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PPS-43 (문단 편집) == PPS-42 == ||<-2> {{{#White '''{{{+3 PPS-42}}}'''[br]''Пистолет-пулемёт Судаева 42''[br]''수다예프 기관단총 42년식''}}}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imfdb.org/PPS-42.jpg|width=100%]]}}}|| || '''종류''' ||[[기관단총]] || || '''원산지''' ||[[파일:소련 국기.svg|width=23]] [[소련]] || ||<-2> {{{#!folding 【펼치기 · 접기】 ||<-2> {{{#White '''제원'''}}} || || '''탄약''' ||[[7.62mm#s-2.3.2|7.62×25mm 토카레프]] || || '''급탄''' ||35발들이 막대탄창 || || '''작동방식''' ||블로우백, 오픈 볼트 || || '''총열길이''' ||273mm || || '''전장''' ||907mm (개머리판 폈을 때)[br]641mm (개머리판 접었을 때) || || '''중량''' ||2.95kg || || '''발사속도''' ||600~700RPM || || '''유효사거리''' ||100~150m ||}}} || [clearfix]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VbTNE0NVUMw)]}}}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reUASo1KnTA)]}}} || ||<-2> Forgotten Weapons의 리뷰 및 사격 영상 || PPS-43의 프로토타입.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레닌그라드]] 경우 사실상 겨울이 되어 호수에 의한 물자 수송이 가능하기 전까지는 굉장히 소수의 물자로만 독일군을 방어해야 했는데, 이 당시 개인화기 숫자 부족의 경우 [[PPSh-41]]을 통해서 해결을 하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목재가 사용되어야 하고 어느정도 복잡한 기술이 요구된다는 상황[* 물론 PPSh-41 자체는 굉장히 단순했던 녀석으로 유명했지만, 레닌그라드에서는 이것도 복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파파샤는 만들어지는대로 모스크바 전선에 지급되어야했다.]에서 PPSh-41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기는 불가능했고, 이러한 개인화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왔다. PPS-42는 생산성, 그리고 재료의 희귀성때문에 만들어진 개량형으로 PPSh-41을 생산할 수 없었던 시기에 나온 새로운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더 단순하면서 빠르게 생산할 수 있었고, 목재를 사용하지 않도록 접절식 철제 개머리판을 사용한 것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와 동시에 PPSh-41에서 사용하던 71발 드럼 탄창보다 더 단순하고 신뢰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35발 막대형 탄창을 사용한 점도 새로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PPS-42는 레닌그라드 공방전 당시 소련군이 전멸하지 않을 수 있었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는 공장에서 갓 생산된 PPS가 시험 테스트도 없이 곧바로 전투로 투입되어 사용되어야 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 때 빠르게 만들 수 있었던 PPS-42의 생산성은 개인화기 손실이 높음과 동시에 빠른 시간내에 새로운 병력들을 자동화기로 재무장시켜야 하는 소련군의 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던 유일한 대안이였다. 레닌그라드 전투 당시 PPS 기관단총은 레닌그라드에서만 4만 5천정 이상이 생산될 정도로 매우 높은 생산성을 자랑했다고 할 수 있다. 레닌그라드 공방전은 PPS-42 기관단총의 실전이자 시험장이기도 하였다. 당시의 전황은 새로운 기관단총을 시험할만한 시간이 없을 정도로 급박했기 때문에 생산된 총기는 즉시 최전선으로 투입되었고, 실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생산 과정에서 개선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어디까지나 카더라이지만, 이 총을 생산하는 공장 중 하나였던 키로프 공장은 전선에서 단 2-3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작된 총을 시험 사격하기 위해서 '''독일군이 있는 쪽에 사격'''했다는 이야기까지 존재한다.] 1943년에 소련군의 공세로 포위망이 일부 약화된 이후로는 개선 사항이 집대성된 최후기형 PPS-42가 PPS-43으로 채택되어 세스트로레츠크 조병창에서 본격적으로 대량 생산되었고 AK-47이 채택되기 이전까지 군에 널리 쓰이게 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pss.jpg|width=600]]}}} || 왼쪽의 총이 PPS-42, 오른쪽이 개량형 PPS-43이다. 차이점은 총열 길이, 접철식 개머리판의 길이, 가늠쇠 디자인, 방아쇠 앞의 안전장치 모양새. 이것 말고도, 더 많은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https://war-time.ru/foto/item/sravnitelnye-foto-pps-42-i-pps-43|여길 참조]]하면 된다. [clearfix]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