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TF1 (문단 편집) === 민영화 === 1987년 당시 총리였던 [[자크 시라크]]에 의해 세계적인 건설기업인 부이그한테 넘겨져 [[민영화]]되었다.[* 원래는 공영방송국 3곳 중 2곳을 민영화할 예정이었지만 이에 대해 반발이 많았고, 정치적 고려도 있었기 때문에 결국 TF1만 민영화되고 말았다는 후문이 있다.] 그러나 [[프랑수아 미테랑]]이 재선된 후에도 재 공영화 조치가 취해지지는 않았는데, 이미 격변기를 거친 방송계를 다시 들쑤시기엔 뭐했고 미테랑도 부이그와 사이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데다 공영화의 실익도 별로 없다는 점 등이 그 이유였다. 다만 자크 아탈리의 '미테랑 평전'에 의하면, 정작 미테랑은 TF1을 다시 공영화하고 싶어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과 민영화된 지 2년만에 다시 국유화시킬 경우 이를 빌미로 다수당이 바뀔 때마다 집권당 마음대로 산업과 은행제도를 바꿀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포기했다고 한다(또 당시 총리였던 로카르도 반대할 것이라 예상되었다). 그래서 TF1의 공영화를 포기하고 [[프랑스 텔레비지옹]]이라는 별도의 공영방송을 밀어주기 시작했다. 어쨌든 이 시기에 광고규제도 완화되고 미국 TV프로그램을 수입하거나[* 그래서 현재도 편성비중에서 자체제작 드라마가 별로 없고 미국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 스포츠 중계권을 대거 사들이거나 여타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제작-방영하면서 A2와 FR3, [[카날 플뤼]][* 이후 이 이름으로 에스파냐 등 유럽 이곳 저곳으로 진출한다.], 라생크[* [[이탈리아]]의 [[메디아셋]]이 설립한 민영 방송국. 그러나 당대에 설립된 민영방송 치곤 인기가 없어 1992년에 4월 12일자 방송을 끝으로 폐국했다. 이후 해당 주파수는 한동안 비어있다가 1994년 [[프랑스 텔레비지옹]]이 교육방송국을 차렸다.] 등을 제치고 프랑스 방송 채널의 1인자가 되었고, 민영화된 TF1은 자크 시라크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논조면에서 특히 친시라크적인 색채를 띄게 되었다. 어느 정도냐면 1995년 대통령 선거 당시 총리[* 1993년 총선에서 보수진영이 승리하면서 총리로 재임했다.]였던 에두아르 발라뒤르를 적극적으로 공격하면서 시라크를 도왔고--비슷한 성향이고 나발이고 걍 시라크 적은 우리 적?--, 2002년 대통령 선거 때는 라오넬 죠스팽이 3위로 낙선하고 장 마리 르펜이 17%의 득표율로 결선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TF1에서 치안에 대해 부정적인 논조의 기사를 내보내면서 죠스팽을 공격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죠스팽은 공영방송 광고규제를 강화해서(시간당 최대 12분에서 시간당 9분으로 축소) TF1 경영에 간접적이나마 도움을 줬던 전적이 있기는 하다. 사실 죠스팽도 TF1의 광고수입 증가를 의도한건 아니지만.] 1993년 당시 [[주간조선]]에 연재되던 [[이원복]]의 '[[현대문명진단]]'에서 '[[르 피가로]]'를 인용하여 민영화 당시 TF1의 막장 간접광고를 깠던 적이 있다. 이를 테면 토크쇼에 초대된 게스트에게 유명한 사회자가 이런 식으로 말을 건다. >"어서오십시오~ 이야 이 '''라도''' 시계 정말 좋네요! 오, '''쁘렝탕 백화점'''에서 사셨다고요? (블라블라) 그런데 '''피츠''' 세제는 '''물리넥스''' 세탁기랑 참 잘 맞지 않습니까? ...(중략)... 하하하, 나중에 시간 되시면 '''쟈끄''' 카페에서 한 잔 하시죠. 뭐 저는 평소에는 '''메종 뒤''' 카페에서만 마십니다마는." 이런 행태에 대해 비판 기사가 나가자 그 사회자는 "내가 광고를 했다니? 그냥 보고 듣고 느낀 대로만 말했을 뿐인데!" 라며 오리발을 내밀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