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3-F (문단 편집) == 후안 카를로스 1세의 대응 == 쿠데타가 일어나던 당일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친구인 이그나시오 카로와 함께 스쿼시 게임을 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하지만 부관이 테헤로가 난을 일으켰다는 보고를 하자 국왕은 즉시 게임 약속을 취소하고 자신의 군사 참모들을 소환하여 스페인 전역에 명령을 내려 자신이 쿠데타를 지지하지 않음을 분명히 밝혔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즉시 자신의 참모진을 소집하여 상황 통제에 나섰다. 한편 아르마다는 마드리드 군관구와 스페인 최정예부대인 제1기계화사단 '브루네테'의 지휘부에게 자신이 이미 국왕의 밀명을 받아서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는 갖은 거짓말로 이들을 포섭한 상태였는데 아르마다의 허풍을 미심쩍어하던 이들은 왕실과 비밀리에 접촉하여 국왕이 쿠데타를 지휘할 준비는 고사하고 이미 퇴근해서 친구와 게임하려고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아르마다가 구라를 친 걸 간파해서 줄줄이 이탈하는 등 쿠데타는 시작부터 삐걱댔다.[* 브루네테 사단장 후스테 페르난데스 장군은 과거 주 이탈리아 스페인 대사관 무관으로 파견된 적이 있었는데 1967년 그리스 쿠데타로 콘스탄티노스 2세가 축출되자 소피아 왕비가 로마로 와서 오빠를 만날 때 수행한 적이 있었다. 이때 소피아 왕비는 절대로 스페인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는데 아르마다는 스페인 장군들에게 국왕도 국왕이지만 특히 왕비가 자신의 편에 있으며 자신의 손을 붙잡고 군부가 희망이라면서 궐기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소설을 지어서 유포하고 다녔다. 오빠가 쿠데타로 쫓겨난 것을 본 소피아 왕비가 군인들의 지지를 확보하는데 더 적극적일 것이라는 뇌피셜에서 나온 거짓말로 보이지만 문제는 후스테 페르난데스 장군은 소피아 왕비가 보인 군사 쿠데타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을 육안으로 목격했기 때문에 아르마다의 주장에 대해서 원래도 몹시 회의적인 태도였고 국왕이 스쿼시 게임 하러 가셨다는 얘기 듣자마자 "속았다!"고 부르짖었다고 전해진다.]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측근인 몬데하르 기병대장은 마드리드로 진주하는 반란군 기갑사단에 전화를 걸어서 국왕의 의도를 알리고 이들 대부분을 병영으로 복귀시켰으며 호아킨 발렌주엘라 중장은 마드리드 인근에 주둔한 공수부대의 충성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합참의장 아그나시오 알파로 아레구이 중장은 국왕에게 군대가 질서를 회복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후안 카를로스 1세는 그러면 문민정부가 무너지고 군부가 다시 나라를 장악했다는 인상을 줄 것을 우려하여 하지 못하게 했다. 이에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비상내각을 수립, 장관과 차관들을 소집하여 당시 코르테스(의회) 밖에 있어 무사했던 내무장관 프란시스코 라이나를 임시 내각수반으로 삼았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헌병대 사령관인 아란부루 트페테 장군과 페르난데스 캄포 장군을 통해서 테헤로를 설득하려 했지만 테헤로는 위에 적혀 있듯이 왕도 상관도 아예 안중에 없었고 오로지 보슈의 명령만 따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오후 8시 후안 카를로스는 보슈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보슈는 존엄한 왕권을 수호하기 위해 궐기했다는 궤변만 늘어놓으면서 역시 후안 카를로스의 명령을 따르기를 거부했다. 보슈는 몰래 발렌시아에 주둔한 공군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 이들을 설득하려고 했으나 이들은 모두 국왕과 함께 사관학교를 졸업한 국왕의 측근들로 보슈에게 협조하기는커녕 모조리 국왕에게 보고하면서 충성을 재확인했다. 한편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스페인 본토와 [[발레아레스 제도]], [[카나리아 제도]] 등 각 지역에 주둔한 10명의 지역 주둔군 사단장들에게 전화를 걸어 쿠데타에 동조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이때의 사단장급 장성들 대부분이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사관학교에 다니던 시절 알게 되어 친해진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국왕의 명령을 그대로 따랐고 쿠데타는 점점 틀어지기 시작했다.[* 참고로 후안 카를로스 1세를 사관학교로 보내 군사 교육을 받게 한 인물이 바로 '''[[프란시스코 프랑코]]'''. 역설적이게도 프랑코가 후안 카를로스 1세의 군 내 인맥을 탄탄하게 만들어 준 게 나중에 쿠데타를 막아내고 프랑코 이후에 스페인이 민주주의 국가로 변화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되었다.] 당연히 각 지역 주둔군은 압도적으로 국왕에게 충성했다. 역시나 수꼴 장군으로 악명 높았던 카나리아 제도 사령관 곤잘레스 델 예로 장군은 오히려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하지만 일부 장군들은 국왕의 전화를 회피하면서 몰래 보슈와 접촉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슈의 발렌시아를 제외한 모든 지역은 쿠데타에 가담하지 않았다. 여기에 운도 따라 줬는데 세비야의 제2군관구 사령관인 페드로 메리 고르돈 장군은 초극우파로 명성이 자자했고 매우 높은 확률로 쿠데타에 가담할 것으로 여겨졌으나 하필 전날 위스키를 퍼마시고 만취하는 바람에 사태가 끝날 때까지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그 틈을 타 제2군관구 참모장인 구스타포 우루티아 장군이 세비야 군정장관 마누엘 프랑코 장군과 민정장관 호세 마리아 산츠 파스토르과 합심하여 제2군관구 명의로 국왕에 대한 충성을 공식 선언했다. 발레아레스 군관구 사령관 마누엘 데 라 코레 파스콸 역시 보슈의 절친한 친구로, 쿠데타에 합류할 타이밍만 재고 있었으나 초극우파로 알려진 카나리아 군관구 사령관 델 예로 장군이 뜬금없이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걸 보고 주저하며 다른 관구장들 눈치만 살피다가 끝내 가담하지 않았다. 델 예로가 변절한 이유도 기가 막힌데, 하필 군부 우파 내에서 라이벌 관계인 보슈가 자기를 무시하고 거국내각의 수장으로 코민 따위의 애송이를 옹립해 혼자서 다 해쳐먹으려하는 데 반감을 가지고 오히려 자신에게 이득이 안되는 쿠데타에 전면 반대하는 쪽을 택한 것이었다. 한편 세계 각국에서 후안 카를로스 1세에 대한 지지를 천명하였는데 프랑스 대통령 지스카르 데스탱, 벨기에 국왕 보두앵, 모로코 국왕 하산, 요르단 국왕 후세인, 영국의 엘라자베스 2세가 후안 카를로스 2세에 대한 지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후안 카를로스가 가장 바라던 미국은 침묵을 지켜 그를 실망시켰다. 또한 후안 카를로스는 카탈루냐와 바스크의 자치정부 지도자들과도 접촉하여 자신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음을 알렸다. 쿠데타군이 자기 자신의 대의명분에 도취되서 국왕이 국제적, 국내적 지지를 결집하는 것도 가만히 내버려뒀을 정도로 쿠데타군의 계획은 엉망진창이었다. 한편 당시 육군참모차장이었던 알폰소 아르마다 코민 소장이 쿠데타의 일원이라는 것은 원래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는데 쿠데타군의 좌충우돌 뻘짓 끝에 곧 국왕에게 코민도 한패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에 9시에 후안 카를로스 1세는 다른 장군들을 소집하여 아르마다 장군을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아르마다는 사태의 심각성을 볼 때 모든 정당을 통합한 거국내각을 수립하고 자신이 책임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아르마다를 감시하란 어명을 받은 가베이라스 장군은 아르마다에게 그 제안은 국왕에게 직접 해 보라고 권했고 아르마다가 이 제안을 국왕에게 상주하자 후안 카를로스는 절대로 그러한 제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아르마다는 왕궁에서 알현을 요청했지만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아르마다 장군의 의도를 간파하고 이를 거부했다. 어차피 테헤로가 계속 쿠데타군을 이끌고 코르테스를 무장점거하고 있으면 거국내각이고 뭐고 없는 상황에서 일단 후안 카를로스1세는 아르마다 장군에게 국왕의 이름을 팔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우선 테헤로부터 설득해 보라고 하였다. 이에 아르마다는 이제 자기가 스페인 정부의 수장이 될 거란 희망에 부풀어서 테헤로에게 외국으로 망명시켜줄테니 이쯤에서 그만두라고 했고 덕분에 테헤로는 빡돌아서 당장 아르마다 장군을 코르테스에서 내쫓아버렸다.(...) [youtube(iXSkHpk-nXE)] 테헤로 중령이 투항을 거부한다는 것이 명확해지자 후안 카를로스 1세는 그날 밤 직접 스페인 육군 원수 [[정복(의복)|정복]]을 입고 특별방송을 내보내 시민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상술한 바와 같이 반란군이 국영방송국을 점령했기 때문에 방송진을 부를 수 없어 이 계획은 지연되었으나 국왕의 측근들의 개입으로 9시가 되자 쿠데타군이 방송국에서 철수하였고 11시가 되어 방송 관계자들이 가까스로 입궐할 수 있었다. 국왕은 자정부터 대국민 특별방송을 녹화, 쿠데타 세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킬 것임을 천명했다. 또 미란스 델 보슈 육군중장에게 쿠데타군의 원대 복귀를 명령했다. 해당 방송은 새벽 1시 23분부터 방영되었다. 국왕이 새벽이 되어서야 방송을 내보낸 것이 쿠데타가 확실히 실패했다는 증거를 확인하느라 머뭇거렸단 설명이 많았는데 사실 그냥 기술적으로 불가능해서였다. >'''MENSAJE DE SU MAJESTAD EL REY''' >'''국왕 폐하 대국민 성명''' > >Al dirigirme a todos los españoles, con brevedad y concisión, en las circunstancias extraordinarias que en estos momentos estamos viviendo, pido a todos la mayor serenidad y confianza y les hago saber que he cursado a los capitanes generales de las regiones militares, zonas marítimas y regiones aéreas la orden siguiente: >[[후안 카를로스 1세|짐]]은, 현재 우리 모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상황에서, 전 스페인 국민 여러분들께 최대한 침착하고 안심하시기를 짧고 간결하게 당부드리며, 육군·해군·공군 참모총장들에게 다음과 같은 군령을 하달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 >«Ante la situación creada por los sucesos desarrollados en el Palacio del Congreso y para evitar cualquier posible confusión, confirmo que he ordenado a las Autoridades civiles y a la Junta de Jefes de Estado Mayor que tomen todas las medidas necesarias para mantener el orden constitucional dentro de la legalidad vigente. Cualquier medida de carácter militar que, en su caso, hubiera de tomarse deberá contar con la aprobación de la Junta de Jefes de Estado Mayor.» >하원의사당에서 일어난 사건과 관련하여 발생가능한 여타 혼란을 피하기 위해, 짐은 행정 당국과 합참에 이 헌법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만일 (어떤) 군사적 조치가 취해질 필요가 제기될 경우 합참의 승인이 있어야 합니다. > >La Corona, símbolo de la permanencia y unidad de la patria, no puede tolerar en forma alguna acciones o actitudes de personas que pretendan interrumpir por la fuerza el proceso democrático que la Constitución votada por el pueblo español determinó en su día a través de referéndum. >조국의 영속과 단합의 상징인 국왕은 스페인 국민이 투표로 승인한 헌법 상의 민주적 절차를 무력으로 방해하려는 의도를 띤 어떠한 행동도 용인할 수 없습니다. > 오늘부터 우리는 모두 왕당파다!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 폐하 만세! >---- > '''[[스페인 공산당]]''' 당수 산티아고 카리요 이 방송으로 스페인 전역에서 공포에 질려서 잠들지 못하고 국왕의 반응을 기다리던 수백만명의 스페인의 시민들은 마침내 안심할 수 있었고[* 스페인 작가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로페스는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쿠데타 발발 소식을 들었을 때 당연히 쿠데타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교정으로 달려갔지만 개미새끼 한 마리 없었다고 회고했다.] 국왕을 위해 행동했니 어쩌니 구라를 치고 있었던 쿠데타 세력의 거짓말도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아르마다는 군부가 국왕에 반기를 들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내무장관 라이나를 찾아가서 자신이 일단 비상 군사정부의 수장이 되어야 테헤로를 복종시킬 수 있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한편 후안 카를로스 1세는 보슈 장군에게 2번째로 전화를 걸어서 자신이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선언을 했으니 이제 돌이킬 수 없으며 즉각적으로 군대를 철수시키고 테헤로를 항복시키지 않으면 쿠데타의 모든 책임을 보슈에게 묻겠다고 최후통첩하면서 어떤 쿠데타도 국왕 뒤에 숨을 수 없고, 자신은 퇴위하지도, 스페인을 떠나지도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보슈는 마지막으로 쿠데타로 인해 국왕이 얻을 이익에 대해서 설득해보려다가 끝내 항복하여 자신의 선언을 취소하고 모든 병력을 발렌시아 시내에서 철수시켰다. 이로 인해 지지도, 어떠한 명분도 사라졌고 사단장들도 모두 후안 카를로스 1세의 편으로 돌아가 최후의 내전 루트도 완전히 막히니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쿠데타에 참여한 헌병들은 무기를 버리고 의사당 밖으로 도주했다. 이젠 쿠데타고 뭐고 다 틀렸음을 깨달은 테헤로 중령은 아르마다 장군을 중재자로 보낼 것을 요구했는데 이는 헛된 꿈을 꾸고 있던 아르마다를 공개적으로 망신시키기 위해서였다. 이후 아르마다 소장 명의로 발표한 중위 이하의 헌병대원들이 기소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24일 정오에 인질로 잡고 있던 하원의원들을 석방한 뒤 아르마다와 함께 경찰에 항복했다.[* 이때 이미 가베이라스 장군의 헌병대에 체포당했던 아르마다는 쿠데타군의 무장해제 및 상황 종료를 알리는 문서를 '''순찰차 본네트''' 위에서 서명했고 서명 직후 그 차에 태워져 다시 연행되었다.] 여담이지만 하원의원들의 전면적 석방 직전에 풀려난 수아레스 수상은 즉시 사르수엘라 궁전으로 입궐하였고 마침 쿠데타 세력을 대표해 중재를 하러 입궐한 아르마다 장군과 마주쳤다. 근데 하필 아르마다 장군의 직책이 육군참모차장이었고 국왕의 심복이었으며 국왕을 대표해서 테헤로와 협상하러 코르테스 안까지 들어왔고 그때 쿠데타군이 와해되어 가던 시점이라, 수아레스는 아르마다 장군이 쿠데타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계속 국왕과 내각에 충성을 지킨 것이라고 착각하고 '''"지금까지 믿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리고 이 촌극을 지켜보던 국왕은 수아레스 수상에게 아르마다 장군이 반란자가 맞음을 알린 후 오전에 내각회의를 소집해 내각 각료들에게 아르마다가 바로 쿠데타의 주동자임을 알렸다. 그렇게 국왕의 포고가 끝나자마자 수아레스 수상은 가베이라스 장군에게 즉시 아르마다를 체포하라고 지시했고, 아르마다가 국왕을 쳐다보자 수아레스는 "어딜 감히 용안을 보느냐! 날 똑바로 봐라!"고 일갈했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