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iG-21 (문단 편집) === [[중동전쟁]] === 1967년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 앞서 전초전 격으로 발생한 4월 7일 국지전에서 시리아군의 MiG-21은 무려 6대나 이스라엘군의 미라지III에 격추되며 완전히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단 하루만에 시리아군이 출격시킨 미그기의 상당수가 격추되어 버린 것이다. 이날 이전에도 1966년 7월부터 1967년 4월 7일까지 발생한 교전에서 이스라엘군의 미라지III은 시리아군의 미그-21를 총 11대 격추시킨 반면, 이스라엘군의 미라지는 단 1기만이 추락했는데, 그것도 귀환하다가 연료부족으로 추락한 것이었다. 이로써 MiG-21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1967년 [[6일 전쟁]] 때는 이스라엘군의 공습 때문에 이집트군과 시리아군의 MiG-21이 떠보지도 못하고 지상에서 무수히 파괴되었다. 이집트는 110기중 100기가, 시리아는 60기중 35기가 이런 공습에서 파괴되었다고 한다. 이후 출격한 시리아군의 미그기도 이스라엘 공군에는 적수가 되지 못하며, 미그-21을 포함 총 48기가 격추되었다. 6일전쟁과 욤 키푸르 전쟁 사이에 이스라엘과 아랍각국들은 계속 공중전을 벌였는데, 아랍 파일럿들의 숙련도가 나빠서 자주 이스라엘 공군에게 털렸기 때문에 아랍 국가들은 판매국인 소련에게 군사고문단을 요청했고, 1970년 3월에서 8월까지 군사고문으로 비밀리에 참전한 소련군 파일럿이 탑승한 모든 MiG-21이 이스라엘의 F-4와 A-4, 그리고 미라지 전투기를 여러 기를 격추시켰다고 한다. 그러자 이스라엘군은 전법을 바꾸어 유인전술을 짰고, 다시 소련군 용병이 모는 MiG-21 세 기가 격추당하고 파일럿들은 모두 전사했다. 소련군은 이때문에 중동전쟁 개입에 신중해졌고, 확전을 극히 꺼리게 되었다. 소련군은 이 기간동안 이스라엘 전투기 21기를 MiG-21과 지대공미사일(SA-6)의 합작으로 격추했다고 한다.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당시 소련은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선제 공격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자 군사지원을 중지했고, 이집트군에 편입되어 싸우던 소련군 파일럿은 모두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 때 이집트군은 북한에 접촉했고, 김일성은 이집트에 베테랑 공군 조종사 20여명을 파견해서 도왔다고 한다. 이 전쟁 초반에 공중에서 아랍측이 선전한 것은 북한측의 도움 때문이었다고 한다.[[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0744|#]][* 그 탓에 이집트는 북한과 매우 친하게 지냈으며, 반대로 한국과의 관계는 소원한 상태에 있다가 1995년이 돼서야 수교했다.] 아랍측([[시리아군]]과 [[이집트군]])은 모두 MiG-21을 보유하고 있었고, 적인 이스라엘군은 F-4와 미라지3이 주력기였는데, 서로 공중전에서 우세를 주장하고 있다. 이 때 아랍측 MIG-21 한 대가 [[이스라엘군]] 소속 [[CH-53]] 한 대를 발견하고 기총사격을 했는데 그 CH-53은 유유히 돌아왔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77년 이집트-리비아 전쟁 당시 이집크군 MiG-21 전투기가 '''한체급 위인 리비아 군 MiG-23 전투기들을 격추시키며 선전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1970년대에 개발된 최신예기인 F-16과 F-15를 갖추게 되는 1980년대에는 MiG-21은 중동에서 [[야라레메카]]로 전락하게 된다. 1979년, '''세계 최초로 F-15 전투기를 해외 도입한''' 이스라엘 공군이 레바논 영공에서 시리아군 MiG-21 전투기들을 근접전에서 압살했던 것을 시작으로 시리아와의 공중분쟁에서 이스라엘 공군은 항상 승리했으며 1982년 시리아의 레바논 침공 당시, [[시리아군]]이 운용하던 MiG-21은 이스라엘군에게 무수히 떨어졌다. [[시리아]] 공군의 MiG-21과 MiG-23들이 [[이스라엘]] 공군의 [[F-15]]와 [[F-16]]들에게 무려 '''82:0으로 깨져서 이스라엘 공군에게 전설을 만들어주는 개망신까지 당했다.''' 더군다나 이들을 지원해 줄 SAM 포대도 29개 포대나 격파되었기에 더더욱 뼈저린 참패였다. 이렇게 일방적인 결과는 이스라엘군의 정보-관제능력 및 파일럿들의 숙련도 차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1950년대 개발된 MiG-21이 20여년 가까이 흐른 후에 나온[* 미그21이 1959년, F-15가 1976년, F-16운 1978년 실전배치되었다.] F-16, F-15와 맞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한세대 전만하더라도 천하무적 미공군을 상대로 쌍코피 터뜨리며 에이스도 배출했던 한땐 영광스러웠던 미그-21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F-15나 F-16과 같이 MiG-21보다 수십배 비싼[* 1990년대 이미 생산이 중단되었던 MiG-21은 100만 달러 안팎의 가격으로 획득되었던 반면, F-16는 1천만 달러, F-15 E는 3천만 달러의 고가였다. 그것도 수출가격이 아닌 미군 획득가격이 이렇다.] 고성능의 고가전투기를 만나지 않는 한은, 가성비로 규모의 공군력을 만드는데 유리했고[* 한마디로 말해 3천만 달러의 공군 예산만 있는 제3세계 국가에 선택지가 주어지면 F-15 한 대를 살지, MiG-21 30대를 살지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1980-90년대 이란-이라크전,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계속 등장해서 의미있는 역할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