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Presence (문단 편집) == 녹음 배경 == 전작의 대성공과 투어의 대성공으로 인해 밴드 멤버들은 또다시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두어 들였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세금이었다. 당시 영국은 무려 수익의 95%를 세금이랍시고 걷어갔는데[* 이 때문에 [[조지 해리슨]]은 [[Taxman]]이라는 곡으로 영국 정부를 디스했다.], 이 때문에 레드 제플린 또한 번 수익들을 대부분 빼앗길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미국 또한 세금을 어마무시하게 징수해 갔기에 미국에서 머무를 수도 없었기에, 멤버들은 그냥 유럽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세금을 피한 도피를 하기로 한다. 이러한 와중에 사건이 하나 터지고 만다. 1975년 8월 4일 [[그리스]]의 [[로도스 섬]]에서 [[로버트 플랜트]]와 그의 가족이 타고 있는 차량이 절벽 아래로 떨어진 것이었다. 차는 수백 미터를 떨어진 뒤 나무를 들이 박으면서야 겨우 멈춰섰다. 뒤에 타고 있던 3명의 아이들은 크게 다치지 않았으나, 로버트 플랜트의 아내인 모린 플랜트는 골반과 다리 하나가 완전히 꺾였고 얼굴이 찢어졌으며 과다 출혈로 빈혈 증상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희귀 혈액형이었기 때문에 즉각적인 수혈이 없다면 목숨이 위험했다. 로버트 플랜트 또한 두 다리가 크게 골절되고 팔도 크게 꺾였다. [[지미 페이지]]와 그의 여자친구, 페이지의 자녀들, 그리고 모린 플랜트의 여동생이 뒤에서 바로 차로 뒤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도 빠른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지미 페이지는 영국에 있던 투어 매니저 리처드 콜에게 전화를 걸었다. 콜은 영국 최고의 의료진을 플랜트에게 보냈으며, 로버트 플랜트는 [[핑크 플로이드]]의 리더인 [[로저 워터스]]의 별장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매니저 피터 그랜트는 다음날 미국 투어 일정을 취소했다. 이러한 악재 때문에 치료를 받으러 결국 영국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었다. 플랜트 부부는 몇 주 동안 런던의 대형 병원에 입원했고, 퇴원하자마자 세금을 피해 다시 해외로 도피할 수밖에 없았다. 플랜트와 페이지, 그랜트 모두 부상을 당해 투어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렇게나 죽치고 앉아있는 것 보다는 앨범 하나를 만드는게 더 나을 것이라는데 의견 일치를 보였다. 1975년 10월 마지막주에 대략적인 앨범 컨셉이 잡히고, 녹음 일정도 잡혔는데, 이는 [[Led Zeppelin(앨범)|1집]] 이후 가장 빨리 앨범 컨셉과 녹음이 진행된 것이었다. 그러나 멤버들은 미국 조세 제도 때문에 로스앤젤레스에서 녹음을 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밴드는 [[서독]]의 [[바이에른]]에 위치한 아라벨라 호텔 지하층으로 이동해 곡들을 녹음했다. 무엇보다 이 호텔의 최고급 시설이 로버트 플랜트가 재활을 하는데 제격이었다. 플랜트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매일 몇 시간씩 보행 연습을 하였다. 스튜디오 사용이 2주일 정도밖에 예약되지 않았기 때문에 밴드는 엄청난 속도로 앨범 제작에 들어갔다. 그래서 앨범의 전체 사운드는 5, 6집에 비해 훨씬 통일성을 갖추게 되었고, 신속한 제작 속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멤버들과 관계자들은 마약에 빠져들었다. 지미 페이지는 [[헤로인]]을 하고 곡을 녹음했으며, 로버트 플랜트는 전곡을 휠체어에서 녹음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