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2000년대 (문단 편집) === 문학 === 2000년 들어서도 한국 문학은 IMF의 그늘에서 못 벗어났고, 인터넷의 확산과 더불어 문자매체의 위기감을 실감케 했다. 출판시장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5%도 안 될 정도로 문학의 비중은 양적으로도 두드러졌다. 이 와중에도 이문열의 <아가>, 최인호의 <상도>, 김원일의 <가족>, 이문구의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등 중견작가들의 건재함이 돋보여졌고, 특히 조선 후기 거상 임상옥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상도>는 출간 석달 만에 50만 부가 팔려 드라마화까지 성사해내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반면 순수문학 쪽은 침체를 면치 못했다. 이문열이나 신경숙, 황석영 책이 10만 권을 넘었을 뿐 다른 작가들은 1만 권을 넘기 힘들었다. 대신 <해리포터> 시리즈와 <가시고기>, <국화꽃 향기> 등 대중소설들이 인기를 구가했다. 이 시기 '문학권력 논쟁'도 이슈가 되었는데, 근원은 일부 문학동인과 출판사에 의한 파벌주의에 대한 비판이었다. 특히 <조선일보>가 주최한 '동인문학상' 논쟁은 문학권력 논쟁을 더욱 가열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황석영 작가가 그의 작품 <오래된 정원> 후보 등재를 거부해 파문이 확산됐다. 다만 이문구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 이 상을 받으면서 논란은 정점에 달했다. 한편 신예 평론가 이명원은 김윤식 서울대 교수가 쓴 평론문이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 평론문과 유사하다고 비판을 제기해 표절 문제가 불거졌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 대학사회에 고착된 가부장적 도제 시스템에 대한 비판까지 확장됐다. 2001년 들어 황석영이나 김원일 등 중견 작가들이 원숙미로 건재를 과시했는데, <손님>, <슬픈 시간의 기억>이 그 예였다. 30대 작가 김연수와 김운하도 치밀한 고증력과 형식파괴 실험으로 <굳빠이 이상>과 <137개의 미로 카드>를 각각 내 주목을 받았고, 오수연 연작 장편 <부엌>도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아 주목을 받았다. 시에선 대산문학상을 받은 이성부(지리산), 동서문학상의 허수경(내 영혼은 너무 오래 되었으니),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 나희덕(어두워진다는 것), 김수영문학상의 이정록(제비꽃 여인숙) 등이 호평받았다. 문학권력 논쟁은 전년도에 이어 더욱 가열되어 문학평론가 권성우의 <창작과비평>에 대한 상업주의 비판, 그리고 <문학동네> 편집위원 남진우 시인의 권성우 비판으로 격렬히 진행됐다. 이명원은 권성우와 함께 <사회비평> 가을호에서 <창작과비평>에 대해 진보 권위주의, 진보 상업주의, 기회주의에 매몰되어 있다며 혁신을 촉구했다. 이러한 비판은 그동안 쉬쉬하던 진보 문학계의 '문학권력화' 논란이 수면 위에 오른 것임을 의미하며, 더 이상 비판에서 예외가 없음을 보여준 일대 사건이다. 인터넷과 디지털 영상 등 대중매체 확산으로 문학에도 대중화가 가속도를 더해 류시화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같은 감성적인 소녀풍의 시들이 인기를 얻으며 정통 시집들을 밀어냈다. 다만 김춘수, 고은, 신경림, 마종기, 도종환, 김지하, 강은교 등 중견 및 원로 시인들이 여전히 창작을 계속했는데, 특히 신경림은 시집 <뿔>을, 고은은 전집 38권을 각각 냈으며 김지하도 <화개>로 만해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잇따라 수상해 뒤늦게나마 문단으로부터 대우받았다. <화개>는 미발표작 100여 편 모음집으로 "이념이나 사상보단 병고를 거친 반독재 투쟁가의 외로운 내면을 서정적으로 드러냈다"는 평을 받았다. 소설계에선 1990년대를 주도했던 여성작가들이 위축된 반면, 중진작가들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김주영은 <홍어>에 이어 <멸치>를 내놓아 김동리문학상을 받았고, 한승원 작가도 고향 전남 장흥 해안가를 소재로 한 <물보라>를 내놓았으며, 딸 한강과 함께 어른을 위한 동화 <우주 색칠하기>와 <물보라>를 각각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박상륭 작가도 캐나다 이민생활을 접고 귀국해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로 특유의 형이상학적 세계를 선보였으며 박영한 작가도 자신의 가족사를 토대로 한 소설 <카르바>를 내놨다. 이 외에 김원우는 <객수산록>으로 대산문학상을, 김원일은 중편 <손풍금>으로 황순원문학상을 각각 수상해 저력을 보여줬다. 또 2002년경에는 조세희 소설집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150쇄를 기록해 화제를 모았다. 당대 신예 작가 중 권지예가 <꿈꾸는 마리오네뜨>로, 전혜성이 연극적 요소를 도입한 장편소설 <트루스의 젖가슴>으로 각각 주목을 받았다. 또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자로 2001년 <세계의 문학>에 단편소설을 내 데뷔한 정미경 작가도 장편 <장밋빛 인생>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아 스타 반열에 들었다. 또 성석제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로 동인문학상을, 은희경은 소설집 <상록> 수록작품 '누가 꽃피는 리기다소나무 숲에 덫을 놓았을까'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각각 냈다. 김하기도 출소 이래 오래간만에 <복사꽃 그 자리>를 냈고, 하성란, 조경란, 이혜경 등이 소설집을 냈다. 2002년 시공사 계간잡지 <문학인>은 한국문예창작회와 공동으로 '20세기 한국문학사 10대 사건 및 100대 소설' 선정을 겨울호에 발표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설문조사는 지난 한국 문학사 100년 간 특기할 만한 문학적 사건과 소설작품을 선정키 위해 대학 국문학과 및 문창과 교수, 문학평론가 등 관계자 109명을 대상으로 진행했으며, 조사 결과 작가 중 1등은 황석영이고, 최고 문제작은 조세희의 <난쏘공>이었다. 2003년 신진 여성작가 정이현의 데뷔작 <낭만적 사랑과 사회>가 개인주의적 글쓰기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고, 그 외엔 김영하의 <검은 꽃>, 박만규 데뷔작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각각 주목을 받았다. 또 이청준, 송기숙, 박상륭, 윤흥길, 이경자, 최윤 등 중견 작가들도 건재를 과시했다. 젊은 작가들 중에는 <무서운 밤>의 임영태, <이발소에 두고 온 시>의 김형수, <토란>의 이현수, <새는>의 박현욱,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의 김경욱 등이 대표적이었고, 시에서는 정현종, 이성복, 김광규 등 중견들이 시집을 내기도 했다. 또 시인 겸 작사가 조명암과 이찬 등 월북 문인들의 시집이 나오면서 그동안 묻혀왔던 월북 문인들의 작품세계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같은 해 이라크 전쟁이 터지자 민족문학작가회의 등 재야 문인단체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한국군 파병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고 가두행진 등을 통해 반전 여론을 설파했으며, 특히 시인 오수연과 박노해가 전쟁터까지 직접 나서 현장소식을 전했다. 2004년 들어 김영하는 동인문학상-황순원문학상-이산문학상 트레블을 달성해 문단계에 폭풍을 불어일으켰으며, <오빠가 돌아왔다>나 <보물선> 등의 단편을 내 문단에 활기를 불어넣았다. 50대 중반 들어 문단에 늦게 데뷔한 김훈도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등을 내 신선함을 선사했다. 또 창비가 주관한 제19회 만해문학상에서 북한 작가 홍석중[* 벽초 홍명희 선생의 손자.]의 장편 <황진이>가 처음 수상작으로 선출됐는데, 이는 남북교류가 활성화된 데 따른 상징적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창비 측은 금강산에서 상금 1천만 원을 수상자에게 직접 전달했고, 해당 소설은 남한에서 편집되어 2권으로 나왔다. 소설계에선 박완서, 이청준, 김원일 등 중견작가들이 활발히 활동했는데, 특히 박완서 작품 <그 여자네 집>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으며 정도상도 연작소설 <실상사>를 냈다. 정찬은 서구 종교와 신화를 파고든 <빌라도와 예수>를, [[임철우]]도 <봄날> 이후 6년 만에 근현대사 100년의 아픔을 함축한 <백년여관>을 각각 냈다. 시에서도 김지하가 9번째 시집 <유목과 은둔>을 낸 걸 비롯해 신달자, 문정희, 정호승, 백무산 등이 여전히 시집을 냈다. 2005년 7월 20일부터 5일간 북한 평양, 백두산, 묘향산을 오가며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남북작가대회)'가 개최됐다. 이 대회는 2004년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정치상황이 경색돼 무기한 연기됐다가 이때 열린 것이다. 행사 기간에 남측의 --고은--, 황석영, 백낙청 등 10여명이 북한 작가 오영재, 홍석중 등과 백두산 천지에서 해맞이를 하며 민족 문학과 통일을 기원했다. 같은 해 [[김별아]]가 역사소설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받았고, 김원일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다룬 소설 <푸른 혼>을 지어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또 조세희의 <난쏘공>이 출간 27년만에 200쇄를 돌파했고, 성석제, 공지영, 윤대녕, 이승우 등 중견작가들이 여전히 활동했다. 시에선 전통적 서정성이 강세를 이뤘는데, 문태준이 <누가 울고 간다>로 미당문학상을 받았으며 강화도에 거주하는 함민복도 <말랑말랑한 힘>으로 박용래문학상과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장석남도 5번째 시집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를, 박형준 역시 4번째 시집 <춤>을 각각 냈다. 여러 문인들과 출판사들도 침체된 문학을 살리기 위해 재정지원을 받았는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복권기금 52억 2천만 원을 확보해 문학회생프로그램을 가동해 우수문학도서 구입과 배포에 42억,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 원고료 지원에 3억 2천만, 우수문예지 구입과 배포에 6억원을 각각 지원했다. 2006년엔 '주제의 무거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파격적인 작품들이 연속으로 나왔다. 특히 박민규의 <핑퐁>은 왕따 중학생들이 핑퐁으로 인류의 미래를 결정짓는 얘기이며, 김종광의 <낙서문학사>는 한국 문학계 자체를 표적으로 삼았다. 조정래도 비전향 장기수 노인들을 소재로 다룬 <인간연습>을, 최인호도 가야사를 복원한 <제4의 제국>을, 복거일도 지식인의 고뇌를 담은 <보이지 않는 손>을 각각 냈다. 같은 시기 공지영의 눈부신 활약도 부각됐는데, 사형수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우행시)>, 산문집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가 각각 베스트셀러 반열에 들었다. 특히 <우행시>는 영화로도 나올 정도로 좋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북한 핵실험 여파에도 남북한 문인교류는 지속되어 '6.15 민족문학인협회'가 공식 출범됐으며, --고은-- 시인은 2005년 및 2006년에 각각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그는 연작시집 <만인보> 21~23권과 <부끄러움 가득>을 각각 내 건재를 과시했다. 2007년 11월 8일부터 7일 간 전북 전주에서 '아시아-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벌(AAIF)'을 개최해 한국 문학의 위상을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떨쳤고, 한중작가회의, 한중문학인대회 등으로 중국 문인들과의 교류도 활성화됐다. 2007년은 역사소설이 다시 인기를 구가한 해이기도 한데, 김훈의 <남한산성>을 비롯해 신경숙의 <리진>, 김별아의 <논개>,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 김탁환의 <열하광인> 등이 대표적이고, 박완서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 황석영의 <바리데기>,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이 각각 인기를 끌었다. 같은 해에는 한국 최초의 현대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나온 지 100주년을 맞는 터라 전국 곳곳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고, 민족문학작가회의도 세계화 등 시대변화에 발맞추어 '한국작가회의'로 단체명을 변경했다. 2008년 문학계에선 박경리 작가 타계라는 슬픈 소식이 있었으나, '인터넷 연재소설'과 '청소년 문학'이 큰 주목을 받은 기쁜 때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김려령의 <완득이>, 배유안의 <스프링벅>, 김해원의 <열일곱 살의 털>, 전아리의 <직녀의 일기장> 등이 대표적이다. 청소년 소설 역시 각광을 받아 사계절의 '1318 문고', 창비의 '창비 청소년 문학'에 이어 문학동네도 '원더북스', 문학과지성사도 '푸른문학' 등을 각각 신설했으며, 작품 중에는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이 큰 주목을 받았다. 이외수 작가도 문학 외에 방송, TV광고 등에 출연해 '라이터테이너'로 각광받았으며, 에픽하이 멤버 타블로가 쓴 소설 <당신들의 조각들>이 히트쳐 기성 문인들에 맞섰다. 무명작가 인아 역시 2년 전에 낸 <아내가 결혼했다>의 영화화로 단숨에 스타 작가가 되기도 했다. 2009년에는 신경숙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발매 10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해 '엄마 신드롬'을 불러일으켰고, 인터넷 소설의 강세도 여전해 공지영의 <도가니>, 김훈의 <공무도하>, 정이현의 <너는 모른다>, 공선옥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히트를 쳤으며, 용산 참사와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 등 정치/사회적 이슈로 문학인들의 사회참여도 두드러졌다. 그해 11월 서울 연희동 시사편찬위원회 건물에 '연희문화창작촌'이 개설돼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시의 경우 서정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기존 시의 문법을 파괴하거나 탈피한 시인들이 소위 미래파라 불리며 크게 이름을 떨쳤는데, 이에 해당하는 시인들은 [[황병승]], [[김경주]], [[이장욱]], 장석원 등이었다. 사실상 한국 현대시의 문을 열었다고 불리는 시인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