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HLKZ-TV (문단 편집) === 개국 ===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은 1956년 5월 12일 선보인 KORCAD(Korean RCA Distributor)의 HLKZ-TV다. 이 텔레비전 방송은 NTSC식 방식(National Television System Committee method)을 택했으며, 세계에서는 15번째이며, 아시아에서 4번째로 개국한 것이다. 이 방송사는 속칭 '종로방송국'으로 불렸다. 영상출력 0.1㎾, 채널 9번이었다. 스튜디오는 50평짜리 단 1개였으며, RCA제(製) '이미지 · 올시콘' 카메라 2대, '비디콘' 카메라 1대, 슬라이드 영사기와 16mm영사기 각각 1대, 송신시설이 있었다. 실내조명은 40W 형광등 250개와 백열구 500W, 1000W 대형 전구 총 30개였으며, 동일빌딩 옥상에 높이 30미터의 TV 송신 안테나를 세웠다. 1956년 6월 1일부터 정규방송이 시작되었다. 격일 방송으로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2시간씩 방송되었다. 11월 1일부터 금요일만 빼고 매일 2시간씩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시청시간대는 프라임 타임인 저녁 8시에서 10시까지였다. 하지만 TV 방송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노정팔, 1995). HLKZ-TV의 가시청 거리는 반경 30킬로미터밖에 안 되었다. 개국을 앞두고 가장 큰 고민거리는 TV 수상기를 수입해 팔아야 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TV 수상기 사치품으로 분류, 180%의 높은 통관세를 부과한 고가 상품으로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었다. 24인치의 가장 큰 수상기는 47만 환, 21인치는 43만 환, 17인치는 39만 환, 14인치가 34만 환, 가장 작은 8.5인치가 19만 환이었는데, 당시 쌀 한 가마니에 18,000환 정도였고 공무원 급여가 월 2만환대였고, 일반인들은 그 보다 훨씬 못받았던 시절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터무니없는 사치품에 가까웠다. 그래서 고심 끝에 서울 시내에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즉 [[사직공원(서울)|사직공원]], [[파고다공원]], [[명동]] 입구, [[서울역]] 광장, 광화문네거리, [[동대문운동장]] 등 총 20여 곳에 24인치 대형 TV 수상기를 설치해 활동사진을 겸한 무료 방송을 보여 주었다(유병은, 1988). 당시 TV는 오늘날과는 달리 공용매체였다. 따라서 이른바 시청률 계산도 비교적 간편했다. 당시 시청률 조사는 시내 주요 번화가 40여 개 지점에 수상기를 설치한 후, 여기 모여드는 군중의 규모를 보고 가늠하는 수준이었다(강태영·윤태진, 2002).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드라마 PD로 개국을 지휘한 [[최창봉]]은 “매일 밤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도중에도 부조정실 창 너머로 넘겨다보이는 종각 옆 수상기 앞에 모여든 시민들의 머릿수를 헤아리며 많이 모였을 땐 신나게, 적게 모였을 땐 맥이 풀린 채 방송을 진행했다.”라고 말하며 당시 TV방송의 환경을 이야기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