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TKS (문단 편집) == TKS == ||<:><-5>[[파일:attachment/TKS.jpg|width=100%]][br]{{{#FFFFFF '''TKS'''}}}|| || 중량 ||2.57t (후기형 2.65t, 20mm FK-A 기관포 탑재형 2.8t) || || 전장 ||2.58m || || 전폭 ||1.78m || || 전고 ||1.32m || || 승무원 ||2명 || || 엔진 ||폴스키 피아트 122AC 6기통 42마력 폴스키 피아트 122B 42마력(후기형) || || 노상최고속도 ||40km/h || || 차내연료/행동반경 ||70ℓ/180km || || 무장 ||7.92mm [[호치키스 기관총|Wz.25]] 1정 (20mm 기관포 탑재형은 20mm FK-A 기관포(wz.38) 1문) || || 장갑두께 ||3~10mm || [[아돌프 히틀러]]가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과 [[수상]]을 겸임하면서 평온하던 유럽의 정국이 불온해지고 각국이 신형 전차와 항공기 개발에 매진하며 군비 경쟁에 돌입하던 1934년, 폴란드는 국산 TK-3 전차의 후속전차 개발계획을 추진한다. 이 전차가 TKS 전차로 이미 1933년에 PZInż.설계부에서 개발된 차량을 그대로 1934년 2월부터 발주해 390량을 양산했다. 일단 TK-3 전차의 장갑을 강화하는 한편 [[경사장갑]]을 도입하는 등 생존성 향상을 꾀하고 개량된 현가장치를 가지며, 7.92mm [[기관총]]을 볼마운트 방식으로 탑재하는 등의 개량이 실시되었다. 그리고 이 차량부터 [[이탈리아]] 피아트 사의 라이센스 엔진인 폴스키 피아트가 장착된다. 완성형 TKS 양산 이전에 임시로 TK-3의 엔진을 폴스키 피아트로 교체하고 서스펜션을 TKS 형태로 개량한 모델도 일부 존재하는데 이는 TKF라는 이름으로 따로 분류되었다. || [[파일:attachment/TKW.jpg|width=100%]] || || '''TKW''' || || [[파일:All-terrain_vehicle_(24038932611).jpg|width=100%]] || || '''C2P''' || 기본형 외에도 선회포탑을 장비한 TKW[* 시제차량 1대 제작. 1935년 2월에 마지막 테스트를 거치고 이후 해체되었다. 이 모델에서 사용된 선회포탑은 나중에 [[PZInż.130]] [[수륙양용전차]]의 프로토타입 제작에 활용되었다.] 경전차, 47mm 보병포로 무장한 자주포 형태의 TKD, 사이드 클러치와 무한궤도 설계 변경으로 주행능력 향상을 꾀한 TKS-B[* 시운전 결과는 만족스러웠으나 양산은 비용 문제로 기각. 만들어진 차량은 TKS-D로 개조되었다], 37mm [[대전차포]]를 탑재한 TKS-D도 수량 제작되었다. 이들 파생형 프로토타입들 가운데 TKD와 TKS-D는 양산은 되지 않았으나 기존에 제작된 차량들(TKD 4대, TKS-D 2대)이 일선 부대에 배치되어 1938년의 치에신[* 체코어로 테신, 독일어로 테셴] 합병이나 1939년 방어전에 투입되기도 하였다. 사진의 전차는 TKW. 그 외에 TKS의 차체를 활용한 견인차량도 양산되어 C2P라는 이름으로 배치되었다. 또 TKS를 기반으로 한 구축전차 [[PZInż.160]] 모델도 설계되었으나 실제 생산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 외에도 일부 차량들은 철로용 궤도차로 활용되어 무장열차와 함께 운용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 독일은 [[3호 전차]]와 [[4호 전차]]의 개발 및 양산을 진행 중이었고, 독일에 합병된 옆나라인 [[체코슬로바키아]]도 37mm 주포를 장착한 [[LT vz. 35|35(t)]] 전차와 [[LT vz. 38|38(t)]] 전차들을 개발 완료후 양산상태였기 때문에 적국인 독일의 전력은 비약적으로 급증하고 있던 상태였다. 이런 독일에게 TKS로는 상대가 안된다는 것을 폴란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른 방법들이 모두 차단된 상태라서 무장이라도 개량하려고 했다. 참고로 폴란드의 열악한 상황을 살펴보면, 이미 미국 윌 트랙 레이어 사(US Wheel Track Layer Corporation)라고 하는 크리스티가 경영하는 회사에 1931년에 2량의 전차를 발주했지만 같이 주문했던 미국이 추가발주형식으로 낚아채버려 폴란드에는 전차가 제공되지 않았다. 1937년에는 프랑스와 협상을 벌여 [[소뮤아 S35]] 전차 2개 대대분 100량을 발주하려고 했지만 프랑스 정부가 제동을 걸어 결국 [[르노 R35]] 100량으로 계약이 변경됐고 그나마 독일의 침공 이전에 도입된 것은 1개 대대분이었던 53량(정확히는 R35 50대와 테스트용으로 같이 구입한 H39 3대)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전차들은 전쟁 발발 후 후방에 있다가 9월 17일 소련군 침공 이후 대부분 루마니아 방면으로 퇴각해서 실제로 전쟁에 끼친 영향은 제로였다. 결국 미국에서 크리스티 전차를 도입하는 것이 좌절되자 대안으로 수입한 것이 [[비커스 Mk. E]]로 6톤 경전차인 이 전차를 토대로 국산화한 것이 [[7TP]] 전차다. 이런 유형무형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1938년에 여러 경로를 통해 입수한 크리스티 방식의 현가장치를 장착해 장륜, 장궤병용 주행이 가능했던 10TP 전차나 장갑강화형 14TP 전차가 1939년에 개발된 것을 생각해볼 때 1931년에 크리스티 전차가 폴란드에 제공되었다면 폴란드가 7TP 대신 13톤에 가까운 10TP나 14톤급의 14TP 전차를 더 일찍 양산해 전력화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앞서 언급했듯이 모든 방법이 막혀버리자 1936년부터 폴란드 육군의 기둥이자 숫자상 주력인 TK 계열 전차들의 획기적인 공격력 향상을 위해 [[스위스]]제와 [[덴마크]]제 20mm 기관포를 탑재하는 안이 고려되었지만 외국제 병기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결국 독자 개발로 선회해 계획이 추진되었고 1938년에 폴란드 국산 20mm FK-A [[기관포]]의 개발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룩해 다음해인 1939년 5월부터 TK-3와 TKS에 대한 개수가 실시되었다. 이중 우선적으로 신형 기관포가 장착된 것은 TKS 모델이며, TK-3의 경우 1938년 말엽 1대의 차량에 시험적으로 기관포를 장착해 테스트를 거쳐 재무장이 결정된 뒤 1939년 9월에 16량이 무장을 교체하기로 계획되었으나 전쟁 발발로 무산되었다. 개수시기가 너무 늦어서 개전 직전까지 20mm 기관포를 장비한 TKS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24대'''였다고 한다. 폴란드는 국내에서 양산 가능한 이 경정찰전차들의 후속차량들도 개발하고 있었지만 독일의 침공으로 물건너가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