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AKB48/역사 (문단 편집) === 2012년: 1830m === 3월 23일부터 25일까지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콘서트 '업무연락. 부탁한다, 카타야마 부장!'을 개최했다. 이 무대는 여러모로 뜻깊은 자리였다. 우선 AKB48이 데뷔 당초부터 목표로 삼았던 [[도쿄 돔]] 공연이 발표되었고[* AKB48 공식 블로그의 부제가 'TOKYO DOME까지의 궤적'이었다. 도쿄 돔 공연이 성사된 후에는 '1830m으로부터'로 바뀌었다.], 부동의 센터 마에다 아츠코가 그룹을 졸업한다는 것, 그리고 4회 총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것을 발표했다. [[AKB48/총선거/4회|4회 총선거]]는 오오시마 유코가 2위와 3만 6천여 표 차이로 1위를 차지했다. 마에다가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 1위는 너무나 예견된 상황이었지만, 그 아래 순위에서는 혼전이 계속되었다. [[카시와기 유키]]가 [[와타나베 마유]]에게 밀려 3위로 떨어졌고, [[사시하라 리노]]는 4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NMB48의 에이스 [[와타나베 미유키]]와 SKE48의 예능돌 [[하타 사와코]]가 각각 19위와 25위에 오르는 등 자매 그룹의 활약도 이어졌다. 반면 7기생들과 팀4 멤버 등 AKB48의 미래를 이어나가야 할 멤버들은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말았다. 8월에는 네 번째 정규 앨범 <[[1830m]]>을 발표했다. 1830m는 아키하바라 돈키호테 8층의 AKB48 극장으로부터 도쿄 돔까지의 직선 거리를 뜻한다. 8월 25일 열린 도쿄 돔 콘서트에서는 [[AKB48 2차 팀 셔플|두번째 팀 셔플]]이 이루어졌다. 제3차 팀 체제는 팀4를 없애는 대신 팀4 멤버들을 팀A, 팀K, 팀B로 분산하고 팀 정원 제도를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하였다. 대신 인기 여하에 따라 공연에 항상 나갈 수 있는 스탠다드 멤버 16명과 언더 멤버(스탠바이 멤버)를 가르는 '슈퍼 서브' 제도를 도입하였다.[* 정규 멤버라고 해도 인기가 없으면 공연에 못 나가는 살벌한 체제이다. 공연에 나가야 인기를 얻는데 공연에 못 나가게 하면 그냥 제 발로 나가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반면 연구생은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연구생 전용 공연이 있기 때문에, 비인기 정규 멤버보다는 연구생이 더 유리하게 되었다. 이 체제의 목적 자체도 기존의 중견급 비인기 멤버들을 서둘러 졸업시키고, 그 자리를 차세대 멤버들로 메꿔서 초선발급 인기멤버들이 차세대 멤버들을 양성하는 식으로 가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운영의 예상을 깨고, 중견급 비인기 멤버들이 졸업을 하지 않고 오히려 선발급 멤버들과 차세대 멤버들의 졸업러쉬가 이어지면서 세대교체가 실패로 끝나게 되었고, 이에 따라 2014년 아예 그룹멤버들을 섞어버리는 대조각을 단행한다.] 이와 함께 일부 멤버를 [[HKT48]], [[JKT48]], [[SNH48]]로 옮기고 [[SKE48]], [[NMB48]]에서 겸임 멤버를 들여옴으로써 AKB48의 총 멤버는 73명이 되었다. 도쿄 돔 콘서트와 마에다 아츠코의 졸업이라는 상징적 사건을 계기로 AKB48의 제1장이 끝남과 동시에, 새로운 멤버들이 무대 전면에 서는 AKB48 제2장이 시작함을 알리는 것이었다.[* 실제로 [[타카하시 미나미]]를 비롯한 멤버들이나 운영진, 각종 언론에서도 'AKB48 제2장'이라는 언급을 많이 했다. 2012년 홍백가합전에서 선보인 메들리의 제목도 'AKB48 홍백2012 스페셜 -제2장-'이었다.] 이 후 [[와타나베 마유]]나 [[사시하라 리노]]등은 이미 인기가 있었기에 적절하게 푸쉬했으나, 특징적인것은 [[마에다 아츠코]]의 졸업을 대비해서 본격적으로 다음세대의 중심인 [[시마자키 하루카]]를 광 푸쉬에 들어가게 된다. [[AKB48]]로써의 문제는 상당한 인지도를 갖게된 1기, 2기 주역들이 더이상 어리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2012년 시점에서 이미 6년 이상 활동한 멤버가 대부분이었다. AKB의 엄청난 성공으로 이들은 그룹의 바깥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희망도 생긴 시기였다. 아이돌 수명자체가 짧기 때문에 인기멤버들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때문에 AKS는 향후 2~3년안에 인기멤버의 졸업을 대비해서 다음세대 육성이 필요해졌다. 10기의 [[카토 레나]], [[이리야마 안나]], 11기의 [[카와에이 리나]] 등이 2012년부터는 트리오로 푸쉬를 받기도 했다. 다행스럽게 [[시마자키 하루카]]는 쟝켄대회 우승을 하고 화제를 얻게된다. 또한 연말 멧챠이케에서 소금캐릭터로 존재감을 뽐내며 상당한 인지도를 얻은것도 좋았다. 유일한 흠은 10월 31일 발매된 댄스넘버 [[UZA]]의 비평이 썩 좋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과정과는 별개로 총선거, 악수회, 극장에 사람들도 적응하면서 [[AKB48]] 자체가 슬슬 신선함 부분에서 한계가 보이던 시점이 다가왔다. 정점을 찍었던 [[AKB48]]의 신화는 2012년 가을 기점으로 조금씩 하락 곡선을 그리면서 안정기에 돌입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