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8888577 (문단 편집) === [[롯데 자이언츠/2001년|2001년]] === 2001년은 롯데에 있어 너무나도 불운한 해였다. 먼저 전 시즌에 [[2000년]]에 1999년 플레이오프에서 활약했던 임수혁이 심장마비로 [[식물인간]]이 되었고,[* 심지어 롯데는 시즌이 끝나자마자 임수혁의 지원을 끊어버리는 등의 행보를 펼치며 야구계의 비난을 한 몸에 샀다.] 다음 시즌에 마해영은 트레이드로 삼성에 이적했으며[* 익히 알려진 대로 선수협 사태의 주동자로 찍혀 트레이드 됐다. [[1988년]] [[최동원]]과 [[김용철(야구)|김용철]]의 유사 사례가 또 나온 셈.], [[주형광]]도 신인 시절부터 지속됐던 무리한 투구 혹사 탓에 시즌 아웃됐다.[* 이후 주형광은 100승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결국 부상이 발목을 잡아 2002년부터는 그저 그런 투수로 전락하며 7년간 10승 25패 2세이브 22홀드에 그쳤다. 그러면서 지바 롯데 마린즈 이적도 물거품이 되었다. 빠른 76년생이어서 겨우 26살밖에 안 된 나이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아쉬운 부분.] 게다가 2001년은 유례 없는 중하위권 팀들의 치열한 순위 싸움이 벌어진 해였는데, 이 치열한 상황에서 악전고투하던 '''[[김명성(1946)|김명성]] 감독이 시즌 도중 [[7월 24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상 유례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당연히 선수단이 동요하게 되었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을 맡았던[* 93년에는 무려 준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다만 94~95년에는 6-6을 거두고 재계약에 실패했다.] [[우용득]]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에 올라 어떻게든 수습하려 했고, 후반기에 [[김주찬]]이 톱 타자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며 팀에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해 시즌 막판까지 4강 싸움을 벌였다. 01시즌 출루율 5할 호세가 맹활약을 하며 팀 타격이 나름 분전했다. 하지만 시즌 막판 [[마산 야구장]]에서 삼성과 1999년 플레이오프의 악연이 있던 펠릭스 호세가 [[배영수]]의 빈볼성 투구를 참다 못해[* 이 때 호세가 배영수의 얼굴에 주먹질을 하면서 [[참교육]]이라는 드립을 탄생시키게 된다.]폭력을 행사, 잔여 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으며 팀이 무너지고 말았다. 자세한 내용은 [[롯데 자이언츠/2001년/9월/18일]] 참조. 시즌 막판까지 4강 진입에 실날같은 가능성이 남아있었지만 10월 2일과 3일에 열린 LG와의 최종 2연전에서 모두 패배하면서 최하위로 추락했고, 결국 LG의 최종전이 열린 10월 4일 LG의 승리로 3년만에 최하위가 확정되고 말았다. 결국 한화는 물론 LG, SK에게마저 역전당해 득실차가 +를 기록하고도[* 한편 '''한국시리즈 우승팀''' 두산은 732득점 733실점으로 득실차가 -1이었다.] '''4위와 2게임 차이, 그리고 창단 2년 차이자 승차가 동률인 SK에게 승률 0.001차로 8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호세의 출장 정지 이후, 1군에 갓 올라온 선수가 바로 '''[[이대호]]'''였다. 이해 롯데는 팀타율 1위에 원정승률 5할 이상, 그리고 8개구단 중 전체 3위에 해당하는 득실차를 기록했다. 개인 기록도 화려했는데 출루율+장타율 1위에 징계 전까지 홈런 1위를 기록했던 호세의 활약상은 물론이고 조경환이 타율 3할 이상에 26홈런 102타점으로 맹활약했다. 유격수 [[김민재(내야수)|김민재]]와 2년차 고졸신인 [[김주찬]]은 규정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타율 3할을 넘겼고, 주전포수 [[최기문]]도 3할 타율을 기록했다. 선발진은 평타를 쳐줬지만 구원진이 불안했다. 00년부터 10승을 기록하며 본격적으로 활약한 [[손민한]]은 에이스 모드로 15승을 기록해 LG [[신윤호]]와 함께 공동 다승왕에 올랐다.[* 더군다나 신윤호는 김성근 LG 감독대행이 비정상적인 혹사를 시켜서 거둔 성적이며 손민한은 순수 선발투수로 거둔 성적이다.] [[박지철]]도 중간계투로 시작했지만 선발로 전환해 4년만에 10승을 거두며 활약해줬다. 시즌 중반에 컴백한 [[염종석]]도 선발로테에 합류해 6승 9패의 성적을 올렸다. 부상에서 자유로워져 향후 팀을 이끄는 투수가 된다. 악재도 있었는데 주형광과 [[문동환]]이 일찌감치 부상으로 아웃된 데 이어 5선발 김영수는 초반에 기회를 받았지만 전년대비 크게 부진하며 후반기엔 중간계투로 강등당한다. 3년차 용병 [[기론]]도 부상으로 웨이버 공시되었고 대체자였던 레이는 없으니만 못한 성적을 기록했다. 구원진은 2.98의 방어율로 방어율 1위에 오른 [[박석진]]을 제외하고 3점대 투수가 없을 정도로 매우 불안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