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8년 (문단 편집) == 설명 == * [[http://youtu.be/Zq95lPzQk9Y|1998년에 일어난 국내외 사건들 연대기 영상]] * 연합뉴스 선정 1998년 10대 뉴스: [[http://v.media.daum.net/v/19981210120900790?f=o|국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4346686|해외]]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4213455|스포츠]] * 내외통신 선정 1998년 북한 10대 뉴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4345022|참고]]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122500289110001&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8-12-25&officeId=00028&pageNo=10&printNo=3384&publishType=00010|한겨레 선정 1998년 국내외 10대 뉴스]] 이 해는 한국에서 [[문민정부]]에서 [[국민의 정부]]로 이어지는 해이자, 헌정사상 최초로 권력이 보수정당에서 중도진보 정당으로 넘어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UN]]에서 지정한 '세계 해양의 해'이기도 했다. 하지만 새 정부 앞엔 해결해야 할 온갖 문제가 쌓였고, 대다수 국민들은 이 한 해를 정권교체보다 '''[[IMF]], [[외환위기]], [[실업]]난, [[노숙자]]'''라는 네 단어로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아래 사건들에서도 나오지만 엄청나게 많은 회사들이 부도/화의/법정관리 등으로 [[흑역사]]를 맞게 되었다. 이 해에는 초중고교 학생들과 [[대학생]]들 [[가방]]에 [[태극기]]가 달리기도 했다. 금 모으기 운동도 있었으며 게다가 직장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도 이 해이며, 노사 갈등도 전보다 더 치열해져 파업만 터지면 시가지는 화염병과 쇠파이프 천지가 됐다. 언론/대중매체 분야에선 [[대기업]]이 언론사나 문화사업에 서서히 손을 떼는가 하면, [[영남일보]], 부산매일 등처럼 부도나거나 폐간되는 지방신문사가 많았다. 프로스포츠에도 타격을 입혔는데, 모기업이 부도가 난 [[해태 타이거즈|해태]]와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이 이 해부터 몰락하기 시작한다. 정치권에선 김대중 정부 출범 후 전년도 15대 대선 때 불거진 '북풍', '세풍', '총풍'에 메스가 가해졌고, [[제2회 지방선거]]에선 [[새정치국민회의]]가 광역단체장 6곳, 기초단체장 232개 중 84개에서 당선해 승리를 거머쥐기도 했으며, 특히 서울지역에선 시장을 비롯해 19개 구까지 석권하여 '야도(野都)'를 '여도(與都)'로 바꾸기도 했다. 학계에선 하반기엔 [[최장집]] 교수 사상검증 파문이 일었다. 환경 분야에선 동강댐 건설 계획을 놓고 파장이 일었다. 또한 이러한 시대상 때문에 방송가에서는 심심하면 [[IMF]] 드립이라는 웃지 못할 드립이 성행하기도 하였다. 무언가 긴축스럽거나 저가형 티나는 것들 혹은 절약스러운 것들에 IMF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심지어 국내에서 방영하던 해외 애니메이션에서도 IMF 드립을 쳤다. [[SBS]] 방영판 [[슬레이어즈]]의 주요 장면 다이제스트에서 [[피리아 울 콥트]]의 변신장면을 간단하게 보여주고 IMF 절약형 변신이라는 드립을 쳤다. 생각해보면 그 정도로 "만화왕국" 시절의 SBS 영화팀과 번역가 쪽 센스가 뛰어났다.] [[롯데리아]]에서도 [[IMF버거]]라고 빈티나 보이는 아주 간단한 햄버거를 만들어 팔았던 시절이다. 가공육 업계에서는 IMF 김밥햄이라는 저가형 햄도 파는 등 상업에서도 IMF라는 수식어는 자주 쓰였다. 그리고, 이 해 발행된 [[오백원화|오백원 주화]]는 화폐 수집가들에게 엄청난 고가로 팔린다. 한국은행에서 매년 제작한 주화세트용으로 '''딱 8,000개만 제작'''되어서 증정용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 와중에서도 1998년부터 시작된 [[벤처기업]] 열풍이 김대중 정부의 IT산업 육성정책으로 힘입어 [[어둠의 전설]], [[미르의 전설]], [[리니지(게임)|리니지]] 등 [[전설]]이 된 [[온라인 게임]]이 쏟아진 한 해였다. 이러한 온라인 게임이 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98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빌 게이츠]], [[손정의]] 회장을 초청하여 의견을 들은 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61900099115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8-06-19&officeId=00009&pageNo=15&printNo=10091&publishType=00010|손정의 회장, 빌 게이츠, 김대중 대통령 접견 회의록]]] 전국의 관공서에 인터넷 인프라를 설치해서 전국의 모든 곳에 인터넷이 연결된 세계 최초의 국가를 만들어낸 배경이 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122200099103009&editNo=16&printCount=1&publishDate=1999-12-22&officeId=00009&pageNo=3&printNo=10555&publishType=00010|손정의 회장, 孫(손)사장 金(김)대통령 면담 "학생 1인당 1PC 보급정책 펴야"]]] 특히 손정의는 아직 일본에서도 못 이룬 것을 한국이 해냈다며 부러워하는 말을 방송에서 할 정도였다. 민간에만 맡겨두면 인구가 적은 곳은 상당히 늦게 인터넷회선이 들어가거나 채산성을 빌미로 아예 들어가지 않을 수 있지만[* 실제로 [[한국통신]]이 본격적으로 [[ADSL]]로 초고속 인터넷 사업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두루넷]], [[하나로통신]] 등의 민간 사업자는 '''서울 한복판의 아파트 단지''' 조차도 재건축이 임박했다는 등의 사소한 이유로 회선 구축을 기피했다. 그러다가 한국통신이 '''전화가 가능한 모든 곳'''을 대상으로 ADSL 서비스에 나서면서 비로소 경쟁체제가 시작된 것이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는 관공서에 인터넷 인프라를 1998년~[[1999년]] 중으로 불과 1년 만에 모두 설치했기 때문에 모든 곳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당해 초까지 대립 일변도이던 [[남북관계]]에선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 해이기도 한데,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전임 대통령들의 대북 강경노선 대신 '[[햇볕정책]]'을 창안했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팔순을 넘은 나이에 소떼 1만 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금강산 유람선관광 성사까지 달성해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북측은 김대중 정부를 냉담하게 여겼고, 그런 연유로 속초 잠수정 침투사건과 [[여수 반잠수정 격침사건]], '광명성 1호' 발사 파문, 금창리 핵시설 파문 등이 터졌다. [[파일:external/img.imnews.imbc.com/DN19980166-00_01184022.jpg]] 한편, 엔저 현상으로 일본 엔화가 1998년 6월 15일, 사상 최저치인 145엔대까지 올라갔고, 같은 해 8월 11일에는 147엔으로 또 기록을 경신하였다. [[파일:external/img.imnews.imbc.com/DN19980166-00_01195720.jpg]] 그로 인하여 6월 15일에는 종합주가지수(현재 코스피지수)도 주가가 300선 마저 붕괴된 288로 마감돼 87년 3월 수준으로 떨어졌다. 세계적으로도 아시아 경제위기의 여파로 [[러시아]]의 [[러시아 루블|루블]]화가 흔들리며 8월에는 [[국채]]의 [[모라토리엄]](채무 지불유예)까지 선언했고, 이것이 다시 즉각 [[남미]]의 경제를 들썩이게 하면서 [[대공황]] 공포까지 밀려왔다. 그러면서 [[브라질]]도 10월에 IMF체제를 맞았다. [[파일:external/img.imnews.imbc.com/DN19980196-00_01414821.jpg]] [[7월 15일]], 미-일 [[언론]]들이 일본 총리 [[하시모토 류타로]]의 사임을 메인뉴스로 보도했을 정도로 미-일 관계는 하시모토 시절 최악의 갈등을 겪었다. ([[https://imnews.imbc.com/replay/1998/nwdesk/article/2003947_30723.html|MBC 자료]]) 그러나 [[한일관계]]에선 전혀 다른 면모를 선보였는데, [[10월 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본 국빈방문 만찬당시 [[아키히토]] 일본 천황이 [[한반도]]에 대한 '''[[고통]]과 [[사과]]''' 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언급함으로써 과거 일본의 모습과 다른 면모를 보였다.([[http://news.kbs.co.kr/news/view.do?ncd=3792384|KBS]],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8/2005187_19498.html|MBC]]) 위와 같이 외교관계가 호전되자 문화관광부가 [[일본 문화 개방|일본 문화 개방정책]]을 마련해 이 때부터 일본만화 원판 번역본 및 [[일본 영화]] 중 국제영화제 수상작이 제한적 개방되었으며 일본 가요도 수입되었다. 일부 세간에서는 과거사 사죄를 하지도 않았던 일본의 문화를 개방한다는 것은 식민지 시대를 재현할 것이라는 일설 때문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고, 영화, 음반 등 관련 업계도 [[https://www.joongang.co.kr/article/3713832|한국보다 규모가]] [[https://www.joongang.co.kr/article/3714444|큰]] 일본 대중문화에 잠식당할까봐 우려를 표했으나 <[[하나비]]> 등 일본 영화 흥행 부진으로 기우가 되었다. 남북한 통틀어 정부수립 50년, 유엔측은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맞이하던 해였다. 한편 [[문화관광부]]는 이 해를 '''[[음악]]의 해'''로 지정했고, [[성균관대학교]]는 '건학 600년', 역사학계에선 '발해 건국 1300년'을 성대히 기념하였다. 이 해에 지상파 3사인 [[한국방송공사|KBS]], [[MBC]], [[SBS]] 모두가 각자 음악 프로그램인 [[뮤직뱅크]][* 가요톱텐 폐지 후 브라보신세대를 방송하지만 그것마저 종영되고 새로이 신설.], [[음악캠프]][* 생방송 젊은 그대 실패 후 신설.], [[SBS 인기가요]][* tv가요20 폐지 후 새로이 신설, 이 세 개의 프로그램 중 가장 먼저 신설.]를 개설했다. 왜 동시에 생겼나면 [[외환위기]] 때문에 그 전 프로그램이 거의 같은기간 종영됐기 때문이다. 그 후에 새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음악 프로그램들은 [[카우치]]의 성기 노출로 강제 종영된 음악캠프[* 강제 종영된 2005년 그 해에 후신인 [[쇼! 음악중심]]을 신설했다.]를 제외하면 현재까지도 방영되고 있다. 대신 전년도와 달리 방송 3사에서 [[립싱크]] 빈도가 라이브를 초월했다. 영화계에선 문화관광부가 한미투자협정 타결을 위해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는 쪽으로 돌아서자 '한국 영화 종말론'이 나돌았고, 영화인들이 이에 일치단결해 '스크린쿼터 사수'를 목터져라 외쳤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 강변]]이 개업하였는데 이 영화관으로 인해 한국 영화계의 판도 자체가 완전히 변화되었을 정도로 영화계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스포츠에서는 프로골퍼 [[박세리]]가 큰 활약을 보여 외환위기로 실의에 빠진 우리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1998 프랑스 월드컵]]으로 인해 축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고 [[이동국]], [[고종수]], [[안정환]] 등 연예인급의 인기를 누리던 스타플레이어들 덕에 K리그가 역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시기이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창단 3년 만에 K리그 우승을 차지한 시즌이기도 하다. 반면 미국 NBA는 시카고 불스의 마지막 3-peat 후 마이클 조던의 하차, 선수노조 파업 등으로 침체기에 빠졌다. 또한 이 해에는 한국군에서 육해공 3군 할 것 없이 판문점 내통사건, 미사일 오발사고 등 대형 사고들이 연달아 터져서 군부가 개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1998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6천 3백달러로 집계되어, IMF 사태로 세계 42위 중소득 국가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792325|KBS]], [[https://imnews.imbc.com/replay/1998/nwdesk/article/2005134_30723.html|MBC]]) 1998년의 화두는 [[IMF]]체제 하에서의 생존이었다. [[정경유착]] 속에 덩치만 부풀려 온 재벌들도 [[구조조정]]의 칼날을 비켜가지 못했다.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아예 [[취업]]의 문을 두드려 보지도 못한 채 2백여만 명이 실직의 아픔을 겪었다. 경제성장률 마이너스 5.1%에 물가상승률 7.5%, 실업률 7%대 폭등 등 한국경제는 [[IMF]]체제 하의 최악의 위기를 겪었던 한 해였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795761|KBS]], [[https://imnews.imbc.com/replay/1998/nwdesk/article/1775585_30723.html|MBC]]) 1998년 1월이 되자 실업률은 한 달 만에 무려 1.4%P나 폭등하여 4.5%까지 폭등하고 한 달 만에 무려 3300여개의 기업이 도산한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22800289101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8-02-28&officeId=00028&pageNo=1&printNo=3128&publishType=00010|한 달 새 27만명 실직]]][*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42700289101002&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8-04-27&officeId=00028&pageNo=1&printNo=3177&publishType=00010|3월 실업률 6.5% 폭등]]] 다음 해 2월이던 [[1999년]] 2월, 실업률은 무려 8.7%에 달해 단군 이래 최악의 IMF 위기상황을 실감케 하였다. [[1999년]] 2월을 피크로 실업률은 감소하였으나 현재까지도 실업난은 [[한국]][[경제]]를 괴롭히는 주요 문제이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41700289108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9-04-17&officeId=00028&pageNo=8&printNo=3479&publishType=00010|실업률 8.7%... 사상 최악]]][*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41700209107017&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9-04-17&officeId=00020&pageNo=7&printNo=24172&publishType=00010|실업률 8.7%... 사상 최악2]]] 게이머들에겐 게임 역사상 최고의 한 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스타크래프트]], [[하프라이프]],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를 필두로 수많은 전설급 게임들을 배출해 큰 파장을 불러온 해였고, 인도네시아에선 5월 독재자 [[수하르토]]가 집권 32년 만에 민중의 힘으로 쫓겨나면서 국민들은 독립 53년 만에 '민주주의'라는 값진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IT 업계에서는 '''[[구글]]이 창업한 해'''이다. 그러나 런칭 당시부터 몇년간은 [[야후!]], [[라이코스]], [[알타비스타]] 3대장에[* 한국에서는 야후코리아→다음→네이버] 비하면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뒤쳐졌으나 이내 뒤집는다.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선정한 1998년 [[올해의 한자]]는 '[[毒]](독 독)'이었다. 20세기에 마지막으로 윤달이 낀 해였다. 당시 윤달은 윤5월. 주말 공휴일이 7일이나 되었다.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일요일과 겹쳤다. 그 밖에도 삼일절과 부처님오신날(5월 3일)이 일요일과 겹쳤고, 현충일, 광복절, 개천절은 토요일과 겹쳤다. 추석은 10월 3일(토)~6일(화)이었다.[* 다만 이게 2022년 이후 현재에 벌어지면 10월 3일(토)~10월 11일(일) 이렇게 샌드위치데이 없이 9일 연속 연휴에다가 한주 통째로 공휴일이 된다.] 하지만 설 연휴는 1월 27일(화)~29일(목)요일이었고 샌드위치 데이까지 포함하면 1월 25일부터 1월 29일까지 5일[* 주 5일 근무 제도 기준이라면 1월 28일 수요일이 설날인 경우 샌드위치 데이 포함 시 1월 24일부터 2월 1일까지 9일 연휴가 가능하다.]을 쉴 수 있었다. 이 해에 태어난 사람은 올해 26세이다. 이 해는 [[1997년|전 년도]]와 [[1999년|후 년도]]의 일어난 사건과 임팩트가 너무 커서 묻힌 감이 심하다. 전 년도인 1997년은 1995년과 함께 한국현대사 최악의 해 불리는 만큼 충격적인 엽기적 사고[* 황장엽 망명사건, 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 살인사건, 군단 백소령 사건, 정윤철군 살인사건등.]가 많이 일어나고 새해부터 기업들의 부도가 갑자기 연쇄적으로 일어나더니 결국 IMF가 왔고, 후년도인 1999년은 1000년대의 마지막해인지라 눈에띄기도 하고 세기말 분위기가 많이 강했던만큼 그 사이에 있는 1998년은 존재감이 약한데 별 다른 특징도 없는지라 그 정도가 심하다. 또한 1998년은 1990년대중에 세기말 공포 없이 무난하게 한해를 마무리한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 이듬해인 1999년은 2000년은 앞둔만큼 세기말 공포가 다른 어떤 해들보다도 정말 심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이 무렵부터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했는데 기존의 80년대부터 시작한 고전적인 일본 애니 스타일은 이 해에 대부분 막을 내렸고 [[세계명작극장]]이나 [[용자 시리즈]]도 모두 막이 내린 시점인데다가 [[카우보이 비밥]]이나 [[카드캡터 사쿠라]]를 중심으로 하여 현재의 일본 애니 트렌드를 맞추게 된다. [[NBA]]가 이 해 장기 파업을 하는 바람에 NBA 크리스마스 게임이 유일하게 없었던 해이다. 자이언트판다 밍밍(明明), 리리(莉莉)가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러바오]](乐宝), [[아이바오]](爱宝)가 들어오는 2016년까지 국내에서는 판다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동방 프로젝트]]의 네 번째 게임 [[동방환상향 ~ Lotus Land Story]]와 다섯 번째이자 [[구작]]의 마지막 게임인 [[동방괴기담 ~ Mystic Square]]가 출시된 해이기도 하다. 그러고 4년 뒤인 [[2002년]], 여섯 번째이자 신작의 첫 번째 게임인 [[동방홍마향 ~ the Embodiment of Scarlet Devil.]]을 출시하며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