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T-34 (문단 편집) === [[T-34-76]] === ||<:> [[파일:attachment/T-34/ee.jpg|width=100%]] ||<:> [[파일:attachment/T-34/t3.jpg|width=100%]] ||<:> [[파일:external/c0f7c8cebed39daa24e934e529d95c9bb1ea15f47681a6a179bd62cef7272b98.jpg|width=100%]] || ||<:><-3> T-34-76 1940년형[* L-11 전차포를 장착한 초기형으로 쿨리크 원수의 방해공작 때문에 1940년에는 117대만 생산되었다. 이전 내용에는 현재까지 살아남은 1940년형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라고 했으나, 러시아의 예카테린부르크의 한 지역인 Verkhnyaya Pyshma의 군사/역사박물관에 한대가 전시되어있다.] || ||<:> [[파일:attachment/T-34/T-34-76_1941_001.jpg|width=100%]] ||<:> [[파일:attachment/T-34/T-34-76_1941_002.jpg|width=100%]] || ||<:> [[파일:attachment/T-34/gl.jpg|width=100%]] ||<:> [[파일:attachment/T-34/75.jpg|width=100%]] || ||<:><-2> T-34-76 1941년형[* F-34 전차포를 장착한 사양으로 1941~42년에 생산되었다.] || ||<:> [[파일:attachment/T-34/T-34-76_001.jpg|width=100%]] ||<:> [[파일:attachment/T-34/T-34-76_002.jpg|width=100%]] ||<:> [[파일:attachment/T-34/88.jpg|width=100%]] || ||<:><-3>T-34-76 1942년형[* 1942~1943년까지 생산되었으며 포탑이 육각형으로 변경된 후 방어력이 올라가고 내부 공간이 조금 넓어졌다.] || || [[파일:external/www.cybermodeler.com/dml_6614_title.jpg|width=100%]]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34_-_TankBiathlon2013-06.jpg|width=100%]] || || 화염방사 전차로 개조된 T-34-76(OT-34) || [[탱크 바이애슬론]] 대회 시작 전 나온 러시아 육군 소속 퍼레이드용 T-34-76 || [youtube(4d03m2aZSnY, width=400)] T-34는 [[스페인 내전]]에서 기존의 고속/경장갑 중심의 전차들이 37mm [[PaK 36]] 같은 견인식 소구경 [[대전차포]]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경험에 대한 반성에서 탄생한 중전차이다. 동맹국 생산을 포함하여 1940년에서 1948년까지 약 8만 4천여 대가 생산된 것으로 추산되어 대전 중 생산된 전차로서는 최다 숫자를 자랑한다. 초기에는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대구경인 76.2mm포를 주포로 장비하였으며, [[미국]]의 [[크리스티 현가장치]]는 경쾌한 기동력을, 넓은 캐터필러는 극한지에서의 기동력을 보장하였다. 차체와 포탑의 전/측면 장갑부에 크게 60도급 피탄경사설계를 도입하였다. 독소전 극초기에는 주력 대전차포의 구경이 대부분 37mm에 그쳤기에 전면에서 T-34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없었고, 이는 방심하던 독일군에게 큰 충격을 불러왔다. 기존에 독일의 주력 대전차포인 37mm [[Pak 36]]은 T-34의 장갑앞에서 무력했기 때문이며 결국 [[PaK 36]]이 "도어 노커"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된다. 물론 105mm 야포나 [[8,8cm FlaK]]를 사용하면 격파할 수 있었으나 그 이외에는 대응 수단이 마땅하지 않았다. 그후 독일군은 5cm [[PaK 38]]과 이를 선회포탑에 장착한 3호 전차 J형을 투입해서 어느정도 T-34를 상대할 수 있게 되었으나 5cm 포도 귀한 APCR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확실하진 못했고 결국 7.5cm포를 배치하여 동등한 전력으로 사용 할 수 있었다. 이 형식을 보통 T-34-76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생산 시기에 따라 꾸준히 개량이 가해졌기에 주포가 같은 T-34-76이라고 하더라도 1943년형처럼 연도에 따라 별도로 구분하는 게 옳다. 경쾌한 기동성과 상당한 화력, [[BT 전차|BT 고속전차]]로부터 물려받은 [[경사장갑]] 설계로 당시 3/4호 전차가 주력이던 독일군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 독일군은 T-34의 장점을 적극 도입한 [[5호 전차 판터]]를 새 주력으로 개발하는 등 기갑전력 개선에 박차를 가하지만 이미 서서히 수세에 돌입한 상황에서 독일의 국력은 소련을 따라가기에 역부족이었다.[*출처필요 하술할 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어]]의 언급대로, 독일의 생산력은 오히려 1944년 정점을 찍었다. 연합군 폭격은 유효했으나 비효율적이었고, 중요거점지대를 피해간 덕에 독일 군수생산 체계는 점점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1943년 내지 1944년 초중반까지는 호각지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는 [[스탈린]]이 연합국간 정상회담에서 서부전선의 개전, 즉 상륙작전을 계속 종용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 중기에 유럽 대부분의 자원과 공업력을 장악했기에 잘만 운용했다면 풍족한 자원과 함께 엄청난 공업 생산력을 갖출 수도 있었으나 전통적인 장인 위주 공업 시스템 때문에 품질은 매우 우수한 반면 생산성은 낮았는데, 인력난으로 이 숙련공들까지 하나둘씩 징집되면서 그 자리를 전쟁 포로들이나 동유럽에서 징집된 노동력으로 때울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들은 [[사보타주|직접 싸우는 대신 마지못해 만드는 물건의 기본적인 품질도 저하]]시키는 식으로 저항했다[* 상관없어보이는 말이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한 [[알렌 M. 섬너급]] 구축함 USS 래피가 독일군 해안포에 한 발을 맞았는데 이것이 체코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불발탄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인식과는 달리 독일은 1941년 즈음엔 이미 총력전 체제에 들어섰으나, 기업들의 낭비와 비효율적인 전시경제체제의 운영으로 인해 공업 효율이 극도로 나빴다. 프리츠 토트 - 알베르트 슈페어 등의 생산개선을 거쳐 독일의 생산력은 1944년 즈음에는 소련과 맞먹는 수준까지 올라갔지만 이미 전세의 주도권이 뒤집힌 상태였다. 반면 소련은 독소전 초기에 주요 공업 지대를 죄다 빼앗겼고 대전 중기까지 미국이나 영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했음에도[* 이란 방면을 통한 [[무기대여법|랜드리스]]는 42년이 되어야 운영되기 시작하며 랜드리스의 혜택은 이미 소련이 우세해진 43년이 되어서야 재대로 누리게 된다. 그리고 43년이면 이미 스탈린그라드 전투까지 막 끝나고 독일이 수세에 몰린 상황이었다.] 빠른 총력전 돌입과 저품질 대량 생산에 의해 여전히 독일에 뒤지지 않는 생산력을 발휘했다. 초기에 소련군 병기의 품질은 독일에 비해 훨씬 떨어졌지만 공장의 규모가 커지고 갈수록 경험이 쌓이면서 생산 속도는 더 빨라지고 품질도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고로 전쟁 초반에는 품질이 높고 하나 하나가 강한 병기를 가진 독일군이 매우 우세했으나 숙련공의 느린 양성 속도 때문에 생산량도 답보 상태였고, 전쟁에서 밀리면서 갈수록 연합군의 집요한 폭격으로 공업력과 자원줄도 떨어져 가니 뒤늦게 총력전에 돌입해서 비숙련공을 돌리기 시작해도 이들이 쓸 여유 자원도 공업력도 부족해진 독일에 비해 경험과 규모에 의해 갈수록 더 많이, 쓸만한 품질의 병기가 튀어나오는 데다 랜드리스에 의한 추가적인 자원과 영토 해방에 의한 공업력과 인력까지 추가된 소련의 생산시스템은 대전후기의 생산력 차이를 엄청나게 벌려버렸다. 독소전쟁 발발 시점에서 소련군이 배치한 T-34는 960대(생산은 1,220대)였고 이는 독일군이 동원한 전차 3,000여 대 중에 [[3호 전차]]와 [[4호 전차]]의 수량이 약 2천 대 정도였음을 감안해 보면 그렇게까지 모자르지는 않을 정도의 숫자였다. 그러나 막 새로이 배치된 신형 전차다보니 제대로 운용할 줄 아는 승무원 및 정비 인력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 [[대숙청]]으로 인해 지휘체계에 심각한 혼란이 발생한 데다 예비 부품과 탄약비축량마저도 극히 부족해[* 철갑탄을 아예 지급받지 못해서 대전차전에서 별 소용이 없는 고폭탄만 쏘거나, 심하면 포탄이 아예 없어 동축 기관총만 쏘다가 산화되기 일쑤였다. 이 역시 쿨리크가 포탄 생산을 방해해서 벌어진 사태이다.] 거의 힘을 쓸 수 없었다.[* Zaloga, 10-11] 심지어 한 소련 육군 전차병은 '파시스트 놈들 땅크는 펄펄 날아다니는데 이 쌍놈의 T-34는 조금만 달려도 퍼져버린다. 변속기도 독일 놈들이 더 좋았고, 우리 건 엿이나 바꿔먹으면 딱 맞는다.'고 했다.[* 사실 이 전차의 신뢰성이라는 부분에서 소련과 독일 모두 문제가 있었고 점차 개선되던 소련군과는 달리 상대방인 독일 육군은 오히려 더 개악이 되는 형편에 남의 떡이 커보이는 현상도 발생하는지라 인터넷에선 맨날 필터 문제로 까이는 소련제 디젤엔진이 상대인 독일 전차병들에겐 '우리껀 심심하면 고장나는데 이는 소련제 디젤엔진이 엄청나게 튼튼한 것과 실로 대조적.'이라며 실전에선 찬양을 받기도 했다. 여기에 독일군은 운전수를 전차장 다음가는 고참이 맡아야 할만큼 조금만 잘못 몰면 전차가 망가져버리지만(특히 판터) 소련 전차는 트랙터나 몰던 사람들을 끌고와서 운전 맡겨도 일단 돌아는 가는 수준은 되었다. 사실 소련 전차병들은 T-34가 티거나 판터한테 한방에 훅 간다는 점에는 불만을 품고 있었으나 입밖에 냈다가는 너 숙청 신게세되기 딱 좋긴 했다. 다만 서부전선의 영국과 미국과는 달리 소련은 판터와 티거를 안정적으로 잡을 수 있는 85mm탑재 T-34가 있었기 때문에 무리해서 셔먼을 투입할 필요까진 없었고, 딱 그 체급에 맞는 역할을 기대했으며 셔먼은 그 기대를 충족시키고도 남았다.] 물론 소련도 독일처럼 중전차를 가지고 있었지만 소련의 중전차는 독일의 중전차와 다르게 대전차전보다는 전선 돌파나 보병 지원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소련의 교리상 대전차전은 T-34와 SU-85/100이 우선 투입되었고 IS-2와 ISU-152는 필요하다면 대전차전에 투입되는 정도였다. 이는 전훈의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 바가 컸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전투가 이어진 [[스페인 내전]]에서 운용된 소련제 전차는 본질적으로 장갑이 얇은 경전차인 데다가, 호위 보병없이 단독으로 운영되는 대실수를 저지르는 등의 삽질이 겹쳐져서 그다지 활약을 못하고 보병에 큰 피해를 입었는데, 공화국군의 군사고문으로 갔던 소련 육군 장교들이 이것을 보고 한 목소리로 "대규모 전차운용은 별로 효과없고, 역시 전차는 보병에 딸린 보조역을 맡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소련 육군은 스페인 내전 이후 사단급 이상의 기갑부대를 모두 해체하고 기껏해야 보병사단에 부족한 여단이나 연대급으로만 기갑부대를 운용했다. 그러다가 독일군이 폴란드 침공, 프랑스 침공에서 대규모 전차운용으로 성공을 거두고 겨울전쟁에서 소련이 참패하면서 다시 예전대로 전차부대를 대규모로 편성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독소전쟁이 발발하고 신편되거나 재편중이었던 소련 육군 기갑부대는 아직 제대로 전투를 벌일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실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모스크바 방어전 이후에는 생산량도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하고 소련 육군 지휘관들이 전차의 집중운용 개념을 어느 정도 습득하고 활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서 1944년부터는 본격적인 개량형인 T-34/85에게 바통을 넘기고, 남은 T-34/76은 새로 보충되지 않고 전장에서 격파될 때까지 사용하다가 박살나면 T-34/85로 교체고, 박살난 전차는 쓸만한 부품은 다 뜯긴 후 방치되거나 고철로 변했다. 그래서 의외로 생산량에 비해 21세기 시점까지 남아있는 양은 매우 적고 대부분은 박물관에 전시된 상태다. 소련 육군의 드미트리 표도르비치 라브리넨코(Дмитрий Фёдорович Лавриненко, Dmitry Fyodorovich Lavrinenko) 근위상위는 T-34/76을 타고 두 달 반 동안 56대의 독일 전차를 격파했으나, 1941년 모스크바 전투 중 전사했다. 연합군 최고의 전차 에이스임에도 서방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 소련에서도 묻혀 있다가 소련이 망하기 직전인 1990년에야 소련 영웅훈장을 받았다. [[파일:external/director.io/Lavrinenko%20www.wio.ru.jpg|width=30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