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PPSh-41 (문단 편집) == 개발사 == 소련군은 원래 "기관단총은 총알을 낭비한다"는 [[그리고리 쿨리크]] 원수의 지론에 따라 기관단총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사실 소련이나 쿨리크뿐만 아니라 다른나라의 군수뇌부에서도 '''"정확한 조준없이 총알을 뿌린다"'''는 개념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다. 당대 소련의 적국인 독일도 마찬가지여서 PPSh-41에게 호되기 당한 후에도 보병들에게 개인용 자동화기를 보급하려는 계획은 전혀 없었고, 심지어 PPSh-41이 나온 20년후인 미국도 이점에 대해서는 마찬가지여서, [[베트남 전쟁]] 당시 [[제식 소총]]이던 [[M16 소총]]에서 탄 낭비 좀 줄여보겠다고 자동사격 기능을 제거하고 단발과 3점사 기능만 남긴 [[M16A2]]가 만들어졌다. 막상 실전에서는 적은 자동사격으로 시원하게 난사하는데 아군은 끽해야 3발 쏘고 다시 쏘기를 계속 반복해야 하니 상대의 화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제압되거나 죽어나가는 일만 발생하자 결국 자동사격 기능을 복원한 [[M16A3]]가 개발되었고 그 이후로 미군은 두번 다시 자동사격 기능을 제한하는 기관단총이나 돌격소총을 제식으로 채용하지 않았다.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군인은 훈련을 받아서 침착하게 조준사격이 가능한 존재이므로 자동사격 기능을 제한해도 침착하게 조준해서 사격하면 되니 전투력 저하가 전혀 없어야겠지만, 현실에서는 훈련은 받았어도 실전 경험이 부족하거나, 비전투병과라 아예 훈련을 받지 못했다가 상황이 급박해져서 비전투병과가 전투에 뛰어들거나, 혹은 훈련도 실전 경험도 많지만 적의 숫자가 아군보다 더 많거나, 총을 제대로 움직이기 힘든 실내전이거나 등의 여러 이유로 적이 작정하고 준비한 화력에 압도되어서 엄폐물 바깥으로 총구 한번 내밀기도 힘들어 대응사격이 어려워지는 등의 여러 변수가 많다보니 이론적으로는 가능했었을 '침착하게 조준하고 사격하는' 행위가 언제나 가능한건 아니라는걸 확인하고는 그런 소리가 쏙 들어갔다. 그리고 이는 후술하듯 소련 또한 마찬가지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고, 중국 또한 [[AK-47]]의 라이센스판인 [[56식 보총]]의 짧은 사정거리에 불만을 느끼고 정확한 장거리 조준사격을 지향하는 [[63식 자동소총]]을 개발했다가 [[중월전쟁]]에서 호되게 값을 치러야 했다. 이런 반대 때문에 1930년대 데그탸료프는 1차대전 당시의 독일의 기관단총 [[MP18]]을 카피하여 [[데그탸료프 기관단총]]을 개발하였으나, 이것은 국방부 소속의 붉은 군대가 아니라 [[NKVD]] 소속 내무군과 경찰, 국경수비대만이 채용하였다. 그나마 1938년까지 이 총은 1700여정만 보급되었을 뿐이고 여러 문제점 때문에 도입된지 몇년만에 퇴출이 고려될 정도였다. 그나마 NKVD 국경군 등지에서 사용된 수입산 [[톰슨 기관단총]]이 소련 극초기부터 꾸준히 이용되었다. 하지만 핀란드와 맞붙은 1939년 [[겨울전쟁]]은 소련군이 기관단총에 눈을 돌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보병 개개인이 휴대하는 기관단총이 전무했던 소련군은 핀란드군이 장비한 [[KP/-31]] 기관단총에 시가전과 근접전에서 큰피해를 입었다.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는 적국의 무기에 눈독들인 붉은군대는 이와 비슷한 무기의 개발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40년 총기개발의 명설계자 데그탸료프는 PPD-34를 개량설계한 [[데그탸료프 기관단총|PPD-40]]을 내어 놓았다. 하지만 이 총은 부품을 모조리 절삭가공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제작에 시간이 오래걸리는 동시에 강재가 낭비되는 등 생산에 효율적이지 못했다. 다른 총기설계자인 게오르기 슈파긴은 외장 부품을 만들 때 철괴를 일일이 부품 모양으로 깎아내는 대신 [[프레스 가공|미리 일정한 모양으로 잘라둔 철판을 압착해 부품으로 찍어내는 방안을 제시했고]] 여기에 반동제어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소염기를 부착하는 등 몇가지 개량을 하였다. 이렇게 개선된 덕분인지 구조는 더 간단해지고, 제작단가는 더 떨어졌다. 이렇게 간단한 구조 탓에 생산 시간이 14시간에서 7시간으로 줄어들었으며, 스포츠용품 생산공장 같은 곳에서도 쉽게 제조할 수 있었다. 소련판 [[스텐 기관단총]]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고, 사실 컨셉 자체는 비슷하긴 한데... 그래도 총 자체를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날림 급조품인 스텐과 달리 PPSh-41은 당대의 명품 기관단총 중 하나였다. 단적인 예로 스텐은 총열덮개를 잡고 쐈다간 바로 손에 화상을 입어버리기 때문에 결국 탄창을 대신 잡고 쏴야하는, 정석과 어긋난 파지법을 써야 했던 반면에 PPSh-41은 그냥 쏴도 안전했다. 또한 간단한 구조 덕분에 정규 교육을 받을 틈이 없던 민간인들을 급하게 징집해서 쥐어줘도 비교적 빠른 시간내로 숙달시킬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었다. [[http://world.guns.ru/userfiles/images/smg/smg02/ppsh41-3.jpg|초기형]]엔 [[기계식 조준기#s-2.1.1|탄젠트 가늠자]]가 있고, 후기형엔 약실내 [[크롬]] 도금이 되어있다. 반자동 사격이 가능하며, 목재 [[개머리판]]의 완충장치, [[소염기]]가 있어 견착 사격 시 명중률도 제법 높았다. 빠른 발사 속도와 넉넉한 탄창으로 소련군이 [[우라돌격]]을 통해 독일군과 근접하게 되면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었다. 놀랍게도 보병중대마다 이 총으로만 무장한 기관단총 소대가 따로 존재할 정도였다.[* 격전으로 생산물량이 쪼들릴 때는 [[모신나강]] 소총의 총열을 반으로 뚝 잘라 PPSh-41 총열을 만드는 땜빵도 감행했다. 모신나강보다 싸게 뽑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총의 생산 비용 중 총열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감안하면 농담 수준의 얘기가 아닌 듯하다.] [[동부전선#s-3]]의 [[독일군]] 병사들이 가장 선호한 [[노획]] 무기였다. 만성적인 자동화기 부족에 시달리던 독일군은 [[기관단총]]까지 모자라서 분대장급에게도 제대로 [[보급#s-2]]하지 못한 실정이었는데, 갑자기 땅바닥에 웬 쓸만한 [[기관단총]]이 떡하니 놓여져 있었으니 독일군 병사들 입장에선 그저 횡재일 수밖에 없었다.[* 영화 [[철십자 훈장(영화)|철십자 훈장]]이나 [[스탈린그라드(1993)|스탈린그라드]]를 보면 그 정황이 잘 묘사되고 있다. 노획해서 [[9×19mm 파라벨럼]]탄으로 개조해서 쓰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쓰기도 했다. 전쟁 초기엔 막장으로 무너지던 소련군에서 노획한 탄약이 많았던 데다, 7.62mm 토카레프탄은 독일군 7.63mm 마우저 권총탄의 소련화 버전이라 독일에서도 치장창고를 뒤져서 조달이 가능했다. 한마디로 독일이든 소련이든, 양측 어디에서건 탄환 수급이 다 가능했다는 말이다.] 반면에 소련군 병사들은 안정성이 높은 독일 측의 [[MP40]]을 선호했다는 설도 있다. [[PPSh-41#s-4.1|아래쪽 참조.]] 소련군의 근위 사단 보병들은 전체가 이 기관단총으로 무장했으며, 이런 기관단총으로 수천 명이 근거리 화망을 씌우며 몰려오는 [[우라돌격]]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스탈린그라드 전투]]나 [[베를린 공방전]]와 같은 시가전에서도 PPSh-41은 큰 활약을 했다. 기관단총의 떨어지는 정확도도 지근거리 전투가 많이 벌어지는 시가전에서는 그렇게 큰 단점이 아니었고, 장탄수가 71발이라 전투 지속력이 매우 좋았으며, 무엇보다 현대와는 달리 방탄복 같은 장구류가 지급되지 않았던 2차 세계대전의 특성상, 당시 시가전에 투입된 PPSh-41은 웬만한 현대 돌격소총보다도 무서운 존재였을 것이다. 71발들이 [[드럼 탄창]]이 무겁고 생산성이 떨어지며 탄걸림이 심하다는 이유로 중간에 35발들이 바나나형 탄창이 보급되었으나, 이쪽은 조금만 험하게 다루어도 휘어져버려 불평이 많았다. 결국 개량되기는 했으나 드럼 탄창도 종전 시까지 생산되었고, 전선에선 대부분 바나나 탄창보다는 구형인 드럼 탄창을 애용하였다. 여담으로 [[http://belleisle43.blog.me/220482375491|전차 내부에서 사격하기 위해 총열이 휜 형태의 전용 PPSh-41도 있다.]] 한편 알렉세이 수다예프는 다시 PPSh-41을 참고해 PPS-43을 개발했다. 이 총은 훨씬 생산성이 높고 가벼우며, 단가가 싼 데다 부실했던 안전장치 등을 고치고, 접는 개머리판을 추가한 것이다. 모든 외장이 목재 없이 철판 프레스 부품만으로 되어있어 PPSh-41보다도 더 빨리 생산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하지만 PPSh-41의 생산도 이미 궤도에 오른지라 종전 때까지 계속 생산된다. 사실 PPS-43이 독일군의 [[MP40]]을 많이 참고해서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몸체가 금속제이고 접철식 개머리판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총의 얼개는 그대로 PPSh-41의 디자인을 가져온 것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7_zzang1847.jpg|width=100%]]}}} || || [[PPS-43]] || 전쟁말기가 되자 소련군은 PPSh-41의 낮은 정밀도에 불만을 느끼게 된 한편, 노획한 독일군의 돌격소총 [[StG44]]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소련군은 PPSh-41처럼 아무렇게나 굴려도 되지만 StG44처럼 정밀도나 위력이 높은 돌격소총을 채용하기로 결정하고, 여러 설계자들에게 차기소총안을 공모했다. 슈파긴, 수다예프는 각각 ASh-44, [[AS-44]]이라는 자신의 설계안으로 공모에 참가했고, 명설계자인 토카레프(AT-44), 시모노프([[SKS]]), 데그탸료프 등도 모두 시제품을 내놓지만, 결과적으로는 당시까지 무명이었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의 [[AK-47]]이 채용되었다. PPSh-41을 [[Tu-2]] 폭격기 내부 폭장창에 대량으로 설치하여 화력지원용으로 사용하려 한 적도 있다.[[https://www.warhistoryonline.com/featured/innovative-flawed-fire-hedgehog.htm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