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7년 (문단 편집) === [[10.4 남북 공동 선언|2007년]], [[2007년 남북정상회담|제2차 남북정상회담]] === [[파일:external/img.imnews.imbc.com/Large_115625.jpg]]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방북]]하여 김정일의 영접을 받았다. 7년 만에 남과 북의 정상이 다시 만나 손을 맞잡았는데 [[김정일]]은 환영행사장인 [[평양]] 4.25 문화회관에 미리 도착해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영접했다. 노무현은 대한민국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분단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었다.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남북의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노무현과 김정일은 다음 날 오전과 오후 두 차례 단독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 경제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http://news.kbs.co.kr/news/view.do?ncd=1434888|KBS]], [[http://imnews.imbc.com/replay/2007/nwdesk/article/2075655_18813.html|MBC]]) [youtube(BprZUd4pUfc)] [youtube(TPt0exx02BY)] [[파일:external/keyframe.imnews.imbc.com/Large_230594.jpg]] 노무현과 김정일은 방북 마지막 날인 2007년 [[10월 4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10개항의 평양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김정일은 노 전 대통령 방북에 대한 답방형식으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제안했다. 본인의 답방은 미뤘다. 남북은 해주일대를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로 만들어 공동조업을 허용하고 경제특구를 조성하기로 했다. 군사보장조치를 위해 7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 국방장관 회담이 열렸다. 남북은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남북한과 미국 등 3-4개국 정상들이 한반도에서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백두산과 서울을 잇는 직항로가 개설되고 중국을 거치지 않고 3-4시간 만에 백두산에 도착해 관광을 즐길 수 있게 됐다.([[http://news.kbs.co.kr/news/view.do?ncd=1436057|KBS]], [[http://imnews.imbc.com/replay/2007/nwdesk/article/2076468_18813.html|MBC]]) 그러나 이러한 남북 화해의 분위기는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물거품이 되었다지만 '''[[2018년|10년 뒤]]에 다시 이뤄졌다.'''[* 사실 이마저도 북측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함으로써 별 성과없는 정상회담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