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YF-107 (문단 편집) == 생산과 탈락 == F-107A의 1호기 NA 55-5118은 [[1956년]] 9월 10일 테스트 파일럿 밥 베이커(Joel Robert Baker : 1920~2011)가 조종간을 잡고 처음 실시된 공식 비행에서 곧바로 [[음속]]을 돌파해 [[마하]] 1.03을 기록했다. 하지만 착륙 스피드가 빨라 드래그슈트를 펼치며 택싱하는 동안 노즈기어가 주저앉아버렸고, 기체는 약간의 수리와 보강이 필요해졌다. 미 공군은 XF-107과 [[F-105|YF-105]]를 놓고 비교 심사를 한 결과 폭탄창을 갖추고 있어 폭장량에 더 여유가 있는 [[F-105]]를 채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원래 이 경합은 처음부터 F-105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보험 격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공정한 게임은 아니었다. 울트라 세이버로 불리던 이 전투기는 시제기 3대가 완성된 상태에서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다. 이에 대해 경쟁사인 리퍼블릭 사의 테스트 파일럿 헨리 크레시빈(Henry Crescibene : 1927~2017)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우리 리퍼블릭 기술진들의 인식은 공군이 전통적으로 노스 아메리칸을 편파적으로 좋아한다는 것에 의견을 함께 했지요. 노스 아메리칸이 내놓은 설계는 과연 우수했지만, 공군이 우리보다 그 디자인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승리한 건 동체에 폭탄창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나중에 베트남전에서 우리 선더치프 전폭기들은 그 공간을 단순히 365갤런 연료탱크로 썼던걸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일이죠."''' 그렇지만 F-107은 취소되었다라도 그 독특한 형상과 뛰어난 가속 성능만큼은 높이 평가되었던 탓에 연구 실험은 계속 되었다. M39 기관포를 장착한 1호기와 3호기 55-5120은 [[1957년]]에 공군에서 [[NASA]]로 이관되어 1호기는 4회, 3호기는 42회의 각종 비행 테스트에 활용되었는데, 이때 수평 비행에서 가뿐하게 마하 2를 돌파해버리는 우수한 성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하지만 운이 없었던 3호기는 [[1959년]] 9월에 저명한 조종사 스캇 크로스필드(Albert Scott Crossfield : 1921~2006)가 타고 활주로에서 이륙하다가 일어난 사고로 크게 부서졌고, 이용가치가 없어져 그대로 사격장에 표적으로 옮겨진 다음 거기서 최후를 맞았다. 남아있던 2대 가운데 2호기 55-5119는 현재 [[오하이오주]] 데이턴에 있는 국립 미공군 박물관에 실내 전시되어 있고, 1호기는 [[애리조나주]] [[투산]]의 피마 항공우주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