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Saori (문단 편집) == 학창시절 == * '''유치원''' 멤버인 보컬 후카세를 처음 만나게 되는 곳이다. 사오리는 상급생의 졸업식에서 연보라색머리를 한 매우 튀는 사람을 보고 "정말 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연보라색머리의 별난 상급생이 후카세였다. 4~5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서 유치원 때에도 피아노연습을 하던 기억이 주인 듯하다. * '''초등학교''' [[파일:ZXdIAd3.jpg]]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사오리는 극심한 이지메(왕따)를 당하게 된다. 초등학교 생활 내내 혼자였으며, 학교 내에서 대화하는 사람은 선생님과 한 해 위의 선배인 [[Fukase]]뿐이었다고 한다. 둘은 같은 청소구역을 배정받았는데, 사오리는 동급생 전체에게 이지메를 당하고 있었으므로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는 청소시간이 정말 좋았다고 한다. 후카세는 청소가 싫어서 청소도구함, 화단, 운동장으로 도망 다니곤 했는데 그런 후카세를 잡아서 선생님에게 일러 칭찬받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사오리는 콩쿠르 준비로 인해서 종종 청소시간에 피아노연습을 위해 혼자 피아노를 치는 등 청소를 빠지곤 해서 "나이도 어리면서 까불고, 건방진 여자애"라며 후카세는 회상했다.]. 극심한 이지메 때문에 체육시간, 점심시간이 가장 싫었다고 한다. 항상 화장실에 숨어서 혼자 울고 빨리 학교가 끝났으면 생각하고는 했다고 말했다. 한 번은 친구들이 싫어하는 자신의 잘못된 점을 고치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용기 내어 "잘못한 것을 말해줘, 미안해."라고 말했는데 그마저도 없는 사람취급으로 무시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런 게)재수 없어"라고 욕했다고.. 이지메의 이유 아닌 이유 중에 하나는 일찍이 콩쿠르에 출전하는 등 수업을 빠지기도 하고 학교에서 자랑스럽게 여겨지고, 교내 행사에서도 연주를 하는 등 '특별대우'를 받고 있으며, 그런 모습이 재수 없다는 이유였다. 사오리는 이러한 이지메를 가족에게 말할 용기가 없어서 꾸역꾸역 학교를 다녔으나, 늘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생각했다며 "그렇게 힘들었으면 (학교)나가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라고 말하기도 했다. 멤버들에 따르면 학교에서는 피아노를 잘 치는 조용한 아이이며 항상 피아노를 연습하는 모습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후카세는 사오리가 이지메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오리가 까부는 것을 그냥 봐 준 듯하다.]. * '''중학교''' [[파일:VGZNb6n.jpg]] 중학교 진학 후 사오리는 [[양키]]의 무리지어 다니는 소속감을 동경하고 '저 무리에 낀다면 나도 친구가 생길 수 있겠구나'라는 막연한 생각에 양키집단에 소속된다[* 후카세의 말에 따르면 겨울에도 셔츠 단추를 3개나 풀고 다녀서 "추우니깐 제발 그만해 줘"라고 빌기까지 했는데도 노출을 고수했다고 한다. 귀에 피어싱 또한 어마어마하게 해서 귀 뚫을 때 마다 뜯어말리고 그만하라고 난리쳐서 결국은 그만 뒀다고(그러는 본인도 피어싱을 했었지만 사오리처럼 많이 뚫지는 않았던 듯.).]. 어느 날 양키 친구에게서 "한 학년 위의 상급생에 도쿄 내에서 가장 유명한 양키가 전학을 온다"라는 얘기를 듣는데, 과연 그 유명한 양키는 금발 머리에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등교를 하는 등 교내에서 소문이 굉장히 무성했다. 당시 도쿄 내의 양키들은 상하관계가 분명하고 연락관계가 있는 등 타 학교나 선후배에 관계 없이 연결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오리는 양키 친구를 통해 해당 선배 양키의 휴대폰 번호를 받고 전화를 해 만나게 되는데 그 유명한 양키 선배가 [[Fukase]]였다[* 후카세에게 인사를 갔다는 얘기와 후카세에게 전화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오래 전이라 어떤 게 먼저인지 가물가물 한 듯. 사오리는 인사를 간 것이 먼저라고 얘기하고, 후카세는 방과 후에 사오리에게 전화가 온 것이 먼저라고 얘기하나 후카세가 자신감 있게 구체적으로 주장했으므로 후카세의 버전이 맞는 듯하다.]. 사오리는 인디시절 MARQUEE[* 인디시절 사오리가 연재하던 잡지의 이름으로 소소한 생활을 회상형식으로 쓴 연재 글이다.]의 연재 글에서 후카세와의 재회에 대해 "사람들은 (이 얘기를)믿지 않지만 후카세를 다시 만난 그 순간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라고 썼다. 사오리는 양키 집단에 소속되면서 늦은 시간까지 친구와 어울리는 등 부모님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실이었기 때문에 부모님과 마찰을 겪게 된다. 게다가 예고 입시의 준비로 피아노 교습으로 인해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줄어들자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사실 양키 친구들은 자신을 이용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굉장히 상처받는다[* 사오리는 항상 돈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데 친구들의 소행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친구들이 사오리의 지갑에서 돈을 빼서 쓴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현장을 잡힌 양키 친구들은 "바보 아냐?"라며 오히려 사오리를 비웃었다.]. 이지메의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던 사오리는 집에서도 엄마와 큰 싸움을 하고 새벽 2시에 집을 나오게 되는데 후카세가 사오리의 집 앞까지 찾아와서 둘이 함께 DVD방에 간다[* 오오타구의 GEO로 학창시절 둘이 함께 출근도장을 찍다시피 자주 갔었다고 한다.]. 사오리는 후카세에게 "돌아갈 곳이 없어"라며 통곡하는데[* 이 에피소드는 2집 tree의 수록곡 '문라이트 스테이션'의 가사로 등장한다. "'난 돌아갈 장소가 없어'라며 네가 울었어"- 문라이트 스테이션中 -] 후카세는 우는 사오리에게 '''"네가 있을 곳은 내가 만드니까, 울지 마"'''라는 전설의 멘트를 친다.[* 세카오와의 에피소드 중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로 사오리는 이 때의 상황이 굉장히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한다. 때문에 인터뷰에서 후카세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 종종 얘기하곤 하지만 후카세는 쪽팔린 지, 본인 입으로 말한 적이 없다. 사오리가 가출해 GEO에 갔다는 것만 장난 식으로 얘기한다. 모두가 함께 사는 세카오와 하우스의 문패는 '후지사키 사오리'의 이름으로 되어있다.] 학교생활과 집안문제, 진학 등으로 힘들어 하던 사오리의 흘리듯이 말하는 투정을 후카세는 잊지 않고 다음 날이 되면 깊이 고민해서 대답을 내주곤 했다고한다. 학교 내에서의 트러블 또한 후카세와의 유대 관계 덕분에[* 후카세가 사오리가 친구들과의 관계가 틀어질 것을 우려해서 보호해 줬다고 한다.] 완만하게 넘길 수 있었고, 당시 사오리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사오리는 그런 후카세의 모습을 존경했다고 한다. 친구 사귀는 게 서툴렀던 사오리에게 후카세는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해 주는데 이 때문에 사오리의 학창시절 친구는 모두 후카세에게 소개받은 친구라고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친구가 동급생이 아닌 선배들로, 후카세의 동급생이며 후카세가 학교를 여러 곳 다녔기 때문에 타학교의 친구들을 소개받아 어울리곤 했다고 한다.]. 멤버인 나카진 또한 중학교 시절 후카세에게 소개받은 친구이다. * '''고등학교''' [[파일:Ygo8NoU.jpg]] 미술과, 음악과, 무용과 등으로 반이 나눠져 있는 예술 고등학교에 음악과 피아노로 입학한다. 피아노의 성비는 지옥수준이라 전체 남학생이 3명이었다고 한다. 해외 콩쿠르 출전을 위해 유럽을 자주 오갔고, 한동안 프랑스에 머물며 특별 사사를 하는 등 착실히 피아노에 집중한 듯하다. 후카세의 미국 유학 전까지는 방과 후 항상 함께 있었는데 이는 후카세가 자전거로 사오리의 학교까지 출근 도장을 찍은 덕분. 고등학교는 피아노를 실컷 칠 수 있었고 그것이 수업이었기 때문에 즐거웠다고 한다. 사오리가 고등학교 재학 중 후카세가 미국 유학을 가게 되는데 후카세의 가족과 함께 마중을 했으나 후카세 앞에서 그냥 돌아가 버렸다고 한다[* 후카세가 인터뷰에서 공항에서 가족과 함께 인사를 나온 사오리가 그냥 가버려서 미쳐버렸다고 회상을 했으나 왜 돌아간 건지,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사오리는 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클래식 피아노과가 있는 음대의 수가 몇 없으므로 클래식 피아노를 목표로 하는 사오리는 엄청난 입시지옥 속에서 다소 피아노에 흥미를 잃는 등 권태기가 오기도 했었다고 한다. * '''대학''' [[파일:L6IoBoH.jpg]] (콘체르토 때의 사진. 참고로 오른쪽은 후카세이다[* 후카세는 중학교 이후 사오리의 연주회에 한 번도 빠짐 없이 참석했다고 하나 라디오에서 둘의 다툼 중에 "졸리니까 무슨 곡인지 기억 못 해"라는 발언을 했다.].) 사오리는 친가인 칸사이 지방의 음대를 1지망으로 지원했으나 수면 부족으로 본고사를 망쳐버렸다[* "영어가 부족했어"라고 말했으나 흐름상 진담인지 농담인지...]. 결국 사사했던 교수님이 재직 중인 도쿄의 센조쿠가쿠엔 음악대학의 클래식 피아노과에 수석으로 입학한다. 일본에는 약 40여개의 음악대학이 있으나 클래식피아노 전공은 10~20여개도 채 되지 않아, 클래식 피아노과의 학생은 많아야 800명이 되질 않는다. 미디어에서 사오리를 소개할 때마다 '''음대 클래식 피아노 전공'''을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 결국 도쿄에 머물게 된 사오리는 병원을 퇴원한 [[Fukase]]의 사회 적응을 물심양면으로 돕지만 당시 의대 입시를 준비하던 후카세가 약물 부작용으로 폐인화되며 여러 트러블이 생긴다. 의대입시가 좌절된 후카세가 미국행을 거절하고 집에서 독립한 후 나카진과 밴드를 결성하자 후카세의 보컬 연습을 위해 자신의 방을 내주기도 했다[* 사오리의 방에 방음시설이 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후카세는 매일 사오리 방에서 샤우팅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사오리 엄마한테 뭐하는 짓이냐고 혼났다고...]. 결국 후카세는 clubEARTH[* 세카오와가 직접 만든 라이브클럽으로, 메이저 데뷔 전 까지 이곳에서 숙식을 하며 공연과 운영을 겸했다. 2000년 대 후반 인디록씬의 주요 스팟이며 현재까지도 운영 중.]를 만들기로 결심하는데 이때에 '''유일하게 클럽 재조를 반대한 멤버이다.''' 당시 사오리는 '''절대 무리'''라는 생각으로 뜯어말렸으나 그대로 진행되었고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전 재산을 투자했다. 클럽을 공사하다 해가 떠서 학교에 그대로 가는 일이 빈번했으므로 항상 페인트가 묻어있는 채 교습을 받고는 했다고 한다. 당시 담당 교수님은 사오리에 대해 "테크닉이 매우 우수한 학생"으로 평했으며 "성공할거야"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사오리가 클럽을 만들고 있다는 것도 알았는데, 젋은 혈기라고 생각하고 응원했다고.]. 사오리는 재학 내내 협주곡 테스트에 합격하여 콘체르토 주자로 연속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고, 재학생 대표로 리사이틀을 하기도 했다[* 졸업 테스트의 과제 곡은 사오리의 블로그에서 들을 수 있다. 테크닉이 강점인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에 콘체르토 역시 테크닉 위주의 곡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사오리가 자신의 콘체르토 경험곡 중에 청취자에게 추천하는 곡으로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꼽았다.]. 사오리는 재학 중에 '음악과'의 교원 면허를 취득했다. 밴드 활동 중에 교생 실습으로 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사인을 했던 에피소드도 있다. 클럽의 공사와 운영 뿐만 아니라 클럽을 제작하면서 진 어마어마한 빚을 갚기 위해 피아노 교습 뿐만 아니라 여러 알바를 병행했던지라 학교 로비에 지쳐 잠든 적도 있는데 동문들이 그런 사오리를 보고 빵을 주고 가곤 했다고 한다[*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정말 감사히 먹었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