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SNT모티브 (문단 편집) == 역사 == SNT모티브는 1973년 11월 29일 준공된 국방부 산하 조병창이 모태다. 당시는 국가 제조업에 공차, 품질관리, 생산기술 등의 기술 기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소총 하나 못 만들었던 시절'이었다. 60년대 후반 김신조 간첩 사건 이후 자주국방의 절실한 필요성을 느낀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무기를 만들어보자는 '번개사업'을 지시했고 국방부 군수발전 계획단(단장 : 군수차관보 신원식 소장 단장)이 한국에 M16 소총 공장을 짓는 문제로 미국 콜트(Colt)사와 협상을 진행했다. 단장 신원식 소장, 이해량 해군준장(국방부군제담당관), 석룡영 대령(국방부관리차관보 보좌관), 김사묵 중령(군수기획관), 강영택 중령(군수기획관)은 미국에 머무르면서 한국에 M16 소총 공장을 건설하는 기술협정 검토 및 미국방부 '펜타곤' 실무자들과 1500만 달러 방위차관 문제 등을 논의했다. M16 소총 제조공장을 만들어 운영하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들이 필요했다. 당시 국방부에서는 엔지니어들을 모집하기 위해 주요 신문사에 광고를 냈고, 그 내용은 공대 기계공학과 졸업이나 금속, 화학공학과 졸업자, 최소 2년 이상의 실무 경력, 영어회화, 전문기술 영문원서 해독가능자 등이었다. 당시 현역 군인 신분으로 공대 기계과를 나온 사람은 흔치 않았으므로 선발된 27명은 그야말로 국가의 수재들이었다. 그렇게 선정된 도미기사 27명은 1972년 미국 콜트사에서 1년간 기술연수를 받았다. 국방부 조병창의 위치선정이 중요했다. 당시 부산에는 60년대 이승만 정부에서 세워진 육군 조병창이 탄약을 생산하고 있었다. 조명탄과 예광탄 기술을 이전받아 시험을 진행하던 곳이 철마산 계곡이었다. 처음 국방부 조병창은 지하 공장을 염두에 뒀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철마산 중턱에 터널을 뚫어 무기공장을 짓는 것이었다. 당시 북의 무기 공장이 주로 땅굴 속에 있었기에 우리 군도 그렇게 계획했다. 그러나 미국 연수를 다녀온 실무진들이 지하공장은 공사 기간이 서너 배 소요돼 제때 계획한 대로 무기 공장을 지을 수 없고, 각종 환경/전기/시설 문제 등이 건의되어 지상 공장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1973년]] 완공된 생산 시설에서 [[1974년]]부터 [[M16A1]] 소총의 라이센스 생산을 시작했고, 60만정을 생산해 우리 군에 전력화되었다. 이 때부터 국방과학연구소 주도로 K1, K2 등 한국사람의 체형에 맞는 대한민국 제식총기 개발이 진행되었고, 1981년 대우그룹으로 민영화 된 이후에도 총기 국산화에 큰 역할을 했다. [[1981년]] [[대한민국 국군]]의 제식 총기 국산화 목표를 이념으로 [[대우그룹]]에 인수되어 대우정밀공업(Daewoo Precision Industries Ltd.)이 되었다. [[1999년]]에 [[대우통신]]에 잠깐 흡수합병되었다가[* 그래서 몇몇 [[K5 권총]]에 대우통신이란 각인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 때문인지 대우그룹이 사용하던 홈페이지 도메인 주소인 daewoo.co.kr이 SNT모티브 소유로 되어 있다. 아마 대우통신에서 분리될때 같이 넘어간걸로 추정된다.] [[2002년]]에 다시 분리 독립하여 대우정밀(주)로 분리되었다. [[2006년]]에 S&T그룹에 인수된 뒤 S&T대우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2011년]]에는 [[S&T모터스]]를 자회사로 편입하였다. [[2012년]] [[3월 9일]]부로 S&T 모티브(S&T MOTIV)로 변경하였고 이로서 대우와의 인연은 완전히 끓어지지는 않았다![* 대우그룹의 도메인을 SNT모티브가 소유하고 있기때문.] [[2021년]] 3월에 현재의 사명인 SNT모티브(SNT Motiv)로 사명을 변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