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1990년대 (문단 편집) === 두뇌스포츠 === 1990년대 두뇌스포츠 중 단연 돋보이는 건 '바둑'이다. 이 시기 동안 한국은 동양증권배와 응씨배, 진로배, 후지쯔배, 삼성화재배 등지의 국제기전에서 중국, 일본을 제치고 '바둑 최강국'의 실력을 과시했다. 물론 중국도 만만치 않았지만 여전히 세계 최강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국내 무대에선 이창호 9단이 1인자 자리를 굳힌 가운데 조훈현 9단, 유창혁 9단, 서봉수 9단 등이 그 뒤를 좇았다. 1993년 한 해 동안 한국은 잉씨배 등 4대 기전을 모두 석권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는데, 국내 무대에선 이창호 당시 6단이 12개 타이틀을 석권한 반면에 조훈현 9단, 서봉수 9단, 유창혁 6단이 더 부진했다. 1994년에도 이창호 7단은 13개 타이틀을 차지해 1인 독주를 또 이어간 반면, 조훈현 9단이 5관왕, 유창혁 6단이 2관왕에 올랐으며 서봉수 9단도 대망의 1,000승을 달성했지만 무관에 그쳤다. 같은 해엔 진로배(2월 23일)와 동양증권배(7월 22일, 조훈현 9단), 후지쯔배(8월 6일, 조훈현 9단)를 각각 석권해 여전히 강세를 보였다. 1995년에도 이창호의 독주는 지속되어 타이틀전에선 16연속 우승했고, TV바둑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했다. 한국은 진로배에서 3연패를 달성하여 세계대회 8연속 우승 신기록을 세웠으며 서봉수 9단도 신사배 국제바둑대회에서 우승해 2년만에 슬럼프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국제대회에선 중국에게 연패했으며, 이는 오히려 마샤오춘 9단이 아시아의 스타가 되는 계기를 제공케 했다. 1996년에는 중국에게만 밀리던 한국 바둑이 다시 국제대회 7개 중 6개를 우승하여 '준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등 바둑 최강국으로서의 모습은 건재하다고 과시했다. 특히 제4회 진로배에선 4연패를 기록하고 이창호 9단이 제7회 동양증권배까지 차지하며 국제기전 5관왕을 차지했다. 유창혁 9단도 응씨배에서 우승하며 제1회 삼성화재배에서 준우승했다. 같은 시기 교육부가 새 대학입학전형제를 발표하며 바둑대학 설립 붐이 일어 경기대학교와 경희대학교가 1997학년도부터 바둑 특기생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명지대학교 역시 바둑대학 설립에 앞서 체육학과에 바둑지도학 전공을 열었다. 1997년에도 한국 바둑은 여전히 강세였으며, 이창호 9단의 1인 독주는 여전했다. 이와 함께 신예 기사들과 맹활약을 펼친 가운데 조훈현과 서봉수 9단이 나름 선전했다. 특히 이창호에 대한 도전은 조훈현 9단을 필두로 서봉수 9단, 최명훈 6단, 이성재 4단 등 신-구 세력이 타이틀을 향해 돌진했다. 같은 해 이창호는 국내에서 타이틀 3~4개를 잃었지만 국제대회에선 제1회 LG배와 제2회 삼성화재배를 각각 차지했다. 서봉수도 제5회 진로배에서 필마 단기로 일본과 중국 선수들을 무찌르며 국제대회 사상 전무후무한 9연승 신화를 기록했다. 조훈현 9단도 제15기 KBS 바둑왕전에서 이창호로부터 타이틀을 뺏었고, 패왕전과 배달왕전까지 석권하며 동양증권배까지 우승해 6관왕에 올랐다. 또 정수현 9단도 명지대에 개설된 바둑학과 교수로 임용돼 세계 최초의 바둑교수가 나왔다. 반면 재일교포로서 일본 무대에서 활동하는 조치훈 9단의 활약도 주목받았는데, 그는 1996년 기성, 명인, 본인방 등 상위 3개전을 차지하여 대삼관을 달성했고, 1997년에도 이를 차례로 방어하여 대삼관 2연패를 달성했다. 1998년에는 IMF 여파로 진로배와 동양증권배가 사라지는 등 일부 악재가 있었지만, 이창호 9단은 마지막 동양증권배와 후지쯔 등 세계대회 2관왕, 국내대회 7관왕으로 여전히 독주했다. 이에 조훈현 9단은 국수전 및 패왕전을, 유창혁 9단도 배달왕을 각각 차지해 체면치레를 했으나 최명훈 6단은 테크론배 및 박카스배 결승에서 이창호에게 막혔고, 이성재 5단도 세계대회 8강 진출과 신인왕전 우승을 일궜으나 조훈현 9단에겐 패왕전 도진기에서 2승 3패로 졌다. 그 외에 안영길 2단이 최다 기록인 19연승을, 목진석 4단이 54승으로 최다승을 각각 기록해 나름 선전했다. 여류 프로기사 중 중국계 한국인 주부기사 황염 2단이 여류 세계대회와 여류국수전을 석권해 주목을 받았고, 대만인 기사 장정핑이 외국인으로서 최초로 입단대회를 거쳐 단증을 땄다. 같은 시기 조치훈 9단도 일본 무대에서 대삼관 3연패를 달성한 데 이어 생애 1천승에 본인방 10연패까지 달성해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1999년에도 이창호 9단의 독주는 여전하여 국내대회 6개를 차지하며 세계무대에선 삼성화재배와 LG배를 석권했고, 한국기원으로부터 바둑문화상 최우수기사상을 통산 5년 연속으로 받아 화제를 모았다. 유창혁 9단은 국내무대에서 배달왕 2연패와 왕위전을 각각 차지하며 후지쯔배도 우승했고, 조훈현 9단도 제18기 KBS 바둑왕전 및 제1회 춘란배를 우승해 건재를 과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