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NASA (문단 편집) == 역사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NACA 로고.svg|width=100%]]}}}|| || {{{#000,#fff NACA 시절의 로고.}}} || NASA의 전신은 항공기술 연구를 하던 NACA(National Advisory Committee for Aeronautics, 미국 국가항공자문위원회)였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전투기]]를 비롯한 항공무기 체계가 전쟁의 핵심 전력으로 급부상하자 미국은 정부, 산업계, 학계의 전쟁관련 프로젝트를 총괄할 조직으로서 NACA를 만들었다. 당대에 독일이나 소련, 영국 등도 비슷한 조직이 있었으나 특히 영향을 받은 것은 영국의 항공 자문위원회(Advisory Committee for Aeronautics, National이 빠졌을 뿐 이름도 거의 같다)였다. 1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NACA는 계속 유지되어 다양한 항공기 기술 개발에 공헌하였다. 1920년대에는 [[양력#s-2.1|얇은 날개 이론]](Thin Airfoil Theory)[* 날개의 단면 형상이 만약 일정 수준 이상으로 얇은 모양이라면 [[받음각]]에 따른 [[양력]]계수의 그래프의 기울기가 2π가 되도록 증가한다는 이론.]을 정립하여 [[컴퓨터]]도 [[CFD]]도 없던 시절에 항공기 [[날개]]의 성능을 수식으로 예측할 수 있게 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024px-The_NACA_Test_Force_-_GPN-2000-000083.jpg|width=100%]]}}}|| || {{{#000,#fff NACA의 고속비행연구기지(현 암스트롱 비행연구센터) 사진.}}} || 1930년대에는 엔진 카울링[* Cowling, 공랭식 엔진을 둘러싼 덮개]에 대해 연구하여 이 부분의 [[항력]]을 감소시키면서도 냉각효율을 높이는 연구를 하였고, 그 결과물을 NACA 엔진 카울링이라 부른다. 이 연구결과는 이후 2차대전 중 대부분의 공랭식 전투기가 여기에 영향을 받은 것을 사용할 정도였다. 1930년대에는 [[에어포일]]의 모양을 수식을 사용하여 만들 수 있게 하였으며, 각 에어포일에 대해 방대한 [[풍동]]실험 데이터를 갖추었다. 이렇게 정립된 에어포일들을 NACA 에어포일이라고 부르며, 일종의 에어포일의 '표준' 같은 것이 되어서 현재도 이 에어포일을 그대로 쓰거나, 상황에 맞춰 약간 변형하여 사용할 정도다. 무엇보다 참고할 만한 데이터가 방대하다보니... 2차 대전 중 [[P-51 무스탕]]도 NACA가 개발한 '층류 에어포일(laminar airfoil)'을 사용하여 당대 탑 클래스의 고속 비행 능력을 갖출 수 있었다. 또한 2차 대전 중 [[P-38 라이트닝]]이 고속에서 급강하중 재상승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였으며, NACA는 이때 문제해결을 위해 보유한 [[풍동]]을 고속비행시험에 맞춰 개조하기도 하였다. [[P-47 썬더볼트]]나 [[B-17]]의 엔진 등에 쓰인 [[터보]] 방식 [[과급기]](터보 수퍼차저)의 개발에도 역시 NACA가 큰 공헌을 했다. 다만 [[터보]]기관 연구를 이쪽으로 집중하여 하다보니 나중에 [[터보제트]] 엔진 개발에는 좀 뒤쳐지게 된다. 한편 [[P-39]] 개발에는 끼친 영향이 좀 애매한데, 벨에서 개발중이던 P-39가 도통 군이 요구한만큼의 최대속도가 안나왔다. 이미 P-39는 시제기인 XP-39가 나온 상태였기에 대대적인 재설계는 어려웠고, NACA는 여러 [[풍동]] 실험 끝에 동체에 붙어 있던, [[터보]] 방식 [[과급기]]용 대형 공기흡입구를 삭제해버리면 군이 요구한 속도가 나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걸 떼어버리고 1단 방식 [[과급기]]를 단 엔진을 사용하면 고고도 비행성능은 버려야했고, 이 뒤쳐지는 고고도 비행성능 탓에 [[P-39]]는 미 육군항공대와 이를 공여해간 영국 공군에서는 찬밥신세가 된다. 하지만 의외로 [[소련]] 공군은 저고도 전폭기/공격기로서 또 잘 써먹었으니 아이러니. 1940년대 말에는 [[X 실험기 시리즈]]의 1번 타자인 [[X-1]]을 개발, 세계 최초로 유인 [[초음속]] 비행에 성공한다. 이후 초음속 비행에 대해 많은 연구를 거듭하였으며, [[F-102]] 전투기가 초음속 비행을 못하는 문제를 해결한 면적법칙에 대한 이론적 정립도 NACA의 업적이다. 물론 NASA로 명칭이 바뀌긴 했어도 여전히 명칭에 '항공'이 들어가 있는대로, 사실 우주선 쏘고 외계인을 찾는 것 말고 일반적인 항공분야에 관한 연구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잘 관심을 안 가져 주기 때문에 웹 사이트에서도 우주 관련 얘기만 하고 있다. 항공기 역사에 중요한 [[X 실험기 시리즈]]의 개발시 중요한 역할을 많이 담당하기도 했다. 1957년 구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리자 미국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가 되었고, 이대로 밀릴 수 없다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의 방침에 따라 이름에 '우주'를 넣어 지금 1958년에 우리가 아는 NASA라는 명칭이 되었다. 이후 미국은 소련과의 우주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무제한의 예산과 인력을 퍼부었다. 한때 NASA의 예산은 미국 연방 예산의 4%를 차지했다.[* 참고로 1965년에는 미국 GDP의 0.75%에 해당하는 금액을 쏟아부었다. 1965년의 미국 GDP는 6569억 달러. 같은 해의 한국 GDP는 33억 달러. 0.75%면 그 당시 한국의 GDP의 150%에 해당하는 금액을 예산으로 책정한 것이다.] 특히 [[아폴로 계획]] 같은 유인 [[달]]탐사 계획의 경우 '''[[소련]]이 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을 가진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소련도 달에 사람을 보낼 계획이 있었지만 미국이 먼저 달에 사람을 보내자 소련은 [[콩라인]]으로 사람을 보내봐야 별 의미가 없다고 보고 그만둬버렸다.] 실제로 1980년대까지는 각종 지원을 받으며 우주기술 선도에 대활약을 했으나, 당장 우주경쟁의 라이벌이던 소련이 망한 이후 자금지원이 많이 줄어들어 힘들어하고 있다. NASA가 자랑하던 세계적 연구 시설의 상당수도 운영비가 없어서 다른 정부 기관이나 민간에 넘어가 버렸다.[* 예를 들어 실물 전투기가 들어갈 수 있다는 세계 최대의 풍동(NFAC)을 [[미합중국 공군]]에 넘겼다.] 또한 똑똑한 미국인 공대생들이 NASA를 기피하게 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월급은 정부기관답게 박봉이고, 연구비가 부족해서 더 이상 재미있는 연구주제가 없고, 혹시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어와도 정부기관 특유의 경직성과 [[관료제]] 때문에 실제 실행에 옮기는데 한 세월이 걸리기 때문. 도전적인 항공우주 연구 개발을 위한 조직을 찾는다면 정부 내에서도 이렇게 갑갑하고 가난한 조직이 되어버린 [[JPL]]보다 [[DARPA]] 같은 곳이 훨씬 매력적인데다 민간 조직으로 눈을 돌리면 [[스컹크 웍스]]나 [[스페이스X]] 같은 곳들은 지루해진 감이 있는 NASA의 이미지와는 큰 대조가 되는 곳들인지라 좋은 이력서를 받기는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지경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