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DAS (문단 편집) == 역사 == 공식적으로는 1987년에 [[현대자동차]]의 하청업체 '주식회사 대부기공'이라는 이름으로 [[이명박]]의 처남 김재정[* 1949년생. 2010년에 만 60세로 사망했다.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경북고등학교]]와 [[명지대학교]]를 졸업했고 누나 김윤옥이 이명박과 결혼한 뒤 이명박이 간부로 있던 [[현대건설]]에 1976년에 입사했다. 그 다음 해 1977년에 이명박은 현대건설의 사장이 되었다. 1982년 부친의 회사를 물려받았다가 1987년부터 다스(대부기공)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 현대건설에 있던 1978년부터 땅을 매입하기 시작하여 무려 1990년대 초까지 30대의 나이로 상당히 많은 부동산 투기를 했다고 알려졌다. 주로 매입한 지역은 [[서울특별시|서울]], [[경기도]], [[충청북도]], [[경상북도]] 지역이라고 한다. 그 유명한 [[도곡동]] 땅 1,986평의 명의자 역시 이 사람과 상술된 이상은 회장이었다. 당시 대략 16억 정도에 샀다고 하는데 전부는 알 수 없지만 도곡동 땅의 일부는 1985년 현대건설(당시 사장 이명박)로부터 매입했다고 한다. 이후 그와 이상은 회장은 후에 이 지역이 개발되면서 땅값이 오른 뒤 훗날 이 땅을 263억에 팔았다. BBK 논란에서 이명박, 이상은과 함께 중심인물이다.](부인 [[김윤옥]]의 동생)과 [[일본]]의 대형 자동차 부품회사인 후지기공[* 후지기공은 [[제2차 세계 대전]] 말에 [[일본군 해군]]에 총이나 포탄 등 무기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후지 무기'라는 군수기업이었다. 방직기업이 세웠던 기업이기 때문에 방직공장을 무기공장으로 급히 전환하면서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1년 뒤 2차 대전이 일본의 패배로 끝나자, 자동차 부품회사로 전환하여 현대에 이른다.], 이명박의 친형 [[이상은(기업인)|이상은]]이 동업하여 당시 기준으로 [[경상북도]] 월성군 외동읍 구어리[* 현재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구어리. 1955년 경주 시내 중심부의 경주읍과 내동면이 경주시로 승격하면서 외곽은 월성군으로 분리되었고, 1980년에 외동면이 외동읍으로 승격하였다. 1988년에 경상북도의 모든 읍면 산하에 있는 '동'들이 '리'로 전환되기 전에도 월성군은 읍면 산하에 '리'를 두었다. 1989년에 월성군이 경주군으로 개칭하였고 1995년 도농통합 때 경주시와 경주군이 통합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경주시/역사]] 문서 참조.]에 공장을 차리면서 시작했다. 초기에는 후지기공의 기술지원에 의존하던 회사였으나 1990년대 중반부터 대주주 후지기공과의 기술원조 계약이 끝나가자 관계를 정리하면서 이상은이 후지기공 법인 소유의 다스 주식을 매입하다가[* 후지기공과 관계를 끊기 전까지 10년 동안 다스는 정부 기준으로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분류되던 회사였다.] 1990년대 말에 다 사면서 최대주주 김재정과 2대 주주 이상은의 투톱 주주가 지배하던 회사로 변했다. 2003년 DAS(Daebu Automotive Seat)로 사명을 바꿨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승용차용으로 대량의 비중을 갖고 납품하고 있으며[* [[주진우(1973)|주진우]] 기자의 말로는 현대자동차의 90% 이상은 다스의 부품을 쓸 정도로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중에서는 최고의 비중이라고 한다.] 요새는 현대자동차에서 거래처 다변화 차원에서 다스의 비중을 줄이고 있다. 다스 또한 현대자동차의 경쟁사인 [[르노삼성자동차]]뿐만 아니라 [[폭스바겐]], [[포드(자동차)|포드]] 같은 외국 회사로 납품망을 다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합뉴스]]가 취재한 과거 소문으로는 [[현대그룹]]의 회장 [[정주영]]의 지시로 현대자동차 부품사업부가 별도법인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던 이명박에게 정주영이 부품 사업부 운영을 넘겨주려던 과정[* 이명박의 최측근이었던 [[정두언]]의 증언으로, 본인이 이명박과 친하던 시절 사적으로 대화를 했을 때 이명박에게 직접 들은 바로는 정주영 회장이 먼저 추천했다기보다 그의 동생 [[정세영]] 회장이 먼저 나서서 이명박 쪽에 모두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일단 현대가에서 현대자동차 부품사업 확장을 이명박이 주도하는 것을 지원하려 한 것은 맞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경영권은 이명박 측에게 주려고 했다고 해도 그보다 현대자동차 계열사로 만들려고 시도한 회사의 지분과 소유권 자체가 어째서인지 현대자 법인이나 현대가 사람이 아닌 이명박 측에 넘어간 것이 특별한 일이고, 그것도 현대계열사 사장이던 이명박 본인명의가 아니라 친형과 처남의 회사가 된 일이 더 특이한 것이라서 이에 대한 원인과 과정이 진짜 중요한 핵심인데, 이에 대한 증언이 없으므로 큰 의미는 없다. 게다가 정주영, 정세영 형제와 정두언 모두 사망한 지금은 진실을 알 길이 없다.]이 생겼는데 이 와중에 모종의 이유가 발생해 현대가에서 운영하는 계열사가 아니게 되면서 경영권이 이명박의 가족 측으로 넘어갔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해외 사업법인(공장) 중 다스의 주식이 하나도 없는 [[이명박]]의 아들 [[이시형(기업인)|이시형]]이 [[중국]] [[베이징시]]에 있는 북경 다스, [[저장성]]의 항구도시인 [[닝보시]]에 있는 닝보 다스, [[장쑤성]] [[옌청시]][* [[현대자동차그룹]]에 속한 [[기아자동차]]의 공장도 있는 곳이다.]에 있는 강소 다스, [[산둥성]]의 [[웨이하이시]] 원덩 구[* 한국식 독음으로 읽으면 웨이하이 시는 위해 시, 원덩 구는 문등 구. 한중수교 이후 급격하게 발달한 도시다.]에 있는 문등 다스[* 중국 다스 공장 중 가장 알짜 공장이라고 한다. 리클라이너 생산 공장인데 다른 중국 다스 공장에서 생산된 부품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다스 생산 기술의 집약체 같은 곳이라고 한다.]까지 총 4곳의 중국 법인의 대표가 되었다. 이 4곳은 모두 다스가 지분을 100% 가지고 있는 완벽한 다스 소속 법인이다. 강소 다스와 문등 다스의 경우 다스의 회장 이상은과 그 아들 이동형이 대표직을 가지고 있었으나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에 모두 이시형으로 대표가 바뀌었다. 나머지 공장은 중국자본과 합작 법인인 '북경 BAI 다스'[* 중국자본과 다스의 합작 법인으로 상술된 '북경 다스'[* 다스 지분 100%로 순수한 다스 소속]와 다른 곳이다. '북경 BAI 다스'는 북경 외에도 [[허베이성]], [[후난성]], [[충칭시]]에도 공장이 있다.] 것이라서 중국인이 대표지만 역시 이곳에서도 이시형은 이사로 소속되어 있다. 사실상 중국 내 다스 대부분에 다스 주식도 없는 이시형이 다스의 대주주이자 큰아버지인 이상은과 그의 아들 (사촌형)이동형의 위치를 점점 가져오며 상당한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7/10/21/story_n_18342300.html|관련기사1]][[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531859&pDate=20171010|2]] || [[파일:다스 강경호.jpg|width=100%]] || || [[한국철도공사]] 사장 출신인 다스 사장 [[강경호(1946)|강경호]]. 다스는 2013년 무역의 날 시상식에서 4억 불 수출탑을 받았다. || 대표는 상술된 [[이상은(기업인)|이상은]] 회장 및 [[강경호(1946)|강경호]] 사장 공동 대표이사 체제였었다. 강경호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서울시장 재직 시절에는 [[서울메트로]] 사장을, 대통령 재직 시절에는 한국철도공사 사장을 역임했으나, 한국철도공사 재직 시절 특정범죄처벌법상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되어 5개월 만에 사장직을 상실했다.[* 최종적으로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및 추징금 5,000만 원이 나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