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GIGN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28154164_153330951996202_8476682944423919616_n.jpg|width=100%]]||[[파일:28154164_153330951996202_84766829444239196.jpg|width=100%]]|| || [[1974년]] [[3월 1일]], 최초 창설 당시의 GIGN1 대원들의 모습 || [[2018년]] 3월 1일, 창설 44주년을 기념해 [[에어 프랑스]] [[A380]] 여객기를 배경으로 촬영된 현대의 GIGN대원들의 모습 || [[1972년]] [[서독]]에서 발생한 [[뮌헨 올림픽 참사]]는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을 납치, 살해한 사건으로 프랑스에게도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이 사건에 앞서 프랑스에서도 2건의 인질사태가 발생했다. [[1969년]]에 발생한 세스타 인질극에서는 정신착란증세를 보인 아버지가 국가 헌병들이 집안으로 진입하는 순간에 자신의 2명의 아이를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1971년에 발생한 뷔페 본탄 사건에서도 헌병대는 국가경찰소속의 기동대 [[프랑스 국가경찰#s-2|CRS]]와 공동으로 인질구출작전을 벌였지만 역시 인질살해를 막지는 못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의 교훈을 바탕으로 [[1971년]] 무렵부터 헌병대은 대테러작전 및 인질구출작전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부대의 편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1973년]] [[11월 3일]] 메종 알 포르에서 지역권특수개입팀(ECRI, Équipe Commando Régionale d'Intervention)이 창설되어서 실험적인 운용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해인 1974년 3월 1일 ECRI를 강화개편하여 부대명이 GIGN1이 되었으며, 같은 해 프랑스 남부 몽드마르상에서 헌병기동대 공수중대를 기반으로 GIGN4가 창설되었다. [[1976년]]에는 비용과 효율성을 위해 2개의 GIGN팀이 통합되었으며 [[1982년]]에는 현 주둔지인 [[베르사유]] 사토리에 주둔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1980년대]]에는 헌병대 내에서 GIGN를 모델로 하는 여러 부대가 창설되었는데 [[1982년]]에는 [[프랑스 대통령|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한 GSPR파견대(le détachement GSPR)가 창설되었고, [[1984년]]에는 GIGN의 작전을 지원하는 임무와 장거리 정찰 및 요인경호작전을 위한 부대인 EPIGN(Escadron Parachutiste d'Intervention de la Gendarmerie Nationale, 헌병대 공수개입중대)이 사토리에서 창설되었으며 [[1986년]]에는 GIGN과 EPIGN을 통합지휘하는 헌병대 개입보안단(GSIGN, Groupement de sécurité et d'intervention de la Gendarmerie nationale)이 창설되었다. 이후 [[2007년]] GSPR과 EPIGN이 GIGN산하로 통합되면서 부대규모가 2배 가까이 커져 400명의 인원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GSIGN는 해체되어 GIGN은 헌병총국의 직접 지휘 아래 활동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