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KEB외환은행 (문단 편집) == 역사 == 1967년 한국외환은행법 제정에 따라 [[한국은행]] 외환부였던 조직이 독립해서 외국환업무와 그에 따른 자산/부채를 승계해 국책은행으로 설립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외국환 업무를 이 은행으로 집중시켜서 그 때부터 쌓여 온 네트워크와 노하우 덕분에 많은 기업들이 외국환 업무만큼은 외환은행에 전담시키는 경우가 많았으며 국내은행과 해외은행의 자금 정산도 주로 외환은행이 전담했다. 1972년 국내 최초로 온라인 보통예금 취급을 개시했고 1975년 [[서독]] 코메르츠방크 및 [[영국]] HSBC와 합작해 한외종합금융을 세웠다. 1977년 국내 은행 중 유일하게 사우디중앙은행으로부터 공사발주처 직접보증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1978년 국내 최초로 [[비자카드]]를 발행하면서 은행 [[신용카드]]의 새 장을 열었고 더불어 자행 명의로 [[비자카드|VISA]] [[수표#s-3|여행자수표]]까지 발행했다.[* 아멕스도 여행자 수표를 발행하지 않게 되어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여행자 수표를 볼 수 없게 되었다.] 특히 비자카드는 1980년대 내내 외환은행의 독점-독주 체제였으며 이는 1990년 [[국민카드]], 1991년 [[비씨카드]]가 진출하며 깨지게 된다. 한편으로는 외환전문 은행답게 [[유로]]로 전환한 옛 [[유럽]] 국가들의 화폐나 구 [[위안]]화권같은 것들을 대신 추심해 주기도 한다. 한때 광고에 나와서 유명했던 [[위조지폐]] 감별 전문가 서태석 씨가 근무했던 곳이 이 은행이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및 [[1988 서울 올림픽]] 공인은행으로 지정된 바 있었다. 1988년 [[신용카드]] 부문을 분리해 환은신용카드를 출범시킨 뒤 1989년 4월 환은리스를 세우고 12월 30일 한국외환은행법이 폐지되면서 [[민영화]]되었다. 1992년 [[한국투자신탁]]으로부터 한국증권투자자문을 인수하고 1994년 4월 [[대한민국]]에서 2번째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증권거래소]]에 [[직상장]]되었으며 1996년 [[미국]] 트래블러스 그룹 계열 스미스바니와 손잡아 환은스미스바니증권을, 1997년 환은선물을 각각 세우며 사세 확장을 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망하기 직전까지 갔으나 1998년 한외종금 합병 뒤 [[독일]] [[코메르츠방크]]로부터 외자를 유치해서 간신히 퇴출을 면했다.[* 당시 코메르츠방크가 들고 들어온 돈으로는 언발에 오줌누기였다는 평.] 근데 어차피 외자 유치로 간신히 퇴출 위기를 면한 것이었으니 당연히 경영 악화가 지속되어[* 사실 계속 금융경기가 좋았으면 살아남을 수 있었겠지만, [[2002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 때 부도 직전까지 몰린 외환카드를 구제하기 위해 합병하면서 안 그래도 부실하던 자금 기반이 한방에 훅 가버렸다.] 1999년 자회사 환은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 경영권을 넘기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나 결국 2003년 [[론스타]]에 매각된 후 2004년 자회사 외환신용카드를 합병했고 외환코메르쯔투자신탁운용을 랜드마크투자신탁운용에 팔았다. 2006년 독일 코메르츠방크가 주식을 팔았다. 그러나 론스타는 [[사모 펀드]]이기 때문에, 이후로 [[먹튀]] 논란이 잦아들지 않았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각할 때까지 수익률이 약 19%, 금액으로는 4조원 정도였기에 먹튀 논란이 나왔다. 매각 과정 자체도 험난했는데 2006년 주식매매계약까지 체결했던 [[KB국민은행]]은 [[론스타 게이트]][* 외환카드 헐값매각 의혹이 그 때 터졌다. [[노동조합]]의 반대도 만만찮았지만, 론스타 게이트 때문에 매각 계획이 지지부진해지자 론스타가 매각 계약을 파기해 버렸다.] 때문에 판이 깨졌고 2008년 [[HSBC]] 또한 [[금융감독원]]이 태클을 걸어서 매각이 지지부진해진 때[* 론스타 게이트 등으로 반외자 정서가 팽배해졌고, 그런 상황에서 정부와 [[금융위원회]]는 시중 은행을 또 다시 외국 자본에 넘기는 것을 탐탁치 않아했다.] [[대침체]]가 터짐에 따라 매각이 무산되었다. 2010년 11월 [[하나금융지주]]와 인수 MOU를 체결하였다는 보도가 나와서 하나은행이 낙점되었다. 노조의 결사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나금융지주가 성사 단계까지 왔었는데 2003년 론스타가 외환카드를 외환은행과 합병시킬 당시 외환은행 주가를 조작했었다는 의혹에 대해 재판이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매각 방식에 대한 논란이 잦아들지 않았다.[* 유죄 판결이 나옴에 따라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에 문제가 생겨 10%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 41%를 강제로 매각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대주주 적격성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금융지주로의 매각이 원천무효되고 [[국민주]] 형태 등으로 지분 41%를 강제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해당 사건은 2019년에 영화 <[[블랙머니(영화)|블랙머니]]>로 각색되었다.] 하지만 결국 2012년 1월 27일 하나금융지주에 인수되었는데 하나금융지주에서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간에 선의의 경쟁과 연계를 통한 시너지를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2013년 추가 지분 매입으로 하나금융지주의 보유 지분이 60%가 넘어선 시점에 [[주식]] 교환의 형태로 외환은행은 하나금융지주의 100% 완전자회사가 되었다. 이에 따라 외환은행은 2013년 4월 26일 [[상장폐지]]가 되어 독립경영 여부가 불확실해졌으나 하나금융지주 측에서는 인수 당시 체결한 노사 합의서를 통해 5년간은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하나금융지주는 인수 2년여 만에 조기 합병을 시도했고 노조는 들고 일어났는데 직원들 실명이 일일이 박힌 하나은행과의 조기 합병에 반대하는 [[광고]]를 낸 것이 그 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금융지주는 합병을 강행하려 했으며 노조가 제기한 합병 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을 2015년 2월 법원이 인용함으로써 합병 절차가 스톱되었다. 2015년 8월 5일 통합추진위원회가 통합 은행명을 KEB하나은행으로 확정했고 2015년 9월 1일 공식 합병되었다. 통합 은행의 본점도 외환은행의 을지로2가 본점으로 결정되었으며 외환전문은행 및 신용카드 최초 도입 은행의 상징성을 위해 등기부 본사와 존속법인은 외환은행이 계승했다. 따라서 기존 하나은행의 존속법인이었던 [[서울은행]]은 완전히 사라지고 [[한일은행]]같이 [[비씨카드]] 회원사 자격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게 됐다. 2016년 6월 전산상으로만 살아있던 외환은행이 사라지고 KEB하나은행으로 재편되어 49년의 역사를 마감하였다. 외환은행 노조는 [[한국노총]] [[금융노조]] 소속이었는데 2016년 9월 하나은행 노조와 통합이 결의되었다. 2020년 2월 KEB하나은행에서 KEB가 빠져 [[하나은행]]이 되면서 한국외환은행의 흔적은 간판, 통장 등에서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