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PPS-43 (문단 편집) == 개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zGGguFuFln4)]}}} || ||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 ППС-43 PPS-43 '''П'''истолет-'''п'''улемёт '''С'''удаева '''P'''istolet-'''p'''ulemyot '''S'''udaeva 삐스딸롓 뿔례묫 수다예바 수다예프 기관단총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에서 개발한 [[기관단총]]이자 [[#PPS-42|PPS-42]]의 개량품. [[PPSh-41]]에 비해 생산성이 두배 이상 높아진 것[* 총기 1정당 생산 시간: 7.3 시간 → 2.7시간, 필요한 강철의 양: 13.6kg → 6.3kg.]과 동시에 PPSh-41에서 생산성을 제외한 전체적인 성능에서 나온 문제점도 같이 해결했다. 즉 PPSh-41보다 좀 더 안정적인 성능을 위하여 안전 장치도 개선되었으며, 탄피 배출구나 탄창의 각도를 조절함으로서 PPSh-41에서 지적되었던 급탄 불량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이 시도는 성공적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단점이라면 PPSh-41과 달리 단발 사격 모드가 없고 자동사격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는데 PPSh-41보다 노리쇠 왕복거리가 길어서 훨씬 연사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훈련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PPSh-41보다 훨씬 무게가 가볍고 길이가 짧으면서도 신뢰성이 있었기 때문에 [[수색대]]와 [[공수부대]] 등에서 호평을 받으며 사용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PPSh-PPS-mags.jpg|width=100%]]}}} || PPSh-41(좌)과 PPS-43(우)의 탄창은 모양이 다르다. PPSh-41에서는 볼트에 직접 연결되던 탄창 윗쪽 삽입부의 두꺼운 부분을 PPS-43에서는 아예 총몸으로 옮겨서 탄창 자체를 간소화 하였다. 원래 PPSh-41의 저 두꺼운 싱글피드 삽입부가 재장전시 상당히 방해가 되는 디자인으로, PPSh-41의 사격 영상들을 보면 총기 조작에 익숙한 사람이든 아니든 탄창을 끼워넣는데 꽤나 애먹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개발된 [[스텐 기관단총]]과 같이 가장 단순하고 싸게 만들 수 있는 기관단총들 중 하나다. [[PPSh-41]]을 공식적으로 대체하려고 만들었지만, 전쟁 기간동안 이미 궤도에 오른 PPSh-41의 생산량이 워낙 많았고 전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기존 공장의 생산 공정을 변경시키는 것은 더 큰 낭비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대신 신규 공장에서 PPS-43을 생산하도록 하면서 전쟁 도중에는 두 총기가 다 소련군에게 운용되었다. 하지만 종전 이후 생산이 중단된 PPSh-41와 다르게 이 녀석의 경우 1968년까지 생산되면서 [[AK-47]]이 제식으로 전군 보급이 시작되는 시점 이후에도 널리 쓰였으며, 소련 뿐만 아니라 [[불가리아]], [[폴란드]], [[쿠바]], [[중국]], [[몽골]], [[북한]] 등 당시 여러 공산권 국가들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베트남의 경우 [[베트남전]] 당시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이 사용한 기록이 있으며, 중국과 [[폴란드]]도 43식 기관단총, PPS wz.43/52라는 명칭하에 라이센스 생산, [[중국 인민해방군]]과 [[폴란드군]]의 군용 제식 화기로 사용한 적이 있다. 1968년 [[1.21 사태]] 때 [[북한]]의 124부대 [[무장공비]]들도 PPS-43 기관단총을 가지고 있었다. 1.21 사태 말고도 1980년 무렵부터 [[Vz.61]]로 교체될 때까지 60~70년대에 무장공비들이 PPS-43을 들고 있던 사례가 많다. ([[http://db.kdemocracy.or.kr/photo-archives/view/00755907|1965년 8인조 남파간첩 사건]], [[http://db.kdemocracy.or.kr/photo-archives/view/00756177|1969년 [[흑산도]] 무장공비 침투 사건]]) 용산 [[전쟁기념관]]에 당시 사용되었던 PPS-43 과 기타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전쟁기념관 외에도 적 침투장비 전시관에도 전시되어 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ee7ad3274a354e6a40b03af1ef0ffeeb969311a8552be521251e72752a9b066d.jpg|width=100%]]}}} || || 2015년 5월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대조국전쟁 승전70주년 군사퍼레이드에서 전쟁 당시의 수색대를 재현한 모습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0bd65a42aae5326c32e329d1a0dd024d381834fcdf466b5884a617dc121801eb.jpg|width=100%]]}}} || || [[디엔비엔푸]] 전투 60주년 군사 퍼레이드의 베트남 여군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