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4년 (문단 편집)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 ||[youtube(igu7FThthQ0)]|| || [[정치합시다|KBS 정치합시다]]가 제작한 제17대 총선 보도물 모음집[* 당시는 탄핵 정국이었기에 뉴스에서도 중립성에 만전을 기울였다.] || 2004년 4월, 국내에서는 [[2002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카드 대란 사태]]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한국 경제가 다시 어려워지면서 국민들은 굉장히 혼란스러운 시기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혼란한 분위기 속에서 국민들 중 투표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4년 동안 국민을 대표할 [[국회의원]]을 뽑아야 했다.[* 만 20세 이상에게 투표권이 있었으며, 당시 기준으로 [[1984년]] [[4월 16일]]생까지.] 제17대 총선을 치루기 전 KBS 뉴스 보도국에서 집중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시민들의 의사 결정을 예측했다. 먼저, KBS가 [[서울특별시/강북|서울 강북지역]] 20개 선거구를 조사한 결과 모두 열린우리당이 강세를 보였다. 이어서 [[서울특별시/강남|서울 강남지역]] 21개 선거구를 조사한 결과 강북보다는 덜했지만 이 지역 또한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보다 조금 더 우세했다. [[경기남도|경기 남부지역]] 26개 선거구에서는 열린우리당이 크게 앞서는 상황이 나타났으며, [[경기북도|경기 북부지역]] 23개 선거구에서는 열린우리당이 초강세를 보였다. [[인천광역시|인천지역]] 12개 선거구에서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혼전 양상을 보이며 치열한 격전지임을 드러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409|서울 강북지역]]/[[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408|서울 강남지역]]/[[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9948|경기 남부지역]]/[[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9947|경기 북부지역]]/[[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9946|인천지역]]] 다음은 [[대전광역시|대전]], [[충청남도|충남지역]] 15개 선거구인데 이 중 열린우리당은 14곳에서 1위를 하여 강세를 유지했다. [[충청북도|충북]], [[강원도|강원지역]] 15개 선거구 중에서 열린우리당이 11곳에서 우세를 보여 탄핵 역풍을 실감케 했다. 진보 정당의 지지 기반이 탄탄한 [[광주광역시|광주]], [[전라남도|전남지역]] 20개 선거구 중 경합 지역 3곳을 제외하고는 열린우리당이 크게 앞질렀다. 이외에도 [[전라북도|전북]], [[제주도|제주지역]] 13개 선거구에서는 열린우리당이 모든 곳에서 1위를 차지하며 독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반면, 보수 정당의 탄탄한 결집력을 자랑하는 [[경상남도|경남]], [[울산광역시|울산지역]] 23개 선거구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또, [[부산광역시|부산지역]] 18개 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을 앞서기도 하였다. 한편 [[대구광역시|대구지역]] 12개 선거구와 [[경상북도|경북지역]] 15개 선거구에서는 접전 양상을 보였으나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보다 더 우세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9506|대전, 충남지역]]/[[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9505|충북, 강원지역]]/[[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9071|광주, 전남지역]]/[[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9070|전북, 제주지역]]/[[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8672|경남, 울산지역]]/[[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8673|부산지역]]/[[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8885|대구지역]]/[[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8884|경북지역]]] 이후 4월 15일에 치른 제17대 총선 투표 결과, 당시 [[열린우리당]][* 선거 때는 열린우리당이 여당이 아니었다.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에 입당신청서를 제출한 2004년 5월 말부터 여당이 되었다.]에 많은 동정표가 쏟아지면서 과반 이상의 의석수를 확보하게 되어 16대 국회와는 달리 반전을 이루어냈다. 제 1야당인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에 패했으면서도 개헌저지선을 확보하게 되었다. [[민주노동당]]도 약진을 이루어냈으며, 2000년 창당 이후 처음으로 제3당으로 원내진출이라는 대성과를 이루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발의를 주도한 [[새천년민주당]]은 추락했고, 그와 손 잡은 [[자유민주연합]]은 명맥만 유지했다.[* 한나라당이 주도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한 것은 한나라당이 아니라 새천년민주당이다.] 이 때 각 정당의 분위기를 살펴보면 먼저, [[열린우리당]]은 개표 방송을 지켜보는 내내 기쁨을 감추지 못해 환호성과 박수가 끊이지 않는 등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04/nwdesk/article/1957045_30775.html|#]] 특히, 열린우리당 시점에서 바라본 제17대 총선은 대통령의 탄핵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판단하였기에 마지막까지 환호성과 박수가 끊이지 않을 만도 하다. 당시 노인비하 논란으로 선대위원장에서 사퇴하고 평당원 신분으로 선거운동을 지휘하던 정동영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압승한다는 뉴스보도를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그 장면이 항상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뉴스에서 자료화면으로 사용될 만큼 유명하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에 패했으면서도 예측의석 수를 넘겨 다행이라는 평이 많았으며, 동시에 개헌저지선을 확보해 1당 독재는 막았다는 의미있는 결과를 얻으면서 당 지도부 내에서도 나쁘지만은 않은 결과라고 판단하였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04/nwdesk/article/1957047_30775.html|#]] 때문에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영웅 취급을 받기도 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아 한나라당 내에서도 총선 참패를 예측했기 때문.] 그 결과 당시 총선을 계기로 박근혜 대표의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박근혜 대표를 중심으로 한 계파인 친박이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해 기존의 이회창/최병렬 계파를 따돌리고 한나라당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이 때 박근혜 대표의 총선 승리와 활약이 훗날 그녀의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가장 큰 정치적 성과가 되었다. [[민주노동당]]은 여러 지역에서 선택을 받아 새천년민주당과 자유민주연합을 이기고 당당히 제3당 원내진출을 하게 되면서 열린우리당과 비슷하게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04/nwdesk/article/1957049_30775.html|#]] 또,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유행어를 남긴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는 제15대 대통령 선거와 제16대 총선 그리고 제16대 대통령 선거 패배 이후 처음으로 얻은 승리라고 말하며, 이에 감격해했다. 허나 권영길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는 ‘극좌’라는 정치 성향을 띄고 있었던지라 한나라당을 비하하는 듯한 인터뷰를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새천년민주당]]은 개표 방송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의원들 외에는 모두 당 사무실을 빠져 나가면서 당 소속 의원들과 당원들이 크나 큰 허탈감에 빠진 모습이 역력했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04/nwdesk/article/1957051_30775.html|#]] 왜냐하면 새천년민주당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지지율은 좀 떨어졌어도 이전에 여당이었던 적도 있고, 전라도 지역에서는 비교적 표심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어느정도 패할 것은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 [[자유민주연합]] 또한 새천년민주당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허탈한 모습을 보였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04/nwdesk/article/1957053_30775.html|#]] 이유는 자유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들은 물론이고, 삼김시대를 이끌었던 한 사람이자 10선에 도전하는 김종필 당시 자유민주연합 총재마저 낙선했기 때문이다.[* 이후 김종필 총재는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청와대]]는 개표방송 초반까지는 별다른 감정 없이 담담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으나 개표 후반부에 들어서자 열린우리당의 제1당이 확실시되면서 안도하고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04/nwdesk/article/1957055_30775.html|#]] 또, 청와대는 제17대 총선을 기점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한 임기가 시작될 것이라면서 국정수행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다만, 설령 열린우리당이 승리했더라도 당시는 대통령 권한정지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은 고건 권한대행이 경제와 민생 등 국정 현안을 잘 챙기도록 적극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이후에는 말을 아꼈다. 여담으로 당시 진행된 [[제17대 총선]]은 사실상 마지막으로 진행된 대규모 낙선 운동 선거였던지라 선거 운동의 열기가 뜨거웠다. 특히 대규모 낙선 운동을 주도하기 위해 이 해 2월에 발족된 “2004 총선시민연대”는 선거 운동이 시작되기 전인 2월~3월에 이미 낙천, 낙선 대상자를 발표하였다. 그들이 1차로 발표한 낙선 대상자는 총 66명이었으며, 이들 중 32명은 [[한나라당]], 19명은 [[새천년민주당]], 7명은 [[열린우리당]], 3명은 [[자민련]], 1명은 [[국민통합21]], 또 다른 1명은 [[하나로국민연합]] 소속이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0311536596&plink=THUMB&cooper=SBSNEWSPROGRAM|#]] 이후 제17대 총선 당선자들은 2004년 5월 30일부터 2008년 5월 29일까지 국회의원직을 수행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제17대 총선은 최초로 탄핵 시기에 진행되었으며, [[대한민국 제6공화국|제6공화국]] 내에서는 첫 여대야소를 이루게 된 선거인지라 현재까지도 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기억되는 선거 중 하나이다.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제17대 국회의원 선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