <[[미녀와 야수(애니메이션)|미녀와 야수]]>, 1992년 <[[알라딘(애니메이션)|알라딘]]>, 1994년 <[[라이온 킹]]>, 1995년 <[[포카혼타스(애니메이션)|포카혼타스]]>, 1996년 <[[노틀담의 꼽추(애니메이션)|노틀담의 꼽추]]>, 1997년 <[[헤라클레스(애니메이션)|헤라클레스]]>, 1998년 <[[뮬란]]> 등을 잇따라 발표해 극장 애니 시장을 사실상 압살했고, 특히 <미녀와 야수>는 종전 디즈니 프린세스들이 지녔던 고전적 여성상을 탈피했다. <알라딘>은 사상 최초로 유색인종 디즈니 프린세스를 배출했다. 3D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도 디즈니와 함께 세계 최초로 풀3D 장편애니 <토이 스토리>를 제작해 대혁명을 이뤄냈다. 1998년에 신생 영화사 드림웍스도 최초로 장편애니 <개미>를 제작해 디즈니의 아성에 도전했다. TV애니계에선 1991년 니켈로디언 측이 <더그의 일기>, <야! 러그래츠>, <렌과 스팀피> 3종을 처음으로 내놓아 사이코틱한 애니 '닉툰'을 확립시켰고, 이에 타임 워너가 니켈로디언과 디즈니 채널에 맞서기 위해 '카툰네트워크'를 개국해 1990년대 중후반에 <덱스터의 실험실>, <핑키와 브레인>, <파워퍼프걸> 등을 히트시켰다. FOX와 워너브라더스도 1990년과 1995년에 각각 'FOX Kids'와 'WB Kids'를 각각 개국하고 1990년대 중후반부터 일본 애니메이션 편성을 점차 확대했다. 성인취향 애니 쪽은 <심슨가족> 붐 속에서도 음악채널 MTV는 1993년 <비비스와 벗헤드>, 오락채널 코미디 센트럴은 1997년 <사우스파크>를 각각 방송해 나름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