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J-10 (문단 편집) == 개발사 == 중국은 1960년대 초반까지 당시 최신예기였던 [[MiG-21]]을 소련으로부터 라이센스 생산하며 세계 공군의 흐름에 따라가는 편이었다. 1960년대 중반, 소련이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 공군이 [[F-4]]와 마주쳐본 전훈으로 대형전투기를 개발한다는 정보를 포착한 중국도 마찬가지로 3세대 대형전투기를 기획하게 된다. 월남전의 소련제 전투기들은 작은 체급을 이용한 운동성으로 미군의 대형 전투기들을 골탕먹이기는 했으나, 작은 항속거리와 무장 탑재량이 적어서 수세적인 입장에서만 운용되었다. 소련은 이후 [[MiG-29]]와 [[Su-27]]로 이어지는 대형전투기를 개발했고, 중국도 이를 포착하여 이에 대응하는 전투기를 개발하려 했다. 중국 공군이 내건 조건은 2만미터 상공에서 마하 2.4의 속력을 내며 항속거리가 3000km이상, 전투반경 600km이상, 그리고 고도 상승률도 180~200m/sec 을 가진 쌍발 전투기였다. 이를 위해 두 회사가 경쟁했는데 하나는 [[선양시]]에 있는 601연구소(현재의 선양항공)이 맡은 MiG-21의 쌍발화였고 , 이는 [[J-8]]로 구현된다. 또하나는 완전히 새로운 전투기를 개발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청두시]]에 새로 창립된 611연구소(현재 청두항공) 가 맡았다. 이것이 바로 J-9프로젝트였다. (그리고 이 연구소들의 라이벌 구도는 현재까지 이어진다. 청두항공이 중국 최초의 스텔스기인 [[J-20]]을 개발하자, 선양항공이 [[FC-31]]을 독자 개발하여 군수뇌부에 자신들의 비행기를 채택해달라고 청원하고 있다 ) 프로젝트 책임자는 쑹원충(宋文骢:1930-2016)으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공군에 입대하여 공군제2항공공학원에서 항공공학을 배운 군출신 연구원이었다. 하지만 1966년부터 [[문화대혁명]]이 벌어져서 신형전투기 개발이 차질이 벌어졌다. J-8, J-9프로젝트는 계속 늦어지게 된다. 특히 J-9는 그동안 중국이 제작해왔던 미그계열 전투기들과는 새로운 설계로, 이것들은 노즈콘이 없이 인테이크가 바로 기수에 달려 있었지만, 611연구소는 [[사브 37 비겐]]을 참조하여 인테이크가 기체측면으로 가면서 델타익과 카나드 날개를 단 시제기를 내어 놓았다. 1975년 시제기 1호가 제작되었다. MiG-21을 베이스로 한 [[J-8]]은 그나마 순조로와서 1969년 시제기 1호가 나온 반면, J-9는 장착될 WS-6 엔진이 양산불가 판정을 받아서 프로젝트는 계속해서 연기되었다. 1975년 1호기가 나왔으나, 나라 사정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양산 계획은 계속 늦어졌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이후인 1980년 정권을 잡은 [[덩샤오핑]]은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J-9 프로젝트를 취소했다. 문화대혁명 때문에 중국은 세계 최빈국이 되었고, 1980년대에는 두 기종의 신형 전투기 개발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파일:j912.jpg|width=500]] 청두항공사가 개발한 J-7 (위쪽) 옆에 주기되어 있는 J-9 1호기 J-9는 이렇게 사장되었으나, 중국이 사실상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새로 제작해보는 신형 전투기[* 중국 최초의 독자모델 제트기는 1958년 나온 JJ-1이지만, 이것은 결함이 많아서 달랑 3대 제작되고 끝났다. 그리고 JJ-1은 전투기가 아니라 훈련기였다.]였고, 이후 12000번의 풍동시험과 수백번의 구조 시험, 그리고 수백번의 모델링, 이런 시험에 사용될 여러 계측장비를 자체개발했다. 이는 몇년 후 개발이 시작되는 J-10 프로젝트에 그대로 사용되었다. 몇년 후인 1986년 중국이 문화대혁명의 수렁에서 어느정도 정신을 차리게 되자, 중국군은 차세대기 도입을 다시 모색했다. 이번에는 쌍발 대형 전투기가 아니라 MiG-21의 면허생산형인 [[J-7]]을 대체할 단발 전투기로 미국의 [[F-16]]을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이전에 [[J-8]]를 채택시킨 선양항공사는 공군 수뇌부에 [[https://againstallodds.fandom.com/wiki/Shenyang_J-13|J-13]]을 제안했으나, 청두항공은 J-10을 내걸고 절치부심하여 최종적으로는 청두항공이 차세대기 제작사로 선정되었다. 선양항공은 독자제작기 대신 러시아의 [[Su-27]]의 면허생산 사업 [[J-11]]을 맡게 된다. 쑹원충은 다시 프로젝트 책임자가 되었고, J-9 제작당시 축적된 데이터와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인재들이 배워온 CAD/CAM 기술을 이용해 J-10을 개발한다.1994년 설계가 완성되고 1997년 시제기 1호가 제작되었으며 1998년 초도비행을 시작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