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F-117 (문단 편집) == 운용 및 실전사례 == 1980년 넬리스 공군기지에 A-7D 장비로 위장한 4450TG가 편성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 51구역 근처에서 목격됐다는 UFO의 정체가 F-117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뒤 F-117은 1989년 [[파나마 침공]] 작전에서 첫 실전 데뷔, 이후 1991년 [[걸프 전쟁]]에서 "우리는 공격받고 있습니다"를 연출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심지어 100여대의 전투기가 대규모 [[스트라이크 패키지]]를 구성하고 달려들었다 실패했던 [[이라크]]의 [[원자력 발전소]]를 단 '''8기'''로 파괴해내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에도 이런저런 전장을 돌아다니면서 전투손실 0을 기록했으나…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Is3R4ie21Mc)]}}}|| || 당시 F-117 추락지점과 생존 조종사의 구조를 구현한 The Operations Room의 애니메이션 ||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F-117이 [[2K12 쿠프]]의 스트레이트 플러쉬 반능동레이더에 포착 당했고, 2발의 [[S-125]](SA-3)미사일에 격추됐다. 이 사례는 세계 최초이자 아직까지는 유일한 스텔스기 실전 격추사례이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cafefiles.naver.net/f-117-nn7.jpg|width=100%]]}}}|| || 당시 격추된 F-117 || 격추 원인으로 당시 다음과 같은 추측들이 난무하였다. * 벌건 대낮에 돌아다녀서 적에게 위치가 노출되었다.(그러나 격추된 것은 저녁과 밤 사이라고 한다.) * 중거리 대공 미사일인 SA-6에 의해 레이더로 추적당했다. * 당시 폭격 임무 중 구름이 심하게 껴서 목표 확인이 어렵자 고도 15000ft 이하로 내려왔다가 대공포나 저고도 미사일에 격추당했다. * 폭탄창이 열린 상태여서 RCS가 커졌기 때문에 스텔스성을 일시적으로 상실했다. * F-117의 야간 기능이 고장나서(혹은 상실되어) 적에게 들켰다.[* 어느 다큐에서의 미군과의 인터뷰에서 "저고도로 날고 있었는데, 야간기능이 고장 나는 바람에 격추되어 버렸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당시 조종사는 "기체가 급격하게 추락했어요. 분명 미사일에 맞은 겁니다." 라고 진술했음에도 미 공군은 '엔진이 멀쩡하니 대공포로 격추된 거'라고 주장했다. 사실 일리가 아주 없진 않았던 것이 SA-3 같은 강력한 파편탄두에 맞았다면 십중팔구 동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사진에서 보듯 F-117는 손상이 거의 없다. 또한 F-117의 특성상 조금만 손상을 입어도 기체가 불안정해져 추락하기에 눈먼 대공포에 맞았다는 설이 당시 가장 유력했다. 문제는 그렇지 않았을 뿐. 그러나 실제로 격추당한 것은 저녁 8:45분 경이었으므로 대낮이 아니라서 적에게 들킬 상황은 아니었다. F-117을 격추한 것은 단거리 대공미사일인 SA-3 미사일로, 이것의 파편은 현재 F-117 파편과 함께 세르비아 측에서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또한 당시 다른 [[NATO]] 연합군 전투기도 그랬고, 이 F-117도 그랬고 15000ft(4572m)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미 최소 1발 이상의 2000 파운드 폭탄을 투하하는 임무를 마치고 귀환 중이었기 때문에, 폭탄창이 열려서 미사일에 얻어맞았던 것도 아니었다. 현재까지 확실하게 알려진 격추 과정은 F-117이 SA-3에 의해 격추되었다는 것이다. 이 미사일은 단거리 미사일이므로(최대 사거리 20km) 세르비아가 F-117을 먼거리에서 정확히 확인한 다음 노리고 쐈을 가능성은 적다. 다만 전쟁이 끝난 뒤인 2005년에 USA Today에서 당시 F-117을 격추시킨 세르비아 측 방공포대의 지휘관과 인터뷰를 한 일이 있었다. 군사기밀이므로 정확히 어떻게 F-117을 격추시켰는지는 설명하지 않았으나,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언급하였다. * NATO 연합군은 [[통신보안]]을 전혀 안 지켰으며 교신내용도 암호화하지 않아서 쉽게 감청가능. 심지어 폭격 경로까지 추적 가능. * NATO 연합군의 전파역추적 및 대레이다미사일([[AGM-88]] HARM 등)을 피하기 위하여 무선기 및 전파를 사용하지 않고 지상통신선을 사용. 부대간 통신을 위하여 도보나 차량을 이용하여 [[연락병]]을 보내기도 함.[* 이는 부대 운용 및 효율이 막장이 되는 셈이지만, 최소한 HARM에 얻어 맞진 않게 되니⋯.] * 적 전투기에 대해 공격 시 최대한 전투기가 미사일 포대에 접근하였을 때 기습적으로 레이더를 사용하여 근거리에서 공격하였다. 레이더 사용시간을 줄여서 적 전투기가 회피기동할 틈을 주지 않는 한편, 다른 NATO연합군 전투기가 레이더 위치를 역추적하여 반격할 틈을 주지 않는다.[* 언뜻 그럴싸 해 보이지만... 애당초 레이더를 켜야만 '적 전투기가 가까이 왔는지 멀리 왔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세르비아 민병대는 여기저기 보초를 세워 놓고 전투기 소리를 듣거나 어딘가 폭격 받았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지휘부로 보고하였다고 한다.] 더불어 현재 알려진 바로는, 유고에서 [[코소보 전쟁]] 직전에 개량형 SA-3을 직접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SA-3는 레이더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여 별도의 TV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SA-3는 지상 관제소에서 적기를 추적하며 미사일에게 '어디로 날아가라'라고 알려주는 지령유도 방식이기 때문에 미사일 자체에는 어차피 탐색기가 붙어있지 않고, 지상 관제소만 레이더나 혹은 탐지거리는 더 짧지만 스텔스기 상대로나 전파방해 환경하에서도 쓸 수 있는 TV카메라로 적기를 추적 및 요격할 수 있는 것이다(이는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전파방해에 의해 SA-2가 종종 먹통이 되면서 SA-2 부터 SA-6 까지 대부분의 러시아 지대공 미사일에 붙어있는 기능). 세르비아는 이 TV카메라를 야간에도 사용할 수 있는 열영상카메라로 바꾸는 한편, 더 정확히 추적이 가능하도록 레이저거리 측정기를 장착하였고, 코소보 전쟁 직전에 이러한 업그레이드 키트를 해외수출 시도하기도 했다.[* 코소보 전쟁 이후에는 러시아도 비슷한 방식의 업그레이드 키트를 해외에 수출했다.] 즉 F-117은 먼 거리에서 레이더에 의해 추적당하다가 격추당한 것이 아니라, 하필 SA-3 방공포대 바로 옆을 지나가다가[* 실제로 미사일 포대에서 불과 13㎞ 떨어진 지점에서 격추당했다. 애당초 SA-3의 최대사거리가 20㎞ 남짓이다.] 이 열영상카메라를 이용한 공격에 기습적으로 당한 것이다. 한편 최근에는 이 열영상카메라가 아니라 [[UHF]] 대역의 레이더를 사용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SA-3의 조기경보용 레이더인 UHF 안테나는 본래 150~200㎞가 넘는 탐지거리를 갖는다. 그런데 이 레이더가 대략 20~25㎞ 이내로 접근한 F-117을 탐지해낼 수 있다는 것. 이는 F-117이 기본적으로 전투기나 지대공 미사일의 추적용 레이더 전파 파장에 대하여 [[스텔스]]성을 갖도록 설계되었기에 [[UHF]]같은 낮은 주파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스텔스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200㎞급 레이더로 25㎞ 밖에서 탐지한다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어쨌거나 이 정도 거리면 SA-3의 최대사거리 수준이므로 이 레이더를 이용, 근처에 비행중인 F-117에다가 미사일 유도용 전파를 최대한 집중조사하여 미사일을 유도, 격추시켰다는 이야기가 있다. 함부로 레이더를 켠다면 그 이전에 [[RWR]]로 눈치를 채겠지만 전투기에 탑재되는 RWR 장비는 크기 등의 한계상 엄청나게 넓은 [[전파]]대역을 모두 커버할 수 없으므로 [[UHF]] 같은 낮은 주파수까지는 탐지해낼 수 없다. 그렇기에 보통 이러한 조기경보용 레이더의 존재를 [[A-6|EA-6]] 같은 [[전자전기]]가 미리 파악해야 하는데 그날 따라 전자전 지원을 해줘야 할 [[EA-6]]가 이륙하지 않았으며, 세르비아측은 [[NATO]]연합군 기지 근처에 심어둔 첩보원들을 통해 그시각 EA-6가 활동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 F-117을 탐지한 수단이 열영상 카메라건, UHF 레이더건 문제는 SA-3의 사거리는 20㎞ 남짓이므로 어쨌거나 F-117은 이 미사일의 사거리 안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 SA-3는 왜 하필 F-117이 지나가는 경로 근처에 있었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추측이 존재한다. 먼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르비아 측은 NATO 연합군의 무선을 감청하면서 비행경로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사일 포대가 순식간에 여기서 저기로 이동할 수는 없으므로 무선을 듣고 비행경로를 파악한 즉시 그쪽으로 미사일들을 옮겼을 가능성은 적다. 문제는 NATO 연합이 매번 비슷한 비행경로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즉 한 번 비행경로를 파악하면 그 뒤로는 그 근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적기를 요격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이 부분은 추측이므로 정말 SA-3를 '일부러' F-117이 다닐 길목에 배치해둔 것인지, 아니면 '운 좋게' 배치한 것인지는 현재로서도 알 수 없다. F-117은 이 사건으로 스타일을 완전히 구겼으며 세르비아 측은 나름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이때는 전쟁이 시작된 지 3일도 안 됐을 때 일어났던 일로, 그 뒤 나토군이 전략을 변경하자 대부분의 대공포들은 적기 추적을 위한 레이더를 켜지도 못하고, 서로 무선통신도 할 수 없었다. 또 미사일을 발사하고도 NATO 연합군에 반격받을까봐 아주 짧은 시간만 레이더를 켤 수밖에 없었으므로 미사일 명중률은 기대할 수 없었다. 이렇게 열흘 동안 먼지나게 얻어맞으면서 방공망은 [[그냥 시체]] 신세가 됐고, 연합군은 걸프전 때보다 세 배나 더 공격받았지만 손실한 비행기는 [[F-16]] 한 대와 F-117 한 대가 전부였다.[* 걸프전에서는 이라크의 대공망에 당대 최신예기였던 F-15E나, 토네이도 등이 격추당했었다.] 한가지 흠이 있었다면 이 미사일 위협을 뚫고 NATO 연합이 폭격을 가한 목표물 중 상당수가 '낚시용 모형'들이었다는 것. F-117 조종사 대럴 패트릭 젤코 중령은 수시간 동안 숨어다니다가 연합군의 구조팀에 의해 구조되었으며[* 한편 비슷한 시기 격추된 F-16의 조종사는 금방 구조되었는데, 해당 조종사 [[데이비드 골드파인]]은 후에 '''공군참모총장'''까지 오르게 된다.], 곧 당시 NATO 연합군의 기지였던 이탈리아로 후송되었다. 당시 유고군은 격추된 잔해를 민간에 공개하는 위엄을 보였다. 이때 러시아 측 관계자들이 비밀리에 다녀가 정보를 입수했다는 첩보가 있으며 F-117의 특성상[* 비용 절감을 위해 전용 부품을 최대한 줄이고 다른 기종에서 사용 중인 부품을 많이 썼다. 엔진과 레이더는 물론 조종석까지 타 기종과 물건을 쓸 정도.] [[엔진]]이나 전자장비 등은 별볼일 없었기 때문에 유고연방 역시 몇몇 주요 부품만 옮기고 (당시 유고연방은 소련이나 미국과 모두 사이가 안좋았기 때문에 자급을 위해 항공산업이 꽤 발달되어 있었고, 한국보다도 훨씬 앞서 있었다. 1950년대에 이미 독자적인 전투기를 개발했을 정도.) 나머지는 그냥 내버려뒀다. 미군은 F-117의 잔해에 대한 추가폭격으로 잔해를 완전히 소거해버리고자 했지만, NATO 연합군 사령부의 미온적인 협조 때문에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고, 결국 제법 형태가 남은 상태의 잔해를 세르비아 측이 수거해 갈 수 있었다. 이 잔해는 각종 F-117 대응법 연구에 쓰인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현재는 세르비아의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그러나 격추 후에도 NATO군의 요청에 의해 더 많은 F-117이 추가 투입되었다. 그리고 코소보 전쟁 동안 F-117은 더 이상 공격당하지 않았는데, 그 뒤로는 비행경로를 수시로 바꾸고 하는 등 노력을 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후 퇴역하는 그날까지 더 이상 격추당한 F-117은 없었다. 사령부의 실책으로 1대가 격추당했다고는 해도 바꿔 말하면 1989년부터 다양한 전투에, 그것도 위험한 공격 임무에 수시로 투입되면서도 '''단 한 대밖에''' 격추당하지 않았다는 점은 대단한 일이다. 한편 전쟁이 끝난 뒤, 젤코 중령은 자신을 격추시킨 지휘관과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http://www.bbc.com/news/world-europe-20209770|Foes now friends: US stealth pilot and the Serb who shot him down(BBC 기사)]]] 이 격추사건 때문에, 넷상에서는 엄청난 밈이 되었다. 특히나 보스니아 전쟁 당시 NATO의 공습들을 비판하는 노래인 [[https://youtu.be/esMtF333cgQ|Crni Bombarder]]을 부른 로도유브 '로키' 부로비치(Rodoljub 'Roki' Vulović)와 많이 엮인다.[* 이런식으로 [[파일:ucbgazn39wj11.jpg]]] 작전 당시 [[항공 스포팅|스포터]]들이 F-117과 EA-6B등 레어한 NATO 항공기들이 출격하자 이를 촬영하고 날짜나 출격 소티등이 같이 기재되면서 세르비아의 F-117 격추에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