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SK텔레콤 (문단 편집) == 역사 == 1984년 [[KT|한국전기통신공사]] 자회사 '한국이동통신서비스'로 설립되어 모기업으로부터 차량전화([[카폰]]) 및 무선호출(삐삐) 서비스 사업을 양수받았고, 1986년 부산에서 첫 지방 무선호출 서비스를 개시했다. 1988년 모기업으로부터 시설을 양수받고 공중전기사업자로 등록받으며 한국이동통신으로 변경해 휴대전화 서비스를 개시했고, 서울올림픽 때 차량전화 및 휴대전화 통신 지원활동에 참여했다. 1989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상장한 후 무선호출 방식을 POCSAG 방식으로 통일했으며, 1993년 도드람연수원을 사들이고 '이동통신기술개발관리사업단'을 세웠다. 1994년 [[민영화]]와 동시에 [[SK|선경그룹]]이 인수해 대주주로 올라섰다. 선경그룹은 한국이동통신 인수 10년 전인 1984년부터 미주 경영기획실 산하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조직해 정보통신 기술을 배웠으며 이를 토대로 1991년 '대한텔레콤'[* 계열사 유공 외에 나우정밀, 영국 보다폰 등 국내외 기업들이 출자해 '선경텔레콤'을 설립했으며, 1992년 대한텔레콤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선정 실패 후 전산장비 업체로 전환하여 현재의 SK주식회사 C&C가 됐다.]을 세웠다. 이런 오랜 준비를 바탕으로 1992년 포항제철, 코오롱, 동양, 쌍용, 동부그룹 등 컨소시엄[* 당시 재벌 경제력 집중 억제정책에 따라 4대 그룹의 참여가 배제되었다.]과 경쟁한 끝에 큰 점수 차이로 제2이동통신 사업자에 선정되었지만, 대통령의 사돈에 대한 특혜[* [[SK그룹|선경그룹]] [[최종현]] 회장의 아들인 [[최태원]] 회장이 1988년에 [[노태우]] 대통령의 장녀 [[노소영]] 씨와 결혼이었다.]라는 비난을 의식한 청와대의 압력으로 인해 자진 반납[* 특히 당시 집권당 대선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선거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 강하게 반발함에 따라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전격 반납하게 된다.]하는 형식으로 철회되었다. 이후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서야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과 함께 한국이동통신 민영화가 동시에 추진되는데, 제2이통 사업자 선정을 전경련에 위임함에 따라 공교롭게도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던 [[최종현]] 회장이 또 다시 논란이 있을 것을 우려, 참여를 포기하게 된다. 대신 민영화 발표로 가격이 4배나 오른 한국이동통신을 그보다도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인수한다.[*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이를 반대한 임원들에게 당시 최종현 회장이 "지금 2,000억원을 더 주고 사지만 나중 일을 생각하면 더 싸게 사는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준비했으니 10년 이내에 1조~2조원의 이익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한마디로 선경 입장에서는 받았던 사업권을 정치적인 구설로 반납하는가 하면, 인수 과정에서는 웃돈까지 주며 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후 제2이동통신인 신세기통신까지 인수, 합병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원하던 것 이상을 가진 셈이다.[* 그리고 한국통신은 1996년에 다시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하여 [[한국통신프리텔]]을 세우게 된다.] 선경 인수 첫해부터 이리듐 사업에 참여한 뒤, 1995년 미국 뉴욕에 R&D센터를 열고 인도에서도 무선호출 서비스를 개시했다. 1996년에는 인천과 부천에서 세계 최초로 CDMA방식 이동전화 서비스를 개통했다. 같은 해 한국 민간기업으로선 최초로 뉴욕증권거래소에도 상장한 후 선경 계열사로 정식 편입됐다. 1997년 'SK텔레콤'으로 사명 개칭 후 PC통신 서비스 '[[넷츠고]]'를 개설한 뒤, 태국 WCS사에도 지분참여했다. 또 진로그룹으로부터 프로농구단 청주 진로 맥카스를 인수해 현재 [[서울 SK 나이츠]]를 운영하는 등 스포츠 사업에도 손을 뻗었다. 1998년에 자회사 SK텔링크와 SK텔레텍을 세우고 1999년 몽골에서 이동통신 서비스를 개시하며 [[신세기통신]]을 인수한 뒤, 무선인터넷 'n.TOP'과 20대 전용 서비스 '[[TTL]]'을 탄생시켰다. 2000년에 IMT-2000 사업권을 따내며 신세기통신과 통신망을 합치고 넷츠고를 분사시키는 한편,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싱크로드'를 개시했다. 2001년 무선호출사업을 인텍크텔레콤(훗날의 리얼텔레콤)에 넘기고 전자화폐 '네모'를 출시했고, 2002년에는 신세기통신을 합병하고 SK IMT를 세웠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한일월드컵]] 때부터 붉은악마를 후원하고 그 유명한 '대한민국' 광고로 브랜드 이미지가 올라갔으며[[https://www.youtube.com/watch?v=5pC2jGCa8_8|#]], 모바일 금융서비스 '모네타'와 모바일 멀티미디어 서비스 'june'을 탄생시켰고, 2003년 SK IMT를 합병하고 서울 을지로 신사옥으로 이전했으며, 2004년에 한국 최초 키즈폰 'i-Kids'[* 생산은 벨웨이브가 맡았다.]를 출시하고 유료 인터넷 음원서비스 '멜론'을 개시했다. 2005년 경찰청과 '치매노인 찾기 서비스' 협정을 맺고 [[2006년]] HSDPA 서비스 개통 후 '3G+'로 밀다가 몇달 후 [[T]]라는 브랜드명을 만들어 '생각대로 T'등의 광고에 써먹고 있다. 2006년부터 쓰고 있는 현재의 SK텔레콤 로고는 2005년 10월 모 회사인 SK의 로고가 변경되자 다른 SK 계열 자회사들과 함께 로고를 교체한 것이다. 또한 새로운 브랜드 'T' 도입을 앞둔 시점이기도 했다. T가 도입된 이후 기존의 [[TTL]]과 [[스피드 011]]은 사용이 중단됐다. 2008년 SK에너지와 함께 'SK마케팅앤컴퍼니'를 세우고 2009년 만화포털 사이트 '툰도시'를 열었고, SK네트웍스로부터 전용회선사업을 양수받았다. 2010년 2월 하나카드 주식 49%를 인수하고 12월에 [[멀티미디어 메시지|MMS]] 등 [[통합메세지함]](?)과 TMAP의 API를 공개한 바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3&aid=0003571948|기사]] 2011년 플랫폼사업을 SK플래닛으로 분사했다. [[iPhone]] 출시에 대해서는 매번 '검토해보겠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CDMA 아이폰조차 출시된 2011년 상황에서 SKT의 입장은 마찬가지였는데 2011년 3월 24일 [[아이폰 4]]를 출시. 사실 안드로이드 마케팅에 3,000억 원을 쏟아붓느니 안정적으로 시장에 진입한 아이폰을 들여오는 편이 싸게 먹히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2010년 3월부터 해외 단말기도 [[전파인증]]을 받으면 등록할 수 있다. 심지어 MMS[* MMS 때문에 독자적인 통합메시지함을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국제 표준 MMS 서버도 따로 있어 아이폰 같은 경우도 등록이 가능했다. [[디자이어]] 같은 해외 스마트폰들은 SK의 독자 MMS가 아닌 국제 표준 MMS를 쓰고 있었다.]도 쓸 수 있다고. 물론 전파 주파수가 다른 폰들은 사용이 힘들기 때문에 SK텔레콤의 전파 주파수에 맞는 폰[* 주로 유럽판 또는 북미판 쿼드밴드 3G 기기. LTE는 멀티캐리어 이용 가능 지역에서만 쓸 수 있다.]이라면 대부분 사용에 지장이 없다고 한다. SKT 독자 메세지 규격인 SKT-MMS는 2012년 5월 IMEI 블랙리스트 도입과 함께 사라졌다. 같은 시기에 길이 제한도 140바이트로 늘었는데, 80바이트로 표기되는 구형 폰이라도 140바이트만 넘지 않으면 SMS로 전송된다. 2015년에는 [[Apple|애플]]을 의식한 듯한 명품 마케팅을 하려는 것이 보인다. 명품 LTE도 그렇고, 몇몇 대형 대리점, 직영점의 디자인을 SK텔레콤 고유 색상으로 바꿔놓고 인테리어에 꽤 신경을 쓰는 한편, 각종 스마트 기기를 전시해놓고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게 해 준다. SK텔레콤으로 출시되지 않는 단말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삼성은 [[갤럭시 S II]] 이후, 팬텍은 [[베가 레이서]] 이후 플레그쉽은 3사 동시 출시로 가닥을 잡은 듯 하며, LG전자는 통신사와의 관계에서 '을' 이기 때문에 자사 폰의 3사 동시 출시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옵티머스 3D|3D 폰]]은 SK텔레콤 전용으로, [[옵티머스 Q|쿼티폰]]은 LG U+ 전용으로 출시한다. 최근은 LTE 시리즈가 선전하면서 좀 나아지고 있는 듯 하지만 [[옵티머스 뷰]], [[옵티머스 LTE]]도 [[KT]]를 제외하고 출시되었다. [[프라다폰 3.0]]은 KT와 동시 출격(LG U+는 늦게 출시했다.). 물론 이건 KT LTE가 늦어진 탓도 있다. 2015년에는 [[갤럭시 A8]](SM-A800)이 이 통신사 독점으로 나왔다.] 요즘 트렌드를 알고 싶다면 가까운 곳에 있으니 가보는 것도 추천한다. 삼성 갤럭시 시리즈의 레드 색상은 SK텔레콤 전용 색상이어서, 다른 통신사는 고통받았었다. 하지만 [[갤럭시 S8]]의 레드 색상인 버건디 레드가 이 통신사 단독이 아닌 한국 통신 3사(당연하게도 SKT 포함) 발매가 되어 깨졌다. 2016년 SK플래닛으로부터 위치기반서비스(LBS) 및 휴대폰 인증 부가서비스 사업을 넘겨받았다. 2020년 사명을 변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http://nly.co.kr/2020/move/|#]] 이미 박정호 사장이 언급하기도 했고, 법원 등기소에 임시 등기 신청도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사명을 변경함과 함께 새로운 CI 공개도 앞두고 있다고. 사명 후보는 SK하이퍼커넥터,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316279?sid=101|T스퀘어]]로 알려져 있다. SK텔레콤은 2021년 11월 29일 '''액면분할과 동시에 인적분할을 추진'''하기로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20&aid=0003368315|#]] 액면분할비율은 보통주 1주를 5개로 쪼갤 계획이며 배당금도 삼성전자처럼 분기배당을 추진하기로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81&aid=0003202079|#]] 심지어 삼성전자와는 배당지급월도 동일한 것으로 예상되며 주가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자사주를 소각한 상태이다. 인적분할은 2021년 11월 기존의 전통적인 사업을 영위하던 존속회사와 투자 위주로 가는 ICT신설투자회사로 나뉘는데 존속회사는 사명 그대로 '''SK텔레콤'''으로 갈 예정이며 마찬가지로 주력사업은 '''통신업'''이 될 것이다. 다만 성장성 없는 캐쉬카우 사업인 통신업이기에 '''[[인공지능|AI]]와 [[메타버스]]를 신사업'''으로 키울 것이라 한다. 신설투자회사의 이름은 '''[[SK스퀘어]]'''이며 '''중간지주회사'''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한다.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반도체 기업의 인수합병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며 동시에 '''[[ADT캡스]], [[11번가]]를 포함시켜 증시에 상장'''시킬 계획이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로 인해 중간지주회사로 독립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일각에선 신설투자회사를 결국 지주회사인 [[SK주식회사|SK]]와 합병시켜 [[최태원]] 회장을 포함한 [[범SK가]]의 지배권을 높이기 위해 추진하는 행동[* 합병이 성사되면 국내 시가총액 2위 하이닉스의 지분이 그대로 지주회사에 간다. 현재 최태원 회장은 지주회사의 지분이 있고 주요주주이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지배권 강화의 초석을 마련하는 것이다.]이라고 주주들의 우려하는 분위기도 어느정도 있다. 하지만 회사에선 그런 계획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https://www.news1.kr/articles/?4273104|#]][[https://paxnetnews.com/articles/73162|#]][[https://www.ajunews.com/view/20210414160820679|#]]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