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F-117 (문단 편집) == 개발 배경 및 특징 == [[미국 공군]]이 [[록히드 마틴]]의 특수설계팀인 '[[스컹크 웍스]]'에 의뢰해서 개발한 최초의 스텔스 공격기. [[전투기]]를 뜻하는 'F'를 가지고 있지만 미 공군은 원래 그랬다. 미 해군에서 먼저 개발되어 미 공군도 도입한 기종(A-7 등)을 제외하면, 미 공군은 원래 근접지원 임무를 맡는 경우에만 A를 기체 임무 분류기호로 쓰고, 항공차단, 즉 AI임무를 주목적으로 하면서도 폭격기가 아닌 종류 즉 장거리 침투 공격기는 원래 F를 붙였다. 1974년 [[DARPA|미 국방 선진연구설계국]]의 계획 XST(Experimental Survivable Testbed: 생존가능성 실험 테스트베드)에 참여한 6개 [[회사]]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이 중에서 채택된 것이 바로 록히드 마틴의 설계팀인 스컹크 웍스의 제출안이었다.[*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계기는 1973년의 [[제4차 중동전쟁]]의 결과와 관련이 있다.] 사실 스컹크 웍스는 위 계획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스컹크 웍스는 저시인성 항공기 개발에 가장 경험이 많은 개발팀이었지만 전투기 계약에 참여하지 않은지 오래된데다[* F-104가 마지막이고 이후 F-16이 되는 LWF계획에는 공군의 요구서의 연료탑재량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사실상 포기했다. 정확히는 요구서대로 제안서를 내지 않고 연료탑재량 및 그에 따른 기체 크기를 늘려서 제안해서 1단계에서 바로 탈락했다. 다른 업체는 제안서에는 공군 요구대로 제안했고 이후 설계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따 냈다. 그것이 F-16와 이후 F/A-18이 되는 YF-17.] 주요 프로젝트를 CIA 위주로 계약하였고 공군과의 프로젝트도 대부분 극비로 행해왔다 보니 [[DARPA]]의 담당자가 이를 알지 못해 스컹크 웍스에 제안서를 요구하지 않았고 따라서 스컹크 웍스 역시 DARPA의 프로젝트에 대해 제때 알지 못했던 것. 때문에 1975년, 절망의 [[다이아몬드]]라고 이름 붙인 기본 설계안을 바탕으로 스텔스기를 연구하던 도중, 위에서 서술한 [[DARPA]]의 계획을 알게된 후 "이거 우리가 하려는 거 하고 똑같잖아"하고 참여하려 했으나 이미 예산[* 업체당 100만달러]은 미리 참가하고 있던 5개 회사에 전부 나누어진 상황. 이에 계획 담당자는 대안으로 록히드 사에게 1달러짜리의 명목상 계약을 제안했으나 록히드 사는 이를 거절하고 온전히 자가부담으로 참여했다. 벤 리치의 회상에 의하면 이 결단으로 인하여 자사[* 록히드 마틴]가 개발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부담을 안게 됐지만 덕분에 스텔스 기술의 권리를 스컹크 웍스가 차지할 수 있게 되어 회사에 막대한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때의 일화를 거의 모험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그럴 만 한게 당시 록히드는 경영난을 겪고 있었던 데다가 롤스로이스의 파산문제로 L-1011 프로그램의 난항까지 겹쳤고 LWF 계획에선 서류에서 탈락하는 등 전술공군과는 사실상 10년 이상 연이 없었다. 그나마 U-2의 추가 생산, C-141, C-5같은 전략 수송기와 로켓, 인공위성 등은 계속 팔았기에 미 공군 전체로 보면 아직 연줄은 남아 있었으나 악연적으로 이 때 경영난에 겹쳐 '''록히드 스캔들'''이 터지면서 몇 년동안 록히드의 상황은 지옥이 된다.] 심지어 모형심사에서 노스롭을 제끼고 해브블루 2기 제작 계약을 따냈는데 추산비용이 2,800만 달러여서 공군에 3,000만 달러를 요구했더니 공군이 의회 허락 안 받고 쓸 수 있는 비밀자금 한계가 2,000만 달러라 부족한 1,000만 달러를 자사에서 우선 부담해야 했다. 허나 말그대로 자사부담을 한 덕분에 기술의 권리도 DARPA에게 뺏기지 않고 회사가 가지고 있어서 이후 돌아올 이윤도 큰데다 우선 눈앞에 있는 몫만 30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따냈는데도 불구하고 회장이 경영난을 이유로 이 1,000만불을 내는데 난색을 표했을 정도다. 그나마 경영진 회의를 열 수 있게 해줬고 그 회의에서 부회장과 사장이 적극 찬성해서 겨우 자금을 받을 수 있었다. 비행시험 초기 단계까지 3,400만 달러가 들어갔는데 공군 관계자가 시험비행사에게 얼마 들어갔냐고 해서 저 가격을 말하자 '아니 비행기 한대 가격 말고 2대 만드는 프로젝트 전체 비용이 얼마냐?'고 했을 정도의 비용이다. 그 비용의 1/3도 내기 힘들어 했을 정도의 경영난. 벤 리치는 이 회의에서 이 기술만으로 20~30억 달러의 이윤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는데 당시엔 이사진에게 이윤을 과장했다면서 지적받았지만 이후 터무니 없게 낮게 잡은 것으로 드러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ARPA_USAirForce_HaveBlue.png]] 1976년에 절반 정도의 크기를 가진 '해브블루'라는 [[프로토타입]] 시작기가 2대 제작되었으며, 그 후 1978년에 선행양산기가 제작, 1979년에 A형이 5대 발주, 그후 브라운 국방장관이 예산 100배 증액하면서 시니어 트렌드로 전환, 1980년부터 1990년까지 59기가 생산, 공급되었다.[* 원래는 100대까지 생산할 예정이었으나 냉전 종식으로 국방 예산이 대규모로 삭감되면서 결국 59기로 양산 종료.] 개발은 극비리에 진행되어 정보누출을 줄이기 위해 시험비행을 밤에만 실시한다거나, 개발이 진행되던 기지에는 다른 제식기종인 [[A-7|A-7D]]의 운용으로 철저히 눈가림하면서 [[떡밥]]을 여기저기 뿌려댔는데, 미 국방부의 이러한 [[낚시(인터넷 용어)|낚시]]는 매우 효과적이어서 F-117의 기밀을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제인 연감조차 낚여서 몇 년(1986-1989)간 F-19를 싣고 있었다.[* [[토머스 레오 클랜시 주니어|톰 클랜시]]도 여기 낚여서 소설 [[붉은 폭풍]]에 F-19를 등장시켰고, [[프라모델]] 메이커인 테스터스와 이탈레리가 상상도를 바탕으로 프라모델을 출시했을 정도였다.] 근데 이때 1급 기밀로 지정되는 바람에 스컹크 웍스는 큰 불편을 겪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였냐면 해브블루 그림을 앞에, 기수를 중간에, 구름 끝에 꼬리 이런 식으로 그려놓은 머그잔을 만들었는데, 그래도 기수가 나와있다는 이유로 머그잔이 1급 기밀로 지정되어 버렸다. [[커피]] 한 잔 먹고 나서 컵을 금고에 넣고 자물쇠로 잠가야 했다고.[* 다만 자서전에서 이 이야기를 한 벤 리치는 농담을 맛깔나게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라 살짝 과장한 것으로 보이지만 스텔스기로서의 F-117의 평면형상이 일종의 기술적 기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형상이 드러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 자서전은 공돌이가 쓴 책치고는 입심이 꽤 좋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사실 사업초기만 하더라도 1급 기밀까지는 아닌 냉전 때 흔했던 무기개발사업의 일부였으나 스텔스라는 개념을 적용한 평평한 모양을 유지하면서 나는 것이 가능하다고 공군과 국방성이 알게 되자 이 프로젝트는 1급 기밀로 취급되었다. 게다가 1급 기밀도 보통 1급 기밀이 아니라 전 스컹크 웍스 개발진들에 의하면 [[맨하튼 프로젝트]]에 버금갈 정도의 최고 극비사항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냉전시대 소련의 정찰위성을 피해 [[C-5|수송기]]를 통해 해진 밤 '''[[AREA 51|네바다에 위치한 비밀 실험장]]'''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후 제식 명칭이 F-117이 되었는데, 당시 미군의 개편된 제식부호 명명법 순서에도, 기존의 센추리 시리즈를 비롯한 순서에도 맞지 않았다. 덕분에 소련을 속이기 위해서라는 설부터 사실 112~116까지는 미국이 여러 경로로 입수한 소련제 전투기에게 붙인 번호라는 설, 또 미 공군이 F-1 부터 다시 번호를 시작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그렇지 않아서 F-117까지 나와버렸다는 설 등, 공개된 이후 다양한 추측이 나왔다. 결론은 싱겁게도 그냥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아직 제식명칭이 붙기 전에 시험비행 조종사들은 자신들의 항공기의 무선호출 부호를 117로 썼다. 그런데 시험비행 조종사를 위해서라도 비행매뉴얼이 있어야 하다보니 [[록히드]]는 일단 평소 쓰던 양식대로 비행매뉴얼인 T.O[* Technical Order, 기술교범. 쉽게 말해 매뉴얼이다.]에 F-117A-1이라고 적었다.[* 일반적으로 -1은 비행매뉴얼을 의미하는 숫자] 그리고 미 공군은 기왕 매뉴얼에 F-117이라고 이름이 붙은 것을 굳이 고치지 않았다. 그러려면 이미 인쇄해놓은 매뉴얼들을 폐기하고 각 매뉴얼마다 F-117이라고 적힌 부분을 싹 다 고쳐야하는데, 지금처럼 워드를 이용하여 책을 만들던 시절도 아니니 이 노가다를 하느니 그냥 F-117을 쓰기로 한 것. 같은 록히드 생산기 [[SR-71]]은 대통령의 말실수로 일일이 다 고친 것과 비교하면 아이러니. SR-71의 이름이 RS에서 SR로 바뀐 뒷배경이 밝혀지긴 했다. [[SR-71]] 문서 참조. F-117의 독특한 모습은 [[스텔스]] 능력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기 때문이다. 즉, 필요 이상으로 각진 후퇴익과 다이아몬드 형상의 동체를 가지고 [[레이더]]나 폭탄창들을 모두 기체 내부에 수납, 그리고 [[전파흡수물질|레이더 흡수용 특수도료]]를 사용해 RCS를 0.01㎡까지 낮추는데 성공했다. 당시 쓰인 전파흡수물질(RAM)은 140km 밖에서 레이더에 걸릴 수 있는 수준의 물체를 23km 밖에서 겨우 포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떨어트리는 걸출한 능력을 자랑했으나 내구력이 영 좋지 않아 출격할 때마다 새로 도색해야만 했다. 저 외형이 그 문제의 악화에 일조했다. 저 수치면 보통 레이더로는 잘해야 [[새]]로만 보인다. 그 독특한 형상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나이트호크라는 정식 애칭 대신에 '[[다리미]]'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당시의 컴퓨터 성능이 낮은 관계로 스컹크 웍스팀이 에코1 프로그램까지 사용했음에도 곡면의 RCS 계산이 불가능해서 평면으로 설계할 수밖에 없었다. 평면으로 구성해서 가장 낮은 RCS를 가진 것이 마름모꼴 모양이기 때문에 그 모양이 된 것이다. 따라서 그런 모양은 스텔스성 자체보다는 당시 컴퓨터의 한계로 어쩔 수 없었다. 이후 [[CAD|컴퓨터 성능]]이 발달하면서 [[B-2]], [[F-22]], [[F-35]] 등의 항공기들은 스텔스 능력을 갖춘 채로 곡면의 형태로 설계된다. 자세한 것은 [[레이더 반사 면적]] 참조. 덕분에 곡면이 필요한 항공역학까지 만족하는 기체를 만들 수 없는데, 이로 인해 비행 성능은 그리 좋은 편이 못되어 대부분은 [[F-16]]에서 유용된 [[플라이 바이 와이어]] 시스템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설계 당시 공기역학 담당자가 스텔스 담당자와 현피를 뜨려고 했을 정도. "닥쳐! 비행기 설계는 내가 하니까 넌 거기다 스텔스 기능만 붙여!"랬던가. 문제는 F-117은 스텔스 성능을 최우선으로 했기에 스텔스 담당자가 설계에 관여한 부분이 더 크다는 것이다. 때문에 격한 회피기동 따위는 꿈도 못 꾸며, 혹시라도 거칠게 몰았다가는 곧바로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환상적인 기동성을 자랑한다. 그 탓에 현재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만 해도 개발 도중 5대 이상이 손실되었고 이는 F-117의 생산대수를 생각하면 엄청난 것이다. 다만 애초에 그 문제를 이미 예상하고 플라이 바이 와이어 시스템을 적용한 관계로 조종사 입장에서 조종성은 굉장히 좋다고 한다. 벤 리치에게 [[스컹크 웍스]]의 수장 자리를 주고 물러났던 전임자 [[켈리 존슨]][* 전임자라곤 하지만 은퇴 후에도 스컹크 웍스의 자문을 꾸준히 맡았다.]은 F-117을 보고 "이런 똥덩어리가 날 것 같냐?!"라고 매우 화냈다고 한다.[* 이 분이 무슨 [[꼰대]]같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사람은 '''희대의 천재 집단 스컹크 웍스의 창시자이며 무려 25년을 그 조직의 수장으로 있었다.''' 공기역학적인 설계와 조직 관리에 있어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이다. 특히 자신의 주요 분야였던 공기역학적인 설계에 있어서 여러 일화들이 존재하는데, "저 스웨덴 놈(부모가 스웨덴 이민자 출신)의 눈엔 공기가 보이나?!"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였다. 단지 이 사람은 컴퓨터의 발전 속도를 감안하지 못했을 뿐이다.] FBW가 급격히 발달한 현대에는 고출력 엔진만 붙이면 벽돌도 날아다닐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개발 중에 일화가 하나 있는데 RCS 측정 실험 중에 모형을 올려놓은 기둥의 RCS값이 더 크게 나와서 레이더 상에서 모형을 가려버린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노스롭측 개발팀과 스컹크 웍스가 갹출해서 50만 달러짜리 새 기둥을 하나 만들고 이걸 1마일 밖의 [[개미]]도 찾아낼 수 있는 레이더로 측정하자 [[벌(곤충)|벌]] 한마리 수준의 RCS가 나왔다고 한다. 이때 노스롭 관계자[* 존 케센. 노스롭 그루먼의 스텔스 대부라 할 수 있는 인물. 금발미녀와 벤 리치를 이기는 것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후자를 고를거라고 했을 정도다. B-2 덕분에 소원성취했을 듯. 기체 외적인 영향이 더 크긴 했지만.], 기둥이 이런데 모형은 얼마나 한다는 거임?"이라고 했다 한다.[* 출처: Skunk Works: A Personal Memoir of My Years of Lockheed.] 이후 스텔스기 사업에서는 록히드가 선정되었고, 해브블루라 이름 붙인 시제기가 제작되었다.[* 노스롭은 이후 [[B-2]] [[폭격기|전략폭격기]] 사업에서 이때의 패배를 설욕한다.] 이처럼 독특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으나, 내부 구조는 "스텔스를 실현한다"는 유일한 목표만 달성한다면 기존 기종의 부품은 최대한 쓰자는 주의로 조종석은 [[F/A-18]]의 것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는 등, 기존 전투기들의 부품들을 최대한 끌어다 쓴 덕분에 조종사들은 기체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으며, 생산단가도 무려 9,000만 달러[* 기술실증기인 해브블루의 경우 2대 만드는데 3,000만 달러가 들어갔다고 한다.]를 절감할 수 있었다. 스텔스 성능은 오히려 한참 뒤에 생산된 [[F-22]]와 [[F-35]]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F-117의 RCS 수치는 F-22, F-35보다도 훨씬 낮다고 알려져 있다. F-22의 RCS 수치는 F-35보다도 훨씬 낮다고 알려져 있다.] F-22와 F-117의 스텔스 지향 개발 컨셉이나 기술의 발전의 세대차이도 감안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스텔스를 위해 비행성능을 크게 희생한 F-117 과는 달리 F-22나 F-35는 대단히 뛰어난 비행성능과 함께 스텔스 능력까지 가진 것인데, 이는 역으로 보면 비행성능을 유지하기 위해 스텔스 능력을 더 높이는 것을 포기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항공기의 스텔스 성능에는 RCS 값 뿐 아니라 열 피탐성이나 전자전 능력등도 큰 영향을 끼치므로, RCS 값이 낮다고 무조건 스텔스 성능이 뛰어나다고 단정하는 것도 적절치는 않다.]. [[파일:external/www.battle-fleet.com/F117.jpg|width=600]] 당시 기술 실증기였던[* 엄밀히 말하면 프로토타입이 아니다. YF-22같은 경우는 기술 실증기이면서도 프로토타입이지만, 해브블루는 프로토타입으로 보기 어렵다.] 해브 블루의 성능 또한 발군인데 당시 [[미군]]이 보유한 모든 [[소련]]제 [[레이더]]와 자국의 [[전투기]] [[레이더]]에 걸리지 않았으며 오직 [[E-3]] [[조기경보기]]와 지대공 미사일이[* [[나이키]]나 [[호크]] 등] 미사일을 쏠 수 있는 최소 사정거리까지 접근해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기술실증기가 이 정도인데 [[양산형]]의 성능이야 말할 것도 없다. 우리 공군 [[호크]] [[미사일]] [[레이더]]가 F-117을 잡아냈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은 같이 날던 편대기를 잡았다고 한다.[* 한국만 이런 건 아니고, 미국에서 시험비행 할 때도 공군이 "레이더에 보이는구만. 스텔스는 개뿔"이라고 했는데 알고보니 F-117을 관찰하려고 옆에서 날던 T-38기를 잡은 것이었다.] [[E-3]]도 옆에서 날던 걸 못 잡았는데... 만들어질 당시 최고 기밀로 부쳐져서 밤에만 훈련을 한 덕분에 밤에 훈련하다 낮이 되기 전 쉘터로 돌아가는 F-117을 보면서 [[관계자]]들은 [[바퀴벌레]]라는 고약한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렇게 밤낮이 바뀌어서 생기는 스트레스에 조종사들의 [[공간지각력|공간지각능력]]이 매우 떨어져, 전등불을 별빛으로 착각하여 지면에 정면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으며, 해당 기체에 탑승중이던 조종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러나 미군에선 다른 전투기인 [[F-101|F-101 부두]] 잔해를 뿌려놓고 그 지역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에게 비밀 서약까지 종용하며 사건을 감춘 일도 있었다. 거기다 불행히도 F-117 파일럿은 기밀 유지를 위해 지원제가 아니라 발령제였다. 어떤 식이냐면 "너 군 조종사 경력보니 괜찮네. 어떤 부대에 배속시키고 싶은데 거기가면 존내 쩔어주는 비행기를 몰 수 있어. [[낙장불입|근데 yes라고 안하면 보여줄 수도 임무를 말해줄 수도 없어 yes라고 하면 취소는 못해]]" 그리하여 [[조종사]]들의 스트레스가 극대화되고 결혼 생활은 파탄으로 치닫는 등 조종사들 사이에서 F-117은 가정 파괴범이나 마찬가지였다. 1980년 처음으로 배치된 넬리스 공군기지 요원들도 A-7D 운용부대인 것처럼 연극을 시킬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유고슬라비아 내전|코소보 사태]]에서 주간 공습에 격추당하자 미군에선 다시 주간비행을 금지시켰고 조종사들은 나이트호크라는 공식 이름보다 바퀴벌레라는 악명을 더 선호했다고 한다. 근데 정작 미국이 이처럼 온갖 희생을 치루면서 기밀을 유지했음에도 [[소련]]은 대충 상황을 파악해 VHF대역 [[레이더]]를 전면배치하여 방공망을 [[업그레이드]]한 상황이었다. [[미군]]은 후에 VHF 라디오에 음성이 실리지 않는 걸 보고 이를 눈치챘다. 단, VHF, UHF 레이더는 본래 소련이 장거리 탐색 레이더로 쓰던 물건이긴 하다. 이 대역의 레이더는 굉장히 장거리까지 탐지 가능하지만 문제는 파장 자체가 길다보니 이 당시 U/VHF 레이더는 위치오차가 1km 가까이 난다. 그래서 탐색용으로는 쓸만해도 미사일 유도용으로는 부적합하다. 그나마 밑의 코소보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본래 200km급 이상의 탐색용 레이더지만 F-117은 겨우 20여 km 이내로 들어와야만 탐지가 가능하다. 간단하게 비유하자면 휴대폰위치추적이 [[A-GPS]]도 정밀도가 떨어지지만 (와이파이나 인근 도심 기지국이면 반경이 좁아서 정밀도가 오르고 GIS가 있으므로 훨씬 좋다) 진짜 GPS같은거라던가, 몇 년전 자주 쓰던 대형 기지국 탑기반일 경우 정말 넓은 범위로 어디서든 잡을 수는 있으나 위치는 기지국 반경만큼으로 나오는 것. 더 압축하면, 그냥 소리나 인기척이 나니까 저 멀리 반경 어딘가에 있다고 인지할 뿐, 서로 섣불리 못 나간다는 것이다. 계륵인 셈이다. 더군다나 저주파통신대역의 특성상 파장이 길어서 정말 방사 범위만 크다. 즉 초장파 대역의 레이더로도 이론상 탐지만 가능할 뿐 탐지범위는 크게 줄어들게 되며, 스텔스기는 이를 이용해 탐지범위의 사각으로 손쉽게 침투할 수 있다는 뜻. [[파일:external/www.afwing.com/6f2416aa2f428db858086c6ede56e469.gif]] [[미 해군]]의 A/F-X 프로젝트가 취소되자, 록히드 마틴 측에서는 해군측에 항공모함에 탑재할 수 있게 재설계한 'A/F-117X 시호크'(F-117N)의 도입을 주장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