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SX (문단 편집) === 소프트웨어 === MSX는 기본적으로 MSX [[BASIC]]을 내장하고 있으며, 운영 체제로 MSX-DOS가 있었고 워드 프로세서, PC통신, 그래픽 편집, 프로그래밍 등 일반 PC로 하는 일은 거의 다 할 수 있었던 명실상부한 개인용 컴퓨터지만 확장 카트리지 슬롯에 '''롬 카트리지를 꽂을 수 있었고''' 결정적으로 그 특성을 활용한 '''[[재믹스]]'''라는 한 시대를 풍미한 MSX 호환 게임기가 나왔던 탓에 당대에는 반쯤은 게임기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로 게임 성능이나 소프트웨어의 다양성은 당대 한국 컴퓨터 기종 중에서 가장 앞섰다. 사실 현재의 PC들도 이걸 가지고 게임 밖에 안하는 사람들한테는 말 그대로 게임기이니 이러한 맥락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애플 II는 '개인이 소지하고 사용하는 컴퓨터'라는 관점에서 시작했지만 MSX는 가전 제품의 연장선 상으로 출발했다. 실제로 MSX 규격에 참가했던 업체들은 기성 컴퓨터 기업들이 아니라 [[소니]], [[산요]], [[마쓰시타]]와 같은 가전 기업들이었다. 애플 II의 개방성과 조잡한(...) 기본 성능은 많은 확장 카드와 소프트웨어 개발로 이어졌지만, MSX는 애플 II와 같은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당대에 애플 수준에 이른 PC가 있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미국에서 쏟아진 다양한 애플 II 실용 소프트웨어는 한국에도 유입되었고 한국 개발자들에게도 이러한 성향은 영향을 미쳐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를 쓴 가정 신문 출판 소프트웨어 '독립신문'이나 워드 프로세서 '중앙한글' 등이 나와 유저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MSX의 실용 소프트웨어는 교육용 컴퓨터 선정에 대비한 CAI/CAE 소프트웨어 개발 정도에 쓰였고, 일찍 보급된 학교에서는 성적 처리에 활용한 정도였다. 물론 소프트웨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애플 II]]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있을 만큼은 있었지만 한국 MSX 환경이 이를 뒷받침해 주지 못했다는 관점이 옳을 듯 싶다.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에는 '디스크 BASIC'이라 부르는 BASIC 인터프리터가 내장되어 있었고 공식 운영 체제로 '''MSX-DOS'''를 사용할 수도 있었을 뿐더러 꽤 많은 소프트웨어가 나와 있었다. MSX-DOS는 나중에 아스키에서 MSX-DOS2까지 나왔고 툴 디스크까지 하면 MS-DOS와 비슷했지만, MSX가 게임용으로 주로 쓰였던 데다 정품 패키지에 세트로 들어있는 확장 카트리지가 필수적이어서 그리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 MSX-DOS용으로는 MSX 플랜([[Microsoft Excel|멀티플랜]]의 MSX 이식 버전) 같은 [[스프레드시트]]나 dBase II 같은 [[DBMS]], M80 어셈블러[*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인텔 8080용 어셈블러. 원래 [[CP/M]]에서 쓰던 건데 MSX-DOS가 CP/M과의 호환성이 있는 관계로 MSX에서도 많이 쓰였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별도의 에디터가 필요없이 MSX BASIC에서 주석문 형태로 코드를 작성하고 어셈블러를 할 수 있었던 MAD80(Monitor Assembler Disassembler의 두문자를 딴 이름이다. 당시 조선대학생이었던 유동균씨가 제작했다.)을 더 많이 사용했다.] 볼랜드의 터보파스칼 3.0, MSX-C, PROLOG, FORTRAN, COBOL 같은 다양한 언어의 컴파일러 등 [[CP/M]]의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MSX로 이식했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16비트 컴퓨터로 먼저 접한 사람이 대다수이며 나중에 MSX로 이런 소프트웨어들이 다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는 왕년의 MSX 유저도 종종 있다. 그러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본체보다 비싼 가격 탓에 한국에서는 보급률 자체가 낮아 MSX-DOS 환경은 그다지 사용되지 않았다. '''3.5인치 일체형 2개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39만 8천원으로 IQ-2000 본체 가격 34만 5천원보다 비쌌다. 심지어 IQ-1000 시판 시기에 나온 5.25인치 2D만 지원하는 싱글 외장형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는 49만 9천원, 더블 외장형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는 무려 79만 9천원이었다!'''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너무 비싸서 데이터 레코더, 퀵 디스크 드라이브 같은 저속 미디어를 울며 겨자 먹기로 사용하거나, 심지어 종이에 출력한 기계어를 한 땀 한 땀 직접 입력하는 눈물겨운 노가다를 하는 유저들도 많았다. 애플 II의 경우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가격이 MSX의 그것보다 훨씬 쌌기 때문에 비교적 많이 보급되었다. 원인은 MSX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는 양면을 읽을 수 있도록 헤드를 하나만 구성한 것과 다르게 애플 II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는 좀 더 저렴하게 헤드를 하나만 구성해 단면만 읽을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MSX의 업무용 환경의 한계점은 나름대로 극복하려는 시도도 없지는 않았으나 결국 시장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못했다. 사양 자체가 업무용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는데, 일단 한글 처리에 약점이 많았다. 우선 해상도가 낮다 보니 텍스트 화면에서 뿌려줄 수 있는 한글이 16×12~20×12문자 정도. 한글은 세로로 8~12×16 픽셀을 점유하다보니 4~6×8 픽셀을 사용하는 알파벳에 비해 화면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넓을 수밖에 없고 표시할 수 있는 글씨 수가 적었다. 이 점은 애플 II도 마찬가지긴 했다. 텍스트 모드에서의 한글 처리는 빠르다고는 할 수 없어도 그나마 봐줄 만은 했는데 글꼴 모양은 그리 보기 좋지 않았다[* 어찌 보면 오늘날의 탈네모꼴 글꼴과 비슷한 자형인데, 의도적으로 이렇게 만든게 아니라 기술적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자형이다.]. IQ-2000/X-II에서는 높은 해상도에 비교적 미려한 글꼴을 보여주는 스크린 9 모드가 추가되었으나 보기에는 텍스트 모드처럼 보이지만 대우전자가 스크린 6 고해상도 그래픽 모드에 인터레이스 모드를 조합하여 독자적으로 만든 거라 당대의 16비트 PC와 비슷한 80×24문자 표시를 구현할 수는 있었으나 그것을 대가로 매우 느린 속도를 감수해야 했다.[* 여담이지만 대우전자 측과 어떻게 이야기가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MSX2+ 규격에서는 호환성을 위해서 대우의 독자적인 확장 기능이었던 SCREEN 9 부분을 비워놨다. MSX2+의 추가 스크린 모드는 10, 11, 12이며 MSX BASIC에서 SCREEN 9를 쳐보면 그냥 에러 처리가 된다.] 정말로 '''토나올 정도로''' 느린데다 인터레이스 모드의 특성상 화면이 빠르게 깜빡거리는 것은 덤. 이렇다 보니 대우에서 만든 한글 워드 프로세서에서도 이 모드를 사용하지 않고 스크린 7 그래픽 모드(512×212/16컬러)에서 40x12행으로 한글 바이오스를 통해 한글을 그려서 출력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스크린 9의 느린 속도보다는 나았지만 이것도 원활하게 문서를 작성하기엔 조금 느렸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해주는 SAS 한글 카드도 나오긴 했지만 보급률은 높지 않았다. 나중에 정내권씨의 한글 램 상주 소프트웨어가 나왔는데 엄청 빨라서 당시 16비트 IBM PC의 한글 출력 속도에 비견할 정도였다. 느린 걸로 악명 높은 세로 스크롤도 VDP를 사용한 하드웨어 방식[* 기존 방식이 스크롤할 부분을 모두 비디오램을 이동시키는 것인데 반해, VDP의 기능을 사용하면 고속 영역 복사가 되고, 커서가 화면 맨 아래로 내려가거나 맨 위로 올라간 뒤의 화면 전체 스크롤 업, 다운은 그냥 화면 자체를 롤 업, 다운하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으로 개선해 매우 빨라졌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정부가 IBM PC 호환 기종 컴퓨터 보급으로 길을 정한 이후라 대세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MSX용 프린터와 모뎀, 마우스, 플로터 등도 나왔고 나중에는 교육용으로 로고 언어를 조합해 간단한 프로그래밍으로 동작시키는 하드웨어 키트도 나왔지만 무척 비쌌기 때문에, 사용자 대부분은 컴퓨터 기본으로 포함된 조이스틱과 카세트테이프 데이터 레코더, 그리고 롬 카트리지로 판매한 학습용, 게임용, 시스템 유틸리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사용하는 선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겨우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추가하는 정도였다. 덕분에 이런 하드웨어를 사용하는 BBS나 PC 통신, 개인 출판 소프트웨어와 워드 프로세서, 그래픽 프로그램은 소개되어도 인기를 끌지 못했다. 소프트웨어 유통 상의 문제와 함께 다양한 주변 기기가 비쌌던 이유로 MSX의 용도를 게임기 내지 BASIC 언어 교육용으로 한정시켰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MSX는 반쯤 게임기 취급을 당했다. 게임 성능이 뛰어났던 기종이니만큼 MSX로 국산 게임을 만들려는 시도도 당연히 있었다. 이러한 시도는 1987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에는 변변한 게임 회사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던 시대여서 프로그래밍에 재능이 있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혼자, 혹은 두세 명이 모여 게임을 만들고 이걸 단골 소프트웨어 가게[* 당시에는 정품 소프트웨어 유통망이 없다시피...가 아니라 그냥 없어서 지역마다 있는 소프트웨어 가게에서 대량의 소프트웨어를 구비해 두고 이를 일정 액수를 받고 플로피 디스크에 복사를 해 주는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었다. --[[복돌]]문화의 출발점--]에 가져가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퍼블리싱...같은 오늘날로 치면 [[인디게임]]스러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대에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MSX로 자체 제작 게임을 가장 많이 내놓은 곳은 역시 [[재미나]]였고 FA 소프트, 으뜸 소프트, 프로 소프트, 토피아 등 MSX 게임을 --복돌이-- 유통했던 업체들은 1988~1989년쯤 되면 자기네 이름 달고 나오는 게임이 한두 개 씩은 있었다. [[재미나]]의 작품에 대해서는 문서를 참고하기 바라며, 그 밖에 유명한 작품은 토피아의 '대마성', 으뜸 소프트의 '악마지대', 미키소프트의 '[[꾀돌이(게임)]]' 등이 있었으나 어느 것이나 밀려 들어오는 일본제 게임에 다 묻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