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PTSD (문단 편집) == 인지도 == 한국은 [[2003년]]까지만 해도 [[정신질환자|정신과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PTSD 역시 별달리 조명되지 않았다. '누가 어떤 사건 겪은 뒤 정신이 나갔다, 정신이 이상해졌다' 라고 하는 일은 있어도 특정 질병으로 인식하진 않았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정도의 대사건을 겪었을 때에나 짧은 기사 몇 건 나왔을 정도였다. 다음 글을 통해 그렇게 된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https://www.google.com/search?q=세월호+유가족+시정연설+박근혜&oq=세월호+유가족+시정연설+박근혜&aqs=chrome..69i57.5153j0j7&client=ms-android-skt-kr&sourceid=chrome-mobile&ie=UTF-8|박근혜가 바로 앞에서 울부짖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싸늘히 외면하고 지나쳐버린 사건]]을 언급한 후'''),, > >[[세월호]] 유가족들이 고통스럽다고 울고불고하면요. 저는 [[박근혜]] 대통령의 속마음이 이랬을 거라고 봐요. > >'''"너희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그까짓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내가 겪은 고통]]에 비하면, 너흰 몰라서 그렇지 [[10.26 사건|나는 그것보다 더 큰 고통]]을 겪었고, 그걸 혼자서 다 이기고 [[대한민국 대통령|여기까지]] 왔어.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이런 마음이었을 거란 말이죠. > >그러니까 [[트라우마]]가 치료되지 않으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어요. 전혀 감정이입이 안 돼요. 왜냐하면 자기가 받은 그 끔찍한 고통에 계속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에 마음의 시점이 이동하질 않거든요.[* 같은 PTSD 환자들끼리는 서로의 아픔에 잘 공감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겪은 아픔에 비해 상대의 아픔을 과소평가하기 쉽기 때문이다. 설령 동일한 사건의 피해자라 해도 다른 삶을 살아온 독립된 개체이므로 대립과 다툼은 피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사고 이후 5년간의 이야기를 정리한 책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에도, 동일한 사건을 겪었음에도 유가족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겪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나온다.] 그래서 [[가해자가 된 피해자|다른 사람한테 또다른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죠.[* [[박근혜|박근혜 전 대통령]]이 몰락한 1차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며, 실제로 근거가 아주 없는 해석은 아니다. 양친 모두 살인 사건으로 잃는다는 것은 자녀에게는 절대 치유되지 않을 충격이다. 가족이나 지인이 살해당한 뒤 반사회적인 성향을 보이는 케이스도 적지 않다.] > >근데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일단 [[1950년]]도 [[6.25 전쟁|한국전쟁]]을 겪으며 '''온 국민이 [[트라우마]] 환자예요. 그거 한 번도 제대로 치료한 적 없어요.''' 그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자식을 낳고 굉장히 [[가정폭력|집에서도 폭력적으로 자식들한테 했고]], 사회구조도 그렇게 돌아갔고... [[제주 4.3 사건|제주 4.3]] 그렇게 민간인이 3만 명이 [[학살]]당했는데, 그 트라우마 한 번도 치료한 적 없어요. '''[[5.18 민주화운동|광주항쟁]]? 한 번도 치료한 적 없어요.'''[* 아예 정신건강의학과(구 신경정신과)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먹고살기 바빠서 다리가 부러져도 겨우 치료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것들이...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들이 온 사회에 굉장히 넓게 퍼져있는데... 그런 것들이 이렇게 누적이 되다 보면 '''타인에게 적절한 정도의 공감을 한다든지, 타인의 고통에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이 사회구조적으로 굉장히 어려워져요. 사회의 바탕이 그렇게 되죠.''' > >그런 노인들이 자신이 살아온 시절이 너무 끔찍하고, 죽다 살아났고, 형제 몇은 다 죽으면서 거기서 살아남아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이고... 그러니까 "애 하나 죽은 거...? 그거 별 거 아냐. 지금은 세상이 더 좋아져서 돈도 준대. 야~ 나 같았으면 그 정도는~" 이런 마음들이 있어요. 치료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고통에 아직도 깊이 매몰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이렇게 극단적인 사회적인 트라우마가 있을때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이... 말하자면 그런 것들이 반쯤은 괴물이 되는 사람을 양산하는 구조이기 때문이에요. > >-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하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PTSD가 주목[*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기였으므로 파급력이 더 컸다. 특히 야간정액제가 사라지고 xDSL기반 회선이 보급된 것도 한몫했다.]받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적극적으로 치료를 권하는 추세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부터 [[심리학]]회 차원에서 화두로 삼고 전국의 연구실에서 [[대학원생]]들을 [[공밀레|갈아넣고 있는]] 상태다.[* 국내 학회들의 동향을 보면 PTSD 관련 [[프로시딩]]이 의외로 많이 나온다.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게 중독.] 최근에는 아래에서 따로 설명할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에 늦게 알려졌을 뿐, 신종플루나 [[HIV]], 슈퍼박테리아, [[코로나바이러스-19]]와 같이 20~21세기에 처음 발견된 질병이 아니다. [[배설(조선)|배설]]이 [[임진왜란]] 당시 탈영한 원인이 PTSD라는 게 정설일 정도로,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의 인류와도 함께하던 유서깊은 정신적 질병이다. 유명한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도 PTSD가 있었고 그의 대표작 절규도 이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미국의 경우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크게 주목받았다. 베트남전 전부터 적지 않은 수의 참전 군인에게서 같은 증상이 발견되었지만 질병으로 인식되지는 아니었으며, 때문에 PTSD를 부르는 용어 역시 중구난방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셸 쇼크(Shell Shock)라고 불렸으나 질병인지 증상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했으며, 후술할 많은 유사증상을 하나로 묶어 칭했다는 단점이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과 [[6.25 전쟁]] 이후에는 전투 피로증(Battle Fatigue, Combat Fatigue), 작전상 탈진상태(Operational Exhaustion)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역시 병명을 확정하는 단어로는 무리가 있었다. [[베트남 전쟁]] 이후에 용어가 수정되어 현재는 PTSD로 정립된 상태이다.[* 미국의 유명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조지 칼린]]이 이를 비꼰 적이 있었다. 'Shell shock'라는 아주 직관적인 단어로 표현하면 다수의 사람들에게 그 의미가 쉽게 와닿았겠지만 자꾸만 좀 더 현학적이고 난해한 용어로 지칭되다보니 그만큼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사람들이 둔감해진다는 게 그의 주장. 물론 개그는 개그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직도 '전투 스트레스 반응'[* CSR: Combat Stress Reaction. 일명 전투신경증]과 혼동되고 있지만, 둘은 절대 동일하지 않은 별개의 증상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