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UFC (문단 편집) === 초창기: [[UFC 1]] ~ [[UFC 12]] === [[브라질]]에서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배운 [[그레이시 가문]]의 호리온 그레이시는 1978년 출세를 위해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한다. 이후 청소부, [[엑스트라]] 배우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그를 눈여겨본 영화 제작자에게 발탁되어 리셀 웨펀 등의 무술 감독으로 조금씩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다. 그리고 판매를 시작한 주짓수 교육용 테이프가 예상외의 대박을 치자, 호리온은 아트 데이비, 존 밀리우스 등과 함께 미국에서 BJJ의 강함을 알리고자 [[발리 투도]] 대회를 계획하게 된다. 1993년 11월 [[덴버]]에서 무규칙 룰로 진행된 토너먼트는 [[브라질리안 주짓수]]의 [[호이스 그레이시]]의 우승으로 끝난다. 특히 왜소한 체격의 호이스가 거구의 [[켄 샴락]], [[제라드 고르도]]를 꺾는 모습은 미국의 격투팬들에게 강하게 각인되었다. 이어진 대회에서 호이스는 UFC 토너먼트 2, 4를 제패하며 BJJ 홍보라는 소기의 목적을 훌륭히 완수해 낸다. 이후 목적을 이룬 [[그레이시 가문]]은 빠져나갔지만, [[PPV]] 수익에 고무된 미국인들은 그 가능성을 보고 대회를 유지했다. 하지만 무규칙 룰에 의한 지나친 폭력성이 문제가 되어[* [[존 매케인]]이 1990년대에 [[UFC 9]]를 처음 본 후 CNN에서 대놓고 "인간 닭싸움"이라고 하면서 금지해야 할 스포츠라고 비난하였고 개싸움, 닭싸움은 금지하는데 왜 사람싸움은 막지 않느냐는 논리로 격투기 금지를 요청하는 서한을 대다수 주의 주지사에게 보내는 동시에 유료 시청 채널 사업자에게 프로그램 방영 금지를 종용했다. 상업위원회의 의장이 되고 케이블 산업 전체를 감독하면서 더 치명적으로 가해지게 된다.매케인의 이런 움직임은 1990년대 중반 이후 UFC 위기에 결정타가 되었다. ][* 스포츠화가 진행된 이후 말년엔 젊었을때 종합격투기가 있었다라면 한 번쯤은 시도했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방송금지 처분을 받기에 이른다. [[PPV]] 수익으로 먹고 살던 UFC로서는 치명적인 손실이었다. 결국 2001년 거의 파산 직전까지 이른 UFC는 200만 달러에 복서 지망생 출신 사업가 [[데이나 화이트]]에게 매각되었다. 참고로 초창기 UFC는 2000년대 중반 [[XTM]] 등에서 방영하기도 했는데, 지금의 UFC가 룰이 갖춰진 스포츠화 된 것과 달리 당시엔 룰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아 조금 더 길거리 싸움 느낌이 난다. 자세한 사항은 하단 룰 부분에서 서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