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PlayStation(콘솔) (문단 편집) ==== 서드 파티 모집 ==== 업계에서도 비관적 태도로 주시했다. 실제로 소니에서는 서드 파티를 모으고자 플레이스테이션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러 게임 기업 등 관련 기업들을 돌았지만 [[C언어]]로 3D 게임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 황당해 하거나,[* 당시 [[C언어]]는 [[1990년]]에 국제 표준이 정립된 최신 프로그래밍 언어였고, 3D 그래픽 역시 당시 업계에선 [[동키콩 컨트리]], [[둠]] 같이 3D로 눈속임한 2D 그래픽을 사용했고 일부 디자이너들이나 취미로 연습하는 걸음마 단계였다. 즉, 대기업에서도 손에 꼽을 최정예 인력으로 제작팀을 꾸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는 [[닌텐도]] 같은 당대 라이벌 대기업들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미야모토 시게루]]는 후일 사장이 묻는다 인터뷰에서 [[닌텐도 64]] 개발 당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인력 시장에서의 3D 디자이너의 부재를 꼽기도 했다.] 게임기 사업은 삼가는 것이 좋다는 충고를 듣거나 복수의 기업체들로부터는 [[스퀘어#s-2|300만 대를 팔면 그 때 다시 오라는]] 등 냉대를 받았다.[* 저 충고도 나름 호의적인 의도로 한 말이었고, 300만 대 발언 그정도로 시장이 커지면 반드시 참여한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그나마 비슷한 시기 [[남코]]는 에반스 & 서덜랜드 TR3(Texture Mapping Real-Time Real-Visual Rendering System) 3D 그래픽 시스템이 들어간 시스템 22의 비싼 가격으로는 세가와 경쟁할 수 없다고 판단해, 이를 해결할 저가형 3D 기판의 개발과 닌텐도와의 다툼으로 자체 가정용 게임기 개발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데 플레이스테이션의 탁월한 가성비에 놀라 이를 기반으로 아케이드 기판인 [[SYSTEM 1X 시리즈|시스템 11]]을 만들고 [[철권(게임)|철권]], [[철권 2]], [[소울 엣지]] 등을 개발하는 등 적극적인 우군으로 참여했다. 당시 SCE의 이사회 회장인 마루야마 시게오는 이에 '대부분의 대기업이 300만 대 보급 전망이 있다면 개발을 검토하겠다고 주저하는 가운데 [[남코]]만이 개발비를 회수할 수 있을 지 모르는 일을 줬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1993년 8월, 31회 오락기기 박람회[* Amusement Machine Show. 현재의 [[JAEPO|Japan Amusement Expo]]이다.]에서 버추어 파이터가 공개되면서 이런 게임 회사들의 태도가 급변했다. 이전까지 '우리 업계에서 3D는 안 된다'며 냉정했던 개발자들은 버추어 파이터에서 3D의 가능성을 보고 박람회 관람을 마치는 길에 바로 소니로 찾아올 정도였고 데모를 보여주자 정말 이런 게 가능하냐며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훗날 SCE 초대 사장인 토쿠나카 테루히사는 이에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은 세가 [[버추어 파이터]]의 성공 덕분임을 언론과 서적을 통해 회고했다. 1993년 10월 28일, 소니는 소니 본사 대강당에서 플레이스테이션 시연회를 열었다. 이 시연회에 모인 개발자들은 대체로 대기업은 아닌 회사 쪽 사람들로 이루어졌지만 많은 수가 참석했고, 쿠타라기 켄은 플레이스테이션의 프로토타입 4대를 설치해 3D 데모를 시연했다. 아래 링크되어 있는 [[티라노사우루스]]의 3D 동영상을 시연하자 다들 충격을 받았다. 회장은 조용해서 시연회가 실패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였다고 할 정도로 충격이 컸다. 쿠타라기 켄의 말로는 프로토타입 기기 말고도 워크스테이션이 따로 있는 거 아니냐는 질문이 오기도 했다고 한다. [youtube(UcL1sMI8snQ)][* 이 데모에서 사용한 음악은 나중에 나온 [[포탈 스토리즈: 멜]]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t2ehOOp1KFo|리메이크]]되어 등장했다.] [youtube(tou_v8eYBsc)] 그리고 이 데모에 나온 티라노사우루스는 훗날 플레이스테이션 5 구매 시 설치되어 있는 무료 게임, '아스트로 플레이룸'에서 그 모습 그대로 최종 보스로 나온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특유의 부들거리는 텍스쳐도 그대로 재현했고, 화면 비율도 4:3으로 바뀐다. 특히 이 티라노를 격파하면 그 티라노가 완전히 새로운 그래픽으로 일신된 사이보그 공룡으로 바뀌며 스테이지도 현대적인 그래픽과 배경으로 재탄생하고 화면 비율도 기존 4:3 화면비에서 현재의 화면비로 변한다. 과거의 플레이스테이션에서 미래의 플레이스테이션으로의 도약을 나타낸 만큼 플레이스테이션 시절을 실시간으로 경험한 게이머라면 감동할 만한 장면이다. 티라노사우루스 데모 행사의 대성공, 150만 엔이라는 저렴한 개발 장비 가격, [[세가 새턴]]이 부실한 라이브러리 지원으로 원성을 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프로그래머의 개발 부담을 덜기 위한 꾸준한 라이브러리 지원 등을 통해 SCE는 1994년 여름까지 플레이스테이션에 게임을 내놓기로 계약한 서드파티 게임 회사를 200곳 넘게 확보했다. 기기를 다루는 데 제약이 생길까봐 라이브러리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일류 개발자들도 있었지만 릿지 레이서를 빠르게 이식할 수 있었던 것도 라이브러리 덕분이며 꾸준한 업데이트로 최종적으로는 1800여 개에 달하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이외에도 SCE는 전신인 음반 회사 소니 뮤직의 발상으로 게임 개발자를 크리에이터, 아티스트로 대우하며 게임 야로제!(ゲームやろうぜ!)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개최한다. XI(sai)와 [[도코데모 잇쇼]] 같은 게임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되었다. 이 때까지 대부분의 게임 제작사는 개발자의 이직을 막기 위해 크레딧에 실명을 쓰지 못하게 했는데 SCE는 적극적으로 게임 개발자들을 인터뷰에 내보내고 이름을 알리게 한다. 마루야마는 적극적으로 개발자 발굴에 나섰으며 코지마 히데오는 '플레이스테이션이 우리를 예술가로 만들어줬다'라고 할 정도로 새로운 개발자, 개발사들을 적극 발굴한다. 마루야마 시게오는 이 때 만난 게임 개발자들에게 '너희들 여자에게 인기 없지? 내가 음악 업계 출신이라 잘 아는데 [[코무로 테츠야]]는 인기가 많다. 너희들도 이걸 잘하면 코무로처럼 될 수 있다'며 다독였다. 이외에도 소니 뮤직 자체에서도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이라는 인재 발굴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또한 개발 지식을 갖춘 일반인들도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개발을 할 수 있도록 넷 야로제!(ネットやろうぜ!)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일정 심사를 거쳐 회원이 되면 간이 플레이스테이션 개발기와 소프트웨어를 12만 엔(소비세 별도)에 구입할 수 있었다. 개발 입문의 문턱을 이렇게까지 낮춘 것은 실로 파격적인 일이었다. 다만 전용 개발기와는 달리 시리얼 통신만으로 프로그램을 전송해야 했기에 속도가 느렸고 관련 문서나 인터넷 서비스도 빈약해서 프로의 환경에 비해 게임을 개발하기엔 대체로 무리였다는 소감이 있다. 넷 야로제판 [[LightWave 3D]]를 번들로 제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