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AKB48/역사 (문단 편집) === 2007년: 팀B의 등장과 첫 홍백 출장 === 1월 25일, 팀A의 3rd 세트리스트 '누군가를 위해서'의 센슈락 공연이 열렸다. 이 날은 팀의 실질적 리더로서 팀원들을 이끌어왔던 오리이 아유미가 졸업함과 동시에, 팀B로 갈 3명의 멤버가 확정된 날이었다. 12월에 팀B로의 이동이 거론되었던 멤버 중 마스야마 카야노는 팀A에 잔류하기로 결정된 것에 따라, 우라노 카즈미, 히라지마 나츠미, 와타나베 시호가 이동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3기생은 1기생, 2기생과는 다르게 AKB48이라는 것 자체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가입하는 멤버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와타나베 마유, 카시와기 유키 등이 그러했다. 때문에 이미 AKB는 이렇다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들어왔고, 목적의식도 AKB가 되는 것, 이었기 때문에 합격하고 난 뒤의 3기생들은 엉망이었다. 탈락자가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고, 우라노 카즈미는 초기 팀B에 대해 단결력도 없고, 같은 동료의 실수를 감싸주기는커녕 들춰내려고 하고, 끈기도 없다고 호되게 야단친다. 3월, 첫 전국 투어인 <봄날의 맛보기 전국투어 ~아직이라구 AKB48~>를 개최하였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에서 공연이 열렸지만, 도쿄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의 공연은 오히려 빈 자리가 많을 정도였다. 2006년 중순부터 아키하바라 극장공연은 연일 만석을 기록했지만, 아키하바라를 벗어나면 AKB48의 지명도는 매우 낮았다. 4월 8일, 팀B가 극장데뷔를 했다. 이때의 세트리스트는 팀K 2nd 세트리스트 青春ガールズ를 그대로 가져다썼다. 이때를 즈음해서, AKB48 주요멤버들이 대거 참가하는 영화 '전염가'가 크랭크인했다. 팀A와 팀K의 많은 멤버들이 전국투어와 영화 촬영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고, 3월 한 달 동안 극장 공연이 3일에 불과할 정도로 극장에 나가지 못하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이런 현상은 6월까지 계속되었고, 공연이 불가능한 팀A, 팀K를 대신해 팀B가 공연을 이어가야 했다. 그러나 팀B에서조차도 부상자 속출, 컨디션 악화 등으로 빠지는 멤버들이 많아지면서 더 이상 공연을 이어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7월 1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히마와리조'라는 새로운 기획이 도입된다. 팀A와 팀K의 멤버들을 두 명씩 짝을 지어 팀1과 팀2로 나눈 다음, 팀1이 기본적으로 극장공연을 하되, 팀1에서 결원이 생기면 팀2에서 매꾸는 식이었다. 팬들의 투표가 없다뿐이지, 사실상 1군-2군 제도의 부활이었지만, 멤버들은 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남겼다. 팀A의 마에다 아츠코, 팀K의 오오시마 유코 등은 각각 이 히마와리조 공연을 통해서 자신에게는 없는 부분을 찾게 되었다고 술회한다. 한편 5월에는 제1회 연구생 오디션이 열렸고, 9월에는 제2회 연구생 오디션이 열렸다. 통상 제1회 연구생 오디션에 합격한 아이들을 4기생, 제2회 연구생 오디션에 합격한 아이들을 5기생이라고 부른다. 연구생들은 특정 팀에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 극장공연에 결원이 생기지 않는 한, 나가지 못하고 계속 안무 연습을 해야했다. 당연히 앞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많은 연구생들이 승격도 전에 자진사퇴하거나 셀렉션 탈락했다. 한편 연구생이 생겼다는 것은 기존에 활동하던 멤버들에게도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스탭들은 "어차피 대역을 할 애는 얼마든지 있어"라는 식으로 멤버들을 압박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압박감을 느껴야 했던 이들은 팀B의 멤버들. 카시와기 유키는 "오리지널 공연 하나도 없이 선배들의 것을 물려받아 공연을 하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너무 불안했어요"라고 말했다. 12월 중순, 일본에서 가장 이름난 연말 음악방송인 58회 [[홍백가합전]]에 출전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AKB48만의 힘으로 올라간 것이 아니었다. 당시 일본의 주류 매체들은 아키하바라의 오타쿠계 [[서브컬처]]에 주목했는데 이것을 '아키바 붐'이라고 불렀다. 이 아키바 붐을 조명하기 위해 아키하바라와 연관이 있는 가수를 부른 것이다. 홍백에 출장하게 된 AKB48에 대한 언론의 취재도 늘었지만, 기자들은 깔보는 시선으로 "아키바 욘쥬하치" "아키바의 오타쿠"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12월 31일, 홍백가합전에 출장하기 위해 NHK홀을 찾은 멤버들은 주위의 비웃음 섞인 시선을 인내해야 했다. "학예회", "아키바 모에 아이돌" 등으로 깔보는 소리를 들었다고 멤버들은 증언한다. 방송출연 역시 애니송 가수 [[나카가와 쇼코]], 리아 디존과 함께 메들리 형식으로 무대를 선보였는데, AKB48이 출연한 것은 1분 남짓이었다. 보통의 가수가 최소 3분 이상 출연하는 걸 생각해보면 3분의 1 수준. 이때 AKB48이 부른 노래는 '<[[会いたかった]]>'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