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SBS (문단 편집) === 설립 이후 === 출범 당시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양대 방송사에서 스카웃되거나 혹은 기회를 찾아 이적한 인력들이 꽤 그럴듯한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2011년 [[종합편성채널]]이 개국되고, [[CJ ENM]]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뮤직부문|카카오M]] 측에서 방송사업을 확장하면서 남승용 PD 등을 스카웃하며 SBS는 당시 KBS, MBC 등이 입은 직격탄을 똑같이 맞게 된다.] 개국 초기부터 2002년까지 11년간 토요일 아침을 책임졌던 <생방송 행복찾기>를 비롯해 장애인들의 인간드라마를 내세운 <사랑의 징검다리>가 있었고, [[SBS NEWS|뉴스]]는 밤 9시로 굳어져 있는 메인뉴스 타임을 [[SBS 8 뉴스|저녁 8시]][* SBS는 [[SBS 8 뉴스|8시 뉴스]]를 '한시간 빠른 뉴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지만 사실 저녁 8시 타임은 중부유럽의 표준 뉴스 시간대이다.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도 메인뉴스를 저녁 8시에 방영하는데 이 또한 중부유럽의 영향이다. 여담으로 정작 북한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구 소련과 중국은 각각 현지시각 [[브레먀|9시]], [[신문연파|7시]]에 메인뉴스를 방영한다.]로 앞당겨 고정시켰고 밤 10시에는 [[SBS 뉴스쇼|기존의 뉴스 형식을 탈피한 토크쇼 형식의 뉴스]]를 방영했다.[* 하지만 [[SBS 뉴스쇼]]는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70200329116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2-07-02&officeId=00032&pageNo=16&printNo=14453&publishType=00010|신설 1년도 안 되어 종영되었다]].] 각종 이슈를 센세이셔널하게 다루는 '[[그것이 알고 싶다]]'는 현재까지도 롱런하고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심지어 개국 초기에는 [[제임스 카메론]]감독의 [[에이리언(영화)|에일리언]] 편성해서 놀라움을 사기도 했다. [* 그도 그럴 것이 TV의 외화방영은 극장, 비디오 출시 후 대개 1~2년 정도의 텀을 두는데 이 경우는 거의 몇 달 간격이었다. 하지만 당시 타 방송 채널에서는 일단 영화를 한 편 방영하면 어지간히 긴 영화가 아닌 이상 1, 2부로 나누는 일은 없었는데, 개국 초기 SBS는 설날특집으로 [[팀 버튼]]의 '[[배트맨(1989년 영화)|배트맨]]'을 편성했는데, 광고 수익 확대를 위해 1, 2부로 나눠 방영한바 있다. 배트맨 방영 이후 부터는 워너 계열의 애니메이션([[배트맨 디 애니메이티드 시리즈|배트맨 TAS]], [[슈퍼맨 디 애니메이티드 시리즈|슈퍼맨 TAS]], [[폴라 익스프레스]] 등)과 영화들([[해리 포터 실사영화 시리즈]](불의 잔까지 방영되었으나 SBS가 자체 더빙한것은 비밀의 방까지이고 아즈카반의 죄수와 불의 잔는 자체 더빙하지 않고 극장 개봉 더빙판 그대로 방영), [[배트맨 실사영화 시리즈]]([[배트맨 비긴즈]]까지), [[매트릭스 트릴로지]], [[리썰 웨폰 시리즈]], 국내 미개봉작인 [[애널라이즈 디스]]의 속편 [[애널라이즈 댓]]과 [[발 킬머]]의 2002년 영화 집행자(The Salton Sea) 등)이 상당히 많이 방영했다.] 1991년 12월 말에 제12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을 생중계 했다. 최초의 큰 행사를 생중계 한 셈이다. 개국 당시부터 1995년 초까지는 [[한국방송공사|KBS]]나 [[MBC]]와 달리 전국적으로 방송되지 못하고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 및 [[경기도]]에서만 방송하였다. [[충청권]] 일부[* 충청남도의 경우, 당시 당진군 전역에서는 확실히 시청이 가능했으나, 당진보다 위도가 조금 낮은 서산시나 온양군에서는 북쪽 지역에선 시청이 가능했으나, 시내권에서는 시청이 불가능했다. 천안시의 경우도 평택시와 인접한 지역에서만 시청할 수 있었다.]도 가시청권역이었으나 음영지역이 많아 한 도시에서도 나오는 곳과 안 나오는 곳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SBS를 볼 수 없었으며 굳이 보려면 서울이나 경기도 등으로 원정을 나가서봐야 했을 정도였다. 서울에 왔던 시골사람이 SBS를 보고 '''SBS가 뭐시여?''', '''[[한국방송공사|KBS]]나 [[MBC]]는 눈감아도 알갔는디 SBS인가 SBC인가 그갓은 모르겠네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부산과 대구 등의 주요 대도시는 비디오 가게에서 녹화된 프로그램을 대여했거나 지역 유선방송(1993년 9월부터 [[테이프 넷]]이 허가되었다.)으로 하루 늦게 방송했기에 상당수는 SBS를 알고 있었다.][* SBS에서 1990년대 말에 편성된 예능 프로그램인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의 당시 인기 코너인 [[고향에서 온 편지]]는 SBS의 낮은 인지도를 잘 보여주기도 했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도시에 나가 있는 자녀에게 보내는 영상편지 형식의 코너로 정제되지 않은 형태로 방송에 나오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인기를 끌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영상편지에서 "아그야 나 KBS 나왔다"라며 인사말을 시작했는데, 이는 당시 SBS의 인지도가 양대 방송사에 비해 미치지 못했음을 잘 보여주었다. 단, 제작진들이 이를 편집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 코너의 [[기믹]]으로 삼은 점은 감안해야 하겠다.] 사실 이 때까지의 SBS는 지방 민영방송 체제가 출범되기 전의 시절이라 그 당시까지 어쩔 수 없이 서울과 경기도 지역 등에만 방영되고 볼 수 있었던 '''그야말로 [[듣보잡]]''' 시절이었다. 이것은 TV뿐 아니라 라디오도 마찬가지였으며 아예 서울을 벗어나게 되면 SBS 방송이 나오지 않게 되어서 청취를 못하게 된 경우도 생겼다.[* 그렇기 때문에 SBS에서 개국 당시 방영되었던 사극드라마인 '유심초(有心草)'나 주말드라마 '은하수를 아시나요', 그리고 1995년에 방영했던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등의 시청률도 서울과 경기도권 지역에서만 한정되었고 나머지 지역 시청률은 아예 나오지도 못하였다.(다만 다행인거는 당시엔 시청률 조사기관에선 서울 지역만 시청률 조사를 했었다.) 그리고 서울과 [[경기도]] 지역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그 당시까지 SBS 드라마에 대해서 아는 이가 많이 없었던 편. 심지어 KBS-MBC 양대방송사 아나운서나 개그맨 등이 SBS로 갈 경우 타 지역 사람들은 이를 모른 채 "XXX 씨 왜 안나오는겨?", "심형래 아저씨가 왜 KBS에 안 나와요?"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라디오는 AM 792kHz로 방송된 터라, 종료 멘트와 시작 멘트만큼은 새벽시간이라 부산에서도 희미하게나마 들을 수 있었다. 이는 837kHz CBS도 마찬가지. 다만, TV의 경우 일부 중계유선방송사가 SBS 오리지널 신호를 재전송해주기도 해서, 해당 지역 유선방송 가입자들은 소원을 풀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1995년 5월 14일부터 PSB 부산방송(現[[KNN]]), [[TBC]] 대구방송, TJB [[대전방송]], KBC [[광주방송]]로 구성된 1차 지역 민영방송이 개국하면서 수도권에만 방송되던 게 각 [[광역시]] 등지에서 방송되기 시작[* 다만 실질적 전국방송은 한달 전인 4월 1일부터 지역민방들의 시험방송 대부분이 SBS 릴레이로 꾸려지면서 시작되었다.] 하였으며, 1997년 2차 지역 민방인 UBC [[울산방송]], JTV [[전주방송]], CJB [[청주방송]]이 개국했고. 그러다가 4년 뒤인 2001년 12월, 2002 한일 월드컵 개막과 함께 3차 지역민방인 GTB 강원민방 (現[[G1방송]]), [[JIBS]] 제주방송이 개국된 뒤, 2006년에 와서야 마지막으로 남은 경상남도 지역의 사업권을 PSB가 가져가고 KNN으로 이름을 바꿈으로서 마침내 지역민방은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TV방송만 해당되고, 라디오 방송의 경우 수도권에만 방송되다[* 야간에 중파방송으로 청취가 가능했던 러브FM은 송출 당시에도 출력(50kW)이 똑같은(!) 중국 선양 전파가 강하게 입감돼서(대략 저녁 7시부터 혼신된다고 보면 된다.) 청취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고 이마저도 2022년 11월 8일 송출을 중단했다. 그래도 밤 시간대 프로그램 [[기쁜 우리 젊은 날(SBS)|기쁜 우리 젊은 날]]을 지방에서 중파로 청취했다는 경험담을 보면 지방에서도 나름 수요는 있었던 모양.] 파워FM이 1997년 말에 먼저 지역 민방들과 협정을 맺어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지지부진했던 러브FM도 2016년 5월 10일에 KNN 러브FM이 개국하면서 동남권도 깨끗한 청취가 가능해졌다.[* PSB, 현재의 KNN에서 먼저 라디오 채널을 개국하긴 했지만 11월까지는 네트워크가 아닌 별개의 독립 채널이었다.][* 이 시절 SBS 러브FM 뉴스와 일부 프로그램도 몇몇 지역민방 라디오에서 크로스 네트워킹을 통해 송출되었지만 2008년 전부 폐지되었다.] 개국 초창기에 방영되었던 인기 애니메이션 <피구왕 통키>와 <축구왕 슛돌이>, <슈퍼 그랑죠>도 1997년에 재방영하여 전국에서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중에 축구왕 슛돌이와 슈퍼 그랑죠는 2000년대 초중반에 각각 [[JEI 재능TV]]와 [[대원방송]]의 첫 번째 애니메이션 채널 [[애니원]]에서 재방영되었다.] [[드라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는 SBS의 전국적 브랜드 인지도 상승에 큰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모래시계 드라마를 VTR 테이프로 방송을 녹화해서 비수도권에서 몰래몰래 돌려보던 게 유행했고, 이어서 아예 비디오 대여점에 모래시계 전편이 정식 출시될 정도로 인기를 누렸으며, 급기야 모래시계 송출 시간대에는 서울 시내 택시가 안 잡힐 정도였다. 그러자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신문사들과 잡지사들이 모래시계를 엄청 띄워주었고 자연히 SBS의 존재가 비수도권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모래시계는 지역민방 네트워크 출범 이후 1998년 1월에 전국적으로 재방송하였다. 다만 지역민방이 아직 없던 강원 동부, 제주도는 방송되지 못했다.[* 강원은 영서지방 일부는 SBS 본사가 커버했지만 영동 쪽은 나오지 않았고 제주도도 KBC 광주방송이 커버를 할 수 없었다. 다만 모래시계는 무궁화 위성으로도 송출되긴 했다.] 아무튼 이 드라마는 그냥 듣보잡 수도권 지방방송사[* 원래 SBS는 서울만을 방송목표로 하던, 지방방송사가 원래 취지였다.]를 '''[[대한민국]] 제3의 방송사'''로 키워준 1등 공신임은 부정할 수 없다. 1993년에는 [[용문산]], 관악산 TV중계소가 완공되어 난시청 해소 및 종전의 어두운 색감과 화질[* 채널 2~6번에 걸친 [[VHF]] 로 밴드 대역은 상대적으로 멀리 나가는 장점이 있지만 화질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을 전면 개선했다. 그리고 국내 최초(이자 유일 그리고 마지막[* [[SBS 러브FM]]이후 AM 스테레오 방송이 없었는데다 2000년대 이후 모노로 환원.])의 AM 라디오 스테레오 방송을 시작했다. 1996년에는 파워FM(FM 107.7Mhz), 1999년에는 러브FM(표준FM 103.5Mhz)이 차례로 개국했다. [[한국방송공사|KBS]], [[한국교육방송공사|EBS]], [[MBC]]와는 달리[* [[한국방송공사|KBS]]는 기획재정부에서 인력 T/O 허가까지 관리하는 영조물법인체이고, [[한국교육방송공사|EBS]]는 한국교육개발원 산하에서 독립한 공영방송사, [[MBC]]는 법인형태가 주식회사이긴 하지만 지배구조상 방송문화진흥회가 최대주주이고 정수장학회가 2대주주인 '''준'''공영방송사다.] 순수 민간 자본으로 설립하고 운영되는 '''완전 민영방송사다.''' 이 때문에 타 방송국과는 달리 상업적인 성격이 강하며, 돈이 되는 방송을 주로 하기 때문에 인터넷 VOD[* 단, 시사교양 및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예외적으로 무료로 제공되고 있으며, 예능 및 드라마의 경우 방영 및 업로드 시점으로 1년이 경과되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서비스를 한국 방송 가운데 최초로 유료화하는 등의 사건으로 인해 상당한 질타를 받기도 했다.[* 현재는 3사 모두 유료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으며 공동 출자한 OTT 서비스인 [[Wavve]]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으로 공익성이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주요 방송사'''라는 지위가 있고 그에 걸맞는 책임[* 특히 보도에 대한 책임이 가장 크다.]을 다해야 하므로 규제가 강하다고 봐야 한다. 같은 민영방송이지만 철두철미한 상업방송인 [[CJ E&M]]계열의 케이블 채널들과 다른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비유하자면 타 지상파는 국책은행, SBS는 시중은행, 기타 케이블 채널은 협동조합 내지 상호저축은행 정도의 레벨이라 보면 된다. 시중은행도 민간기업이긴 하지만 공익성이 매우 중요한 특별한 기업이라는 점에서 SBS와 유사하다. 그렇지만 완전히 똑같은 방송을 할 수 있는 종편에 비해서도 차별적 규제를 당하고 있다.] 참고로 설립 당시에는 "서울방송"이었기에 위에 나온 "'''S'''eoul '''B'''roadcasting '''S'''ystem"을 SBS의 풀네임으로 썼으나 2000년에 법인명을 SBS로 바꾸면서 서울방송과 그거의 영문 풀네임은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됐다. 법인명은 영문이나 숫자 등을 허용하지 않기에 등기 떼어보면 "주식회사 에스비에스"라고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HD 방송을 가장 먼저 시작한 방송사로 시험방송을 2000년 8월 31일에 [[MBC]], [[한국방송공사|KBS]](2000년 9월 3일)보다 3일 먼저 시작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20&aid=0000024425| ]] 2002년부터 [[SBS 인기가요]], [[도전 1000곡]], 한선교 정은아의 좋은 아침을 HD로 본격 편성한 것을 시작으로 많은 행사들이나 공연 실황을 HD로 내보내기 시작한 것. 이것은 2010년대가 다 되어서야 본격적인 HD 편성을 시작한 [[한국방송공사|KBS]]나 HD였어도 화질이 별로 좋지 않았던 [[MBC]]와 확연히 비교되는 행보였다.[* 그래서 [[인기가요]]도 1세대 아이돌로서 보기 드물게 [[S.E.S.]]는 HD 영상이 나온다.] 다만 2002년~ 2003년 상반기에는 서울과 [[광주방송|광주]][* 2002년 11월 부터 ATSC 방식으로도 송출함.]에만 HD 방송이 한정되어 지방에서는 여전히 4:3 SD(이자 아날로그) 비율로 시청해야 했다. 2003년 [[KNN|부산]]과 [[TBC|대구]]에서 HD 방송을 시작했고 그 후 타 지역방송도 HD 방송을 시작하여 2008년까지 전부 HD 방송 전환이 이루어졌다. 2011년부터 [[MBC]] [[뉴스데스크]]가 연성화 되면서 '예능데스크'라는 별명을 얻은 것과는 달리, SBS는 뉴스 제작 퀄리티가 갑자기 확 올라갔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고유가 시대라서 좋은 점"'''같은걸 터뜨리던 동네임을 기억한다면 아이템 기획력에서는 아직 [[MBC]]보다는 조금 스트레이트한 감이 있지만 불과 1, 2년 전에 비해 그림이나 입체적 구성 등 리포트의 기본 포맷이 상당히 견실해졌다는 평. 이 시기부터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을 추월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거의 완전히 추월한 듯 하다. 하지만 지상파 후발 주자이자 케이블 뉴스채널, 종편 등의 추격을 너무 신경썼던 것인지 특종 경쟁에 지나치게 목매달다 병크를 가끔 터뜨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장자연 편지 사건.[* 이 건을 맡은 우상호 기자는 소위 그랜저 검사 사건 특종을 터뜨린 17년차 베테랑인데도 이런 오보를 터뜨렸다. 이 사건으로 데스크의 고위직이 전보조치되었단 얘기가 있다. 일단 경찰의 공식 입장은 자작극으로 결론났다.] 그리고 [[기자양반]]이 등장했다. 본격 SBS 뉴스 예능화 선언. 주인공은 바로 [[이한석]] 기자. 벌써 [[디시인사이드]] [[합필갤]]에서 [[필수요소]]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호평을 받던 중, 2013년 8월 20일, SBS 8 뉴스에서 '''대형 사건'''을 일으켜버렸다. [[일베저장소|한 커뮤니티 사이트]] 유저가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의도로 제작한 워터마크가 박힌 자료를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 것. 자세한 내용은 [[SBS 8 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이미지 사건]] 항목 참조. 9월 27일에는 스포츠뉴스에서 [[일베저장소|위 사건과 같은 사이트 유저]]가 제작한 [[연세대학교]] 심볼마크를 왜곡한 로고를 내보내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17년 10월 13일 노사 협상 끝에 국내 방송사 최초로 사장 임명동의제를 도입했고 이를 통해 박정훈 현 사장이 재임명되었다. 사장 뿐 만 아니라 편성·시사교양·보도 최고책임자 역시 임명동의제를 실시하는데 합의했다. 양측의 합의에 따르면 SBS 사장은 SBS 재적 인원의 60%, 편성·시사교양 최고책임자는 각 부문 인원의 60%, 보도 최고책임자는 부문 인원의 50% 이상이 반대하면 임명할 수 없다. 하지만 2019년 들어서 다시 노사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모기업인 태영건설이 윤세영 회장의 은퇴와 윤석민 회장 체제가 출범하면서 SBS가 거꾸로 지주회사인 SBS 미디어홀딩스를 지배하도록, 지배구조가 변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이 자기 측근들을 지주회사에 심어두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수익을 내는 유통사인 SBS 콘텐츠허브에 윤석민 회장이 "SBS 쪽 사람들은 쓰지 말라."라고 지시했고 최상재 전략기획실장이 이를 말리다가 경질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SBS 노조가 파업할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는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 당시 파업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KBS와 MBC 노동조합에 각각 562만원의 연대기금을 지원하였고 노보를 통해 사내 부조리를 꾸준히 폭로하고 있다.] 결국 2019년 4월 16일 범 SBS 비상대책위에서 부천영상단지 경영참사에 대한 특별감사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SBS 내부에서도 경영진의 중대 실책과 태영건설 측의 부당한 경영, 편집권 개입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 여기에 2021년 사측에서 '노조위원장 동의제'로 변질되었다는 이유로 단협(단체협약) 해지 통고 및 임명동의제를 철폐할 것을 SBS 노조측에 요구하면서 [[https://n.news.naver.com/article/006/0000107500|노사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심지어 경쟁 방송사 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에서도 2010~2017년의 무단협 상태에서 겪은 노동탄압, 인권침해 및 방송독립성 침해 실태를 거론하면서 SBS 사측의 행태를 비판하였다. [[http://www.sbsunion.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45| ]] 또한 [[2019년 고성 산불]]에서 [[가로채널]] 등의 예능을 정상 방송한 후 뉴스특보 체제로 가장 늦게 전환했는데, 이는 [[재난방송]]으로서의 기능을 소홀히 한 것이라 국민들에게 비판받았다. 2021년 11월 30일 SBS와 SBS A&T 양사에서 파업결의안이 가결되었으며, 12월 2일 파업결의대회를 거쳐 창사 30년만에 첫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었으나 파업 당일 새벽 노사 양측이 극적으로 합의점을 도출해 잠정 보류 상태에 들어가면서 노조 구성원들은 6일 오전 5시부터 업무에 복귀했다. [[https://www.sbsunion.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95| ]][[http://n.news.naver.com/article/052/0001673535| ]] 그리고 12월 7일 '노사 합의문 서명식'을 통해 대타협을 선언하면서 30년만의 첫 파업은 봉합으로 끝났다.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73212| ]][[https://sports.donga.com/article/all/20211207/110662897/1| ]][* 기사에 적힌 합의문 내용을 간추려 설명하자면 보도본부장 동의제는 종전대로 유지, 사장에 대한 동의제는 폐지, 콘텐츠전략본부장 및 시사교양본부장 동의제는 긴급평가제로 대체한다는 내용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