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세기 (문단 편집) ==== [[조선]] ~ [[대한제국]] ==== [[조선]]은 1800년 [[정조(조선)|정조]]가 죽고 [[영조]]/[[정조(조선)|정조]]대에 싹 튼 [[세도정치]]가 조선 조정을 독점하게되면서, 국가는 모든 방면으로 쇠퇴했고, 백성은 분노와 불만을 농민운동으로 표출했다. 이러한 상황은 전국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여 내부적인 문제를 상당수 해결했지만, 서양 문물에 대해 폐쇄정책을 피던 중[* 서양 세력의 조선내 횡포가 잦았다.] [[경복궁]] 중건과 [[당백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최익현]]의 하야 상소가 대표적이다.] [[고종(대한제국)|고종]]은 비교적 유화정책을 폈으나 근대적인 국가/문물등의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지 않고, 표면적으로만 받아들인 결과로 제대로 된 개혁에는 실패하였고,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후, 많은 이권을 청일 양국에게 빼앗기며 점점 자주권을 잃게 된다.[* 이 외에 영국, 미국 등 서양의 열강들에게도 각종 산업권을 뺏기며 정치마저도 청에서 간섭했기에 날이 갈수록 [[대한제국]]은 상당수의 이권을 잃었다.][* 다만 [[고종(대한제국)|고종]]이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을 독점하여 합병 시도를 하려는 것을 흐트리기 위해 한 것이다. 또한 동도서기론으로 개혁을 시도했지만 실패하였다. ] 1894년에는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청일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1894년부터 1896년 초까지 이어진 [[갑오개혁]](+ 을미개혁)으로 근대의 틀을 갖춘 후, 1897년에는 [[대한제국]]이 수립하여 자주 국가를 표방하였으나, [[러일전쟁]] 이후 [[일본 제국]]이 [[러시아 제국]]을 이김으로써 [[대한제국]]을 더욱 간섭하고 더 나아가 대한제국을 합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