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V2(로켓) (문단 편집) == 연합국 및 핵무기 == 이 신무기는 미국, 영국, 소련 모두 [[군침]]을 흘리고 있었으며 나치 독일이 항복하자 V2의 시제품과 기술자들을 구하기 위해 세 국가 모두 독일을 샅샅히 뒤졌다.[* 웃긴 것은 미국은 [[라이트 형제]]때 배운 것이 없었는지, 로버트 고다드가 V2의 조상 중 하나가 되는 액체 연료 로켓의 시제품을 개발하였을 때는 아무런 관심도 안 가지고 있다가 그 로켓을 바탕으로 만든 V2를 보고 그제서야 로켓의 가치를 알아차렸다. 영국은 대신 [[발터 도른베르거]]를 영입했다가 조금 이용해먹고는 전범재판에 회부하여 굴린 뒤 [[페이퍼클립 작전]]을 진행하던 미국에 내줬다. ] 획득한 V2는 해당 세 개의 국가에서 1952년 정도까지 운용됐으며 몇몇 V2는 전후에도 조립되었다. 이후 세 나라 모두 V2를 이용한 중거리 로켓을 개발하였고 특히 미국과 소련은 이를 더욱 발전시켜 [[우주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결과는 아는 대로 소련이 [[인공위성]]과 유인 [[우주선]]의 발사를 세계 최초로 해냈다. 미국은 아예 개발자 폰 브라운을 망명시켜 이후 모든 로켓 프로그램을 감독하게 했다. 폰 브라운의 회고에 의하면 영국에 망명하지 않은 이유는 영국이 제시한 연봉이 적었다고 한다. 소련은 개발자급 인재를 영입하는 것은 1명을 제외하면 실패했고 주로 제조 직공들을 영입했으나, V2의 유도장치를 개발한 전기공학자 헬무트 그뢰트룹은 개발자급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소련에 영입되었다. 그러나 소련에는 발사체와 로켓엔진에 대해서 [[세르게이 코롤료프]]와 [[발렌틴 글루시코]]라는 천재가 있었으며 오히려 로켓의 두뇌에 해당하는 유도장치 분야에서는 거의 백지상태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소련으로서는 가장 필요한 인재를 영입한 셈이었다. 그래서 1947년 독일 기술자들과 세르게이 코롤료프의 손으로 V2의 복제품인 R1이 나오고 이후 소련의 로켓기술은 이것을 자양분 삼아 나날이 발전하여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결국 1957년에는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쏴올린 [[R-7]] 로켓으로 진화한다. 코롤료프는 이 로켓무기가 일본에 투하된 핵무기와 결합하여 결국 [[대륙간 탄도 미사일|궁극적 전략 무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 예상은 결국 맞아 떨어졌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최근까지도 토폴같은 탄도미사일에 탑재된 핵무기를 막기는 힘들다. 그래서 상대국에게 너희 국가가 발사하면 우리도 발사한다라는 개념으로 [[상호확증파괴]]같은 개념이 나온 것이다. 상대방이 자국 영토까지 완전히 초토화시키면서까지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