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DJP연합 (문단 편집) == 연합 성사 == [[1997년]] [[11월 3일]] [[김대중]] 후보가 [[김종필]] 전 의원의 [[청구동]] 자택에 직접 찾아와 사실상 DJP연합을 마무리지었고 다음 날 [[박태준(1927)|박태준]] 전 의원이 [[자민련]]에 입당해 총재로 추대되면서 연합 성사는 완료되었다. 연합 성사 다음날, 연합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쉬울 게 없다며 갈지자 행보를 보이던 김종필은 2인자를 자처하면서 김대중에게 매우 공손했다고 전해지는데 이야기가 끝나고 김대중이 나갈 때 김종필이 90도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당시 DJ 비서실장 [[한광옥]]은 JP를 진정한 정치 고수라고 생각했다고 훗날 회상하기도 했다[* 다만 [[김종필]] 문서나 [[14대 대선]] 문서 등에서도 설명된 것처럼 당시 김종필과 자민련은 독자적으로 대권에 도전할 만한 입장은 아니었고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려 해도 김대중 및 새정치국민회의와 손잡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 처지였다. 즉 자신들의 대권이 걸린 문제라 절박한 것이 김대중측의 상황이었다면 어차피 자기들 손에 대권은 쥐지 못할 것이지만 반짝 뜨고 만 비 수권정당의 처지로 남느냐, 수권세력의 한 축으로 자리잡을 기회를 얻느냐가 달려 있었기 때문에 아쉬운 것이 김종필측의 상황이었다. 말하자면 협상 과정에서는 '그쪽 판돈이 더 크니 엎어지면 아쉬운 것은 그쪽 아니냐'고 배짱을 튕기면서 몸값과 지분을 올렸지만 협상이 타결된 이후에는 관계를 주도할 수 없는 자기측의 입장을 명확히 파악하고 그에 따라 처신했다는 점에서 노련한 정치인답다는 감탄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당시 연합에서 합의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 대통령 후보는 [[김대중]] 총재로 하고 초대 [[국무총리]]는 [[김종필]] 총재로 한다. * [[제16대 국회]]에서 [[의원내각제]] [[개헌]]을 하기로 합의하며 실세형 총리로 한다. 개헌 시기는 [[1999년]] 12월 말 이전으로 한다. * 경제 부처의 임명권은 [[국무총리]]가 가지며,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 [[광역자치단체장]] 중 [[최기선|한 명]]을 [[자민련]] 소속으로 한다. 한편 이 과정에서 연합에 반발한 [[자민련]] 소속 의원들[* [[이의익]], [[안택수]], [[박종근(1937)|박종근]].]이 탈당해 [[신한국당]]으로 이적하는 일도 있었다. 그 중 [[안택수]] 전 의원은 현직이었던 당 대변인직을 버리고 탈당했기 때문에 당시 자민련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안택수 전 의원은 당 대변인이었다 보니 당시 [[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전 총재 [[병풍 사건|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선두에 나서서 까던 사람이었는데 신한국당에 입당한 후에는 이회창 후보를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라며 극찬한 것이다. 또 [[이의익]] 전 의원은 이듬해 [[대구광역시장]] 후보 선출 과정에서 현직이었던 [[문희갑]] 전 시장에게 밀려나자 자민련으로 되돌아오기도 했지만 이후 선거에서 낙선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