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AR-10 (문단 편집) == 역사 == AR-10 이전 1950년대의 대부분의 개인화기는 나무, 철 등을 소재로 하여 무거웠다.[* 미군의 개인화기를 예로 들자면, [[M1 개런드]]의 무게가 4.31kg이었고, [[M3 기관단총|M3A1 기관단총]]은 3.61kg, [[M1918 브라우닝|M1918A2 브라우닝]]이 8.8kg이었다. 예외로 [[M1 카빈]]의 경우 2.4kg으로 지금 기준으로도 무게가 가벼웠다.] 개발자인 유진 스토너는 이 와중에 '가벼운 총을 만들어 보자'라는 새로운 목표 갖게 되었고 그 일환으로 새로 개발되는 총에 [[가스 직동식]] 구조를 채택하였다. 이전의 방식은 [[가스 피스톤 방식]]으로 손질도 쉽고 안정적이었지만 피스톤을 추가하여야 했기 때문에 크고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가스 직동식은 가볍게 만들 수 있었다. 또한 기존의 목재를 플라스틱으로 대체했고, 알루미늄을 사용하는 등 소재를 과감하게 변경하여 무게를 줄였다. 이 결과 놀랍게도 AR-10은 처음 개발되었을 당시 기준으로 무게가 3.4kg이라는 가벼운 무게를 자랑했다. 1950년대에 제식소총을 선정하는 테스트에 뒤늦게 뛰어들어 T44([[M14 소총]]의 시험 제식명)와 T48([[FN FAL]]의 시험 제식명)과 경합을 벌였다. AR-10의 혁신적인 디자인은 보수적인 군부에서 받아들이긴 쉽지 않았으나, 테스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테스트 사격 도중 폭발 사고가 발생하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http://mblogthumb2.phinf.naver.net/20101118_253/10ghgh_1290078070146O4878_JPEG/%AA%BF_05.JPG?type=w2|#]] AR-10을 개량하면서 경량화를 위해 총열 내부를 [[스테인리스강]], 외부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총열을 만들려고 했으나, 강력한 7.62×51mm NATO탄의 연사가 지속되자 총열이 터져버린 것이다. 급하게 강철제 총열로 교체한 후에는 더 이상 폭발 사고가 없었지만, 이미 평판에 치명타를 먹은 후라 결국 탈락한다. 만일 M14와 경합에서 성공했으면 적어도 M14보다는 정비가 쉽고 가벼우며 훨씬 쏘기 편한 총이여서 [[H&K G3]]이나 [[FN FAL]] 못지 않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것이고 훗날 AR-15로 전환하는데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며 차후 [[지정사수소총]]으로 운용되었을 때 M14의 충격에 의한 영점 변화 문제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AR-10에 들어간 개발비를 회수하기 위해서 해외 수출을 다방면에서 시도했으나, 수입, 채택한 국가들도 대부분 소규모 채용으로 끝나고 말았다. 같이 M14에게 물먹긴 했지만 당대에 널리 쓰였던 [[FN FAL]]이라는 무시무시한 경쟁자가 있어서 실패. AR-10은 결국 9,900정만이 생산되었는데 그중 일부가 1958년에 일어난 [[수단 공화국#s-3|수단 내전]], 1960년대 [[콩고 내전]] 등에서 사용되었다. 사실 콩고 내전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쓰였던 [[StG44]]도 사용했을 만큼 그 당시 손에 잡히는 모든 총기를 쓰는 수준의 카오스라 AR-10도 사용된 것이지 AR-10의 평판이 좋아서 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포르투갈]]군도 수입, 운용해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에서 사용했는데 당시 포르투갈군은 아프리카의 포르투갈령 식민지였던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등지에서 MPLA, FNLA, FRELIMO, PAIGC 등 독립군 게릴라들과 싸우면서 가볍고 화력이 좋은 AR-10을 선호했다. 그러나 아프리카 식민지를 독립 시키지 않는 포르투갈 살라자르 독재정권에 대한 영어권 선진국들의 국제적인 압박과 무기 금수 조치가 강화되면서 포르투갈군은 AR-10용 부품과 AR-10 소총 신품을 구할 수 없었고, 결국 독일제 [[H&K G3|G3]] 소총을 제식 소총으로 신규 도입하면서 G3 소총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시 포르투갈군에서는 영어권 국가들의 금수 조치 이전에 아말라이트 사로부터 구입한 AR-10 소총들이 남아있었고, 식민지 독립 전쟁 후기까지 G3 소총과 AR-10 소총을 함께 사용하다가 결국 1974년 카네이션 혁명 이후에 앙골라, 기니비사우, 모잠비크, 상투메프린시페, 카보베르데 등 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들을 독립시킨 이후에 AR-10을 포르투갈군에서 완전히 퇴역시켰다. 그리고 아말라이트는 AR-10을 베이스로 보다 소구경의 탄약을 사용하는 '''[[AR-15]]'''를 만드는 둥 하다가 결국 모든 권리를 [[콜트(총기회사)|콜트]]사에 넘겼다. 아말라이트가 콜트사에 권리를 남길 때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개발 비용을 건지려고 하다보니 고작 75,000달러에 판매 시 수익의 4.5%를 로열티로 받는다는 영 좋지 않은 조건에 모두 넘겼지만, 당시 콜트사도 돈이 없기는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모든 권리를 받은 콜트사는 AR-10과 AR-15를 생산하려 했지만 시제품들을 바이어들에게 보여주니 [[AR-15]]에만 관심을 보이는 등의 이유로 인해 AR-15에 올인하기로 결정한 이후 AR-10 생산 설비를 아예 빼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